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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구자인과 김미자 / 김현대
icon 이규홍
icon 2010-05-31 11:23:46  |  icon 조회: 7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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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구자인과 김미자 / 김현대


» 김현대 지역부문 선임기자


전북 진안에 구자인(45)이라는 사람이 있다. 군청의 계약직 지방공무원이다. 사람 빠져나간 농촌 공동체를 재생하는 이른바 마을만들기에 7년째 혼신을 바치고 있다. 천생 촌사람으로 생겼지만, 시쳇말로 학벌은 좋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일본의 중소도시 국립대학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구자인은 2004년 진안군의 마을만들기 팀장 공모에 응모해 7급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노인들만 남고 일자리가 사라진 농촌에서 마을을 다시 만드는 일은 곧 세상과 사람을 바꾸는 일이다. “10년은 인생을 바쳐보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행정과 주민의 가교 노릇을 자임했다.

구자인의 진안 생활은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하루하루였다. 말단 계약직 공무원으로 군수와 윗사람을 설득하고 마을 주민들과 씨름하는, 시비와 갈등의 연속이었다. 도로 내고 마을회관을 건립해야지, 돈 안 되는 마을만들기에 왜 예산을 낭비하느냐고, 야단도 많이 맞았다.

구자인이 6년을 버틴 지금, 진안은 2개의 큰 브랜드를 갖게 됐다. ‘마을만들기의 메카’와 ‘귀농귀촌 1번지’이다. “진안에서 벌인 마을만들기 사업의 가장 큰 성과는 주민 스스로 움직여서 성공한 사례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농촌의 사람을 키우고 그들이 뿌리내리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마을만들기의 현장을 목격한 159가구, 414명의 귀농자들이 지난 한해에 새로 진안에 정착했다. 그들은 마을만들기의 자양분으로 자라고 있고, 구자인은 지난해 6급으로 승진했다.

김미자(41)는 문경 농업기술센터의 6급 지방공무원이다. 1993년 농촌지도사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18년째 농산물가공 한우물을 파고 있다. 2005년 이후 문경은 오미자 왕국(전국생산 1위)으로 탈바꿈했다. 타고난 농촌전략가 김미자의 힘이 컸다. “오미자는 다른 과수농사보다 품과 비용이 덜 들어갑니다. 고령농이 쉽게 지을 수 있는 작목으로, 10년 전 오미자에 착안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오미자 가공공장 지원에 나섰지요.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지 못하면, 농민들이 제값을 받을 수가 없잖아요.”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한 김미자는 어렵게 예산을 따내 농산물가공지원센터를 세우고, 오미자 가공 특허기술과 상표를 확보했다.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1년 동안 시설·기술과 상표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대신 회사를 세운 뒤에는 100% 문경산 오미자를 구매하도록 요구했다. 지난해 문경의 700여 오미자 생산농가는 3000만원씩의 수입을 올리고, 가공공장 40여곳은 6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문경산 오미자의 70% 이상을 지역내 가공공장과 주민들이 소화하는 탄탄한 지역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김미자 전략의 핵심은 영리와 규모보다는 농가와 지역에 뿌리를 두는 ‘착한 가치’이다. “돈 많이 버는 기업보다는 지역에 봉사하는 기업을 원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도 힘드네요. 작은 잇속을 놓고 서로 다투잖아요. 지역산업에서는 공동체 의식과 사회적 책임감이 가장 튼튼한 경쟁력의 원천입니다.” 언제부턴가 문경 사람들은 김미자를 오미자로 부르고 있다.


구자인과 김미자 이야기를 쓰는데, 좀 생뚱맞지만 1987년 대통령선거가 끝난 직후 희망의 바람을 일으켰던 <한겨레> 설립 광고문구가 생각난다. “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닙니다.” 당시는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고 이른바 민주화세력이 패배감에 젖어 있을 때였다.

지역 현장에서 ‘더디지만 제대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키우고 있을 여러 구자인과 김미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김현대 지역부문 선임기자 koala5@hani.co.kr



기획연재 : [사내 칼럼] 한겨레 프리즘
2010-05-31 11: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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