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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산신령마저 몰아내려는 목사님들에게

닉네임
최규영
등록일
2007-08-31 15:42:47
조회수
5925
이제 이 땅에서 산신령마저 몰아내려는 일부 목사님들에게

이 글을 쓰는 제 마음은 퍽 착잡합니다. 종교가 개재하면 당연한 일도 이처럼 소통이 어려운가 생각하면 안타깝기 이를 데 없습니다.

지금 개신교 일부 목사님들(대다수 목사님들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인 여러분께서는 산신령을 축출하려 열심인 듯 보입니다. 8. 27 전주에서 발행되는 개신교계 신문인 <실로암신문>이 진안에 무차별 살포되었는데 여기에 산신령축제 반대기사가 톱으로 실려 있었습니다. 또 8. 29에는 진안군기독교연합회 주관으로 「산신령축제반대」 세미나가 모 교회에서 열렸습니다. (기독교연합회라 하지만 기독교라 함은 로마가톨릭교, 즉 천주교를 포함하기에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앞으로는 개신교라 통칭하겠습니다.) 거기에서는 산신령축제 반대 결의문을 채택하고 진안신문에 광고로 게재도 했습니다.

그 반대이유가 객관적이고 타당하다면 당연히 받아드려야 하겠지만 저로서는 여러분의 그 반대이유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달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산신령」이나 「무속」이 「우상」이고 「미신」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신앙과 양심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니만큼 반대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그런 반대의 생각을 자신의 정신적 영역을 넘어 교회의 신자들에게나 다른 목사님들에게 강요해서도 안 될 것이며, 특히 그런 주장을 교회 밖으로 가지고 나와 정치나 사회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행동은 더욱 용납할 수 없습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종교의 영역을 벗어나 정치, 사회를 간섭하라는 권한을 주었습니까?
제가 성경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제가 아는 성경 정신은 남을 포용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칠망정 배척하고 응징하라고 가르치는 대목은 없다고 들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라고는 할지언정, 남의 신앙을 개종시키라는 대목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구약성경의 십계명에서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는 대목에서 근거를 찾으려 할지는 모르지만, 구약은 이미 이스라엘의 부족신관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세계 대다수 기독교인들의 생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구약의 십계명을 현대에서도 곧이곧대로 믿는다고 할지라도 그 구절을 가지고 정치나 행정작용에 대하여 시비를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나라는 성경이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이 통치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여러분들은 이미 진안군의 행정에 간섭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의 독실한 신자인 행정이나 의회의 수장들에게 유무형의 압력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나아가 민간단체인 진안군축제발전위원회의 결정에 대하여 비난을 시작하고 위원장인 저의 문화원장직 퇴임운동도 펼친다고 합니다.
이게 도대체 누가 여러분들에게 부여한 권한입니까?

산신령이 뭐기에 여러분들이 반대하고 축출하려 합니까?
산신령이 마귀라도 되기나 합니까?
산신령은 여러분의 개신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백여 년 이전 수천 년 이래 우리들의 조상들과 우리들의 삶의 한 부분이 된 친근한 벗입니다.
산신령은 항상 우리 인간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주었지 결코 심술은 부리지 않은 걸로 전설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심마니에게 산삼 소재를 현몽으로 알려주는 것도 산신령이고, 옥동자를 점지해 주는 것도 산신령이었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것처럼 금도끼. 은도끼의 설화는 산신령이 우리에게 정직을 가르치는 스승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산신령은 우리 앞에 신앙의 대상으로 군림하지도 않았습니다. 실제 산신을 독립하여 모시는 경우는 아주 드물고, 겨우 사찰에나 가보면 부처님을 모시는 전각들 뒤에 초라하게 산신각, 또는 삼성각이라고 하는 건물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찰에 가는 불교신자들은 산신령을 신앙의 대상으로 알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불교신자들의 신앙의 대상은 오직 부처님일 뿐입니다. 다만 산신령은 토지신의 유형으로서의 토속신앙을 불교에서 수용한 것뿐입니다.

그렇지만 산신령사상은 현대에서도 퍽 유용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신령사상은 바꾸어 말하면 자연존중, 환경보호 사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산에서 무슨 행사를 할 때, 이를테면 나무를 벤다거나, 약초를 캔다거나, 집을 지을 때 같은 경우에는 반드시 산신령에게 고사를 지내고 했습니다. 고사를 미신이라구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산신령에게 고사는 지낸다는 정신은 바로 산(자연)에 대한 외경심의 발로로 산신령에게 고사를 지내는 사람이라면 요즘처럼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함부로 자연환경을 파괴할 생각은 엄두도 못 낼 것입니다.
반대하는 여러분의 입장에서는 지루할 테니 산신령 예찬은 이만 끝내기로 합시다.

다만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는 속담처럼 전래한지 전래된 지 고작 백여년의 개신교가 수천년 민족정신에 뿌리내린 산신령을 축출한다는 비판에서는 비껴 서시기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 축제발전위원회에서 고심 끝에 「마이산신령축제」를 왜 내놨는지 깊이 생각이나 해보셨습니까? 축제발전위원회가 여러분의 반대를 예상치 못하고 경솔하게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진안은 산업을 거의 농업에 의존하는 지역으로서 현재의 자유무역의 세계적 흐름으로 보아 다른 농업지역처럼 몰락의 과정에 있습니다.
그러나 농업이 무조건 안 되는 건 아닙니다. 자유무역의 거센 경쟁 속에서도 틈새시장에서는 살아남는 종목도 있습니다. 또 브랜드가치가 높은 종목은 그만큼 유리합니다. 그런데 우리 진안에 어떤 브랜드가 있습니까?
유일하게 마이산뿐인데 마이산의 평면적 이미지만으로는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여기에 활력을 주기 위하여 내세운 것이 바로 입체적 산신령인 것입니다. 마이산신령 하면 그 이름이 갖는 폭발력으로 인하여 브랜드가치는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진안홍삼」이라는 상표와 「마이산신령홍삼」이라는 상표를 대비하면 소비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또는 「마이산수박」이라는 상표와 「마이산신령수박」이라는 상표 중 소비자들은 어느 상표를 선호할까요?

상표는 신선하고 엉뚱할수록 소비자에게 강력히 어필한다고 합니다. 마이산신령이 현대에 어슬렁거리며 걸어 나왔을 때 일반의 반응이 어떨지를 생각해 봤다면 그처럼 맹목적으로 반대를 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반대를 하시려거든 진안의 부흥을 기약할 획기적인 대안을 내 놓으시든지요.

적절한 예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나의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오래전 프로축구 일화 천마팀이 성남을 연고지로 하겠다는, 팀과 성남시청의 방침에 이 구단이 통일교 계열이라는 점에 발끈한 성남의 개신교 교회는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성남 일화는 프로축구의 단골 우승팀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성남의 명예(브랜드가치)를 드높이고 있는 중입니다. 개신교로서는 사탄 같은(?) 이단으로 여기고 있는 통일교 계열의 구단이지만 종교 때문에 말썽이 있었다는 소식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다시 산신령축제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여기에서 저는 서로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난 7월 말경 진안군 기독교연합회 소속 몇 분의 목사님들과 자리를 함께한 소감을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시에 저는 목사님들로부터 반대하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안을 제시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들은 고로쇠 축제나 홍삼축제 등 특산물을 주제로 하는 축제나 된장, 간장 등 장류축제, 또는 청정자연 또는 물을 주제로 하는 축제 등을 제시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축제를 채택하지 못할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 드렸습니다.

고로쇠축제는 당시가 추운 계절이므로 군차원의 축제에는 적합지 않다.
홍삼관련 축제는 홍삼한방특구로 지정도 되고 했으니 명분은 좋으나 홍삼도 인삼의 한 종류라 인삼축제는 인접 금산군에서 이미 하고 있고, 그 프로그램 중에는 홍삼관련 이벤트도 들어 있어 금산은 그 방면에서는 초강자라 우리 진안이 아무리 홍삼을 외쳐 봐도 전혀 메아리도 없을 것임은 너무도 분명하고,
한방문제도 우리 진안은 거의 인프라가 없고, 이미 산청군에서 하고 있는 축제이며, 중국산 약재에 밀려 약초재배농가도 별로 없고 앞으로도 전망도 불투명하여 무모하다.
청정 자연을 주제로 한다는 것도 주제가 애매하다. 우리 진안이 산골이기는 해도 전북동부권에서 심심산골은 무주구천동으로 알려져 있고, 또 인접 장수군이 더 산골로 알려져 있다. 맑은 물을 주제로 한다지만 진안은 상류골짜기라서 비온 뒤가 아니라면 골짜기의 물은 바로 말라버린다. 용담댐의 물은 항상 찰랑찰랑 차있지 못하는 인공호수에 불과하다. 또 맑은 물을 진안만의 특별한 것으로 만들 도리도 없다.
또 간장, 된장 등 우리의 상품만을 팔자는 축제라면 누가 호응하겠느냐?
이것이 바로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마이산신령축제는 우리 진안군의 획기적 발전을 위한 착상이니 이해해 달라.
는 등의 요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반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이유가 기가 막혔습니다.
산신령축제를 강행하면 신의 저주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한분의 목사님은 대관령산신제를 지낸 후 강원도에 산불, 국지성 집중호우 등 자연재해가 빈발하는데 그게 대관령산신령축제를 지내 신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저는 역으로 목사님들이 참으로 객관적인 반대 이유는 없으시구나 하고 안도(?)하였습니다. 또 한편으론 그런 구약의 부족신관에 쩌든 목사님들과는 논리적 대화는 불필요하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또 한분 목사님은 “먼저 번 마이산 기쎈타 사건에서 보듯이 어차피 우리가 반대하면 결국 (산신령축제는) 못할 테니 이쯤에서 포기하라”는 최후 통첩성 발언도 했습니다.

비극이었습니다.
결국 입장차이만 확인한 꼴이 돼버렸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교감이 안 될까 해서 여러분을 찾아간 저의 발걸음은 더욱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목사님들의 그런 행위가 저를 포함한 비개신교 일반에게 어떻게 비춰졌을 지는 생각해 보셨습니까?

진안에도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진안군기독교연합회에는 가입이 안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기성교회가 여호와의 증인을 이단(?)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개신교 신자들도 여호와의 증인의 「집총거부」나 「수혈거부」 등의 신앙행위를 이단으로 봅니다. 그것은 사회의 일반적인 가치와 규범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성교회도 과격한 기독교 우월사상이 교회의 울타리 밖으로 표출되어 사회의 일반적인 가치와 규범에 맞지 않으면 당연히 비기독교인들과 마찰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특정한 신앙의 대상도 아닌 조상 전래의 산신령 이미지를 빌린 축제에 대하여 그처럼 반대하는 여러분들의 행동을 비개신교 신자들은 어떻게 받아드리겠습니까?

이번에 「마이산 산신령축제 반대」 세미나에 강사는 「예수전도단」 이 아무개 간사라고 홍보하는 플래카드를 보고 예수전도단이 궁금하여 홈피를 찾아봤더니 충격적인 대목이 있었습니다.
지금 아프간 피랍사태로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개신교 일부의 공격적 선교행위”의 정당한(?) 근거를 그곳에서 찾았기 때문입니다.
즉 그 홈피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www.ywamkorea.org 참조)

1) 훈련(Training): 사역자를 준비시키는 사역
.......<본문과 관련 없어 내용생략>

2) 구제(mercy): 실질적인 도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사역
선교지역, 특히 미전도지역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움으로써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구체적으로 증거한다. 이 일을 위해 난민촌 사역, 미혼모와 고아원사역, 의복과 양식의 혜택, 의료혜택 등을 제공하며 농업기술과 건축기술을 전수하는 등의 사역을 시행한다.

3) 전도 및 선교(Evangelism & Mission):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다양한 은사와 방법을 사용하여
「국가를 이루는 8개의 구성요소」(8Mind-molders: 정치, 경제, 교육, 매스미디어, 예술, 종교, 과학기술, 가정)와 「9개의 변방지역」(9Frontiers: 모슬렘권, 힌두권, 불교권, 공산권,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20세 미만의 사람들, 대도시, 미전도 종족)등의 모든 영역에 복음을 전파한다.

이 내용을 보면 결국 구호와 사랑의 베풂은 결국 선교의 확대를 위한 시늉으로 귀결되는 셈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신 조건 없는 베풂,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 즉 “왼손이 한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가르침”과는 거리가 멉니다.
특히 「국가를 이루는 8개의 구성요소」와 「9개의 변방지역」의 언급은 국가는 물론 전 세계를 (그것도 신앙이 다른 권역을 포함하여) 기독교의 깃발아래 두겠다는 기독교 우월주의에서 비롯한 제국주의적인 발상에 다름 아닙니다.
그래서 산신령을 내몰기 위하여 개척선교에 있어 투지로 무장된 예수선교단 간사를 산신령축제 반대 세미나의 강사로 초청하셨나요?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시간 방금 도착한 아프칸 피랍사태 해결 뉴스의 내용은 반갑기도 하지만 기독교 선교가 최우선 과제인 분에게는 난처할 수밖에 없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피랍자를 전원 석방하는 동시에 앞으로 아프칸에 기독교의 선교는 금지해 달라는 요구에 합의한 대목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선의로 행한다 해도 다원화 시대에 이런 구약성서적인 폐쇄된 선민사상을 내세워 남을 일방적으로 연민하고 간섭한다면 호응은커녕 다른 문화 다른 신앙과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입니다.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봅시다.
가령 어떤 이슬람이 가령(그럴 리도 없지만) 기독교인에게 “여호와는 가짜신이다. 알라만이 진실한 창조주이다.”라고 한다면 기독교인으로서는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성경에 “여호와만이 진실한 신이라” 적혀있다고 반박하시겠습니까? 그러면 상대는 코란에는 알라만이 진실한 신이라고 답변할 것입니다.

또는 가령 불교도가 “기독신앙은 입증할 수도 없는 관념만의 신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열등종교이고 불교만이 지상의 종교다”라고 비난한다면 어쩔 것입니까? 이에 기독교인이 성경을 들어 반박한다면 그도 불교경전을 들어 반박할 것입니다.
아니면 많고 많은 간증사례를 들어 여호와의 영험을 입증하려 해도 그들은 천여래 만보살이라고 할 것이며 많은 불교에서의 해탈과 대각의 경지를 들어 반박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요, 진리라고 생각해도 비기독교도의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도 세상의 많은 종교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어차피 어느 종교건 객관적으로 신의 존재를 입증할 도리는 없습니다. 「파스칼」 같은 천재도 신의 존재증명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신의 존재여부는 도박에 걸고 다만 밑져야 본전이니까 신이 있다는 쪽에 배팅을 한다는 선에서 머물렀습니다.

만일 신의 존재를 누구나 인정하는 쪽으로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었다면 인류는 갈등과 번뇌에서 진즉 벗어나 있을 거고 인류의 문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신앙체험으로 여호와만이 진정한 창조주라고 믿고 있는 순간 다른 종교의 수행자들도 그 종교의 수행방법으로 남다른 신앙체험을 얻어 그 종교의 가르침이 진선진미하다고 확신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믿기 싫어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니까요.

입장은 달라도 서로 간에 기쁘게 신앙생활에 충실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뿐이지 만일에 자신의 신앙체험만을 믿고 다른 종교에 대하여 간섭하거나 우월감을 가진다면 필연적으로 충돌을 유발합니다. 그 충돌이 논쟁으로만 끝나면 다행이겠으나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논쟁에서 감정으로 발전하고 필경에는 전쟁까지 유발하는 사례를 숱하게 보아 왔습니다. 현대에 들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종교분쟁으로 비롯한 테러와 전쟁으로 수많은 애꿎은 생령들이 희생당하고 있는 안타까운 형편을 여러분들도 늘 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산신령축제마저 용납 못하는 여러분은 이런 종교분쟁에서 자유롭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저는 지금 종교적 신념(신앙)은 전혀 논쟁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는 점을 얘기하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분들이 자신의 신앙이 옳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도 자신의 종교가 옳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왜 이해하지 못하십니까?

여러분이 교회 밖을 나와 산신령을 반대한다면 별수 없이 그 점이 논쟁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교리를 들어 산신령을 반대한다면 산신령축제 추진론자들은 여러분의 교리에 의아심을 가질 것입니다. 아마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벗어나 산신령축제를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하면 산신령축제 추진자들이 여러분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하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여러분이 그토록 바라는 개신교 선교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독실한 신자가 현재 진안군의 수장과 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극렬한 반대로 산신령축제가 표류한다면 그 덤터기를 누가 쓸 것인지를 생각이나 해봤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산신령축제를 강행하면 표 안준다고 수장을 압박해서 산신령축제가 표류된다면 비개신교인들은 앞으로 개신교인을 우리의 대표로 선출함에 있어 어떤 태도를 취할 것 같습니까?
결국 여러분의 얼토당토않은 기독교 우월주의는 진안군에 불필요한 마찰과 반목만 가져올게 뻔합니다.

여러분은 솔로몬의 지혜는 곧잘 인용하면서도 스스로는 그 지혜를 왜 발휘하지 않으십니까? 산신령반대와 지지가 서로 싸우다 보면 서로 간에 상처를 입을 것은 뻔합니다. 혹시 피해자가 여러분이 사랑하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가 될지도 모릅니다. 솔로몬이 아니라 누구라도 이런 싸움은 당연히 피할 것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진안군축제발전위원회의 위원들은 그러한 여러분의 행위가 계속된다면 결코 침묵할 수는 없습니다. 부당한 압력에 맥없이 굴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 문제는 단군신화에 대한 일부 개신교의 입장과 더불어 전국적으로도 해묵은 유치한 논쟁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 문제를 좁은 이 지역사회에서 따따부따 할 것이 아니라 저는 전 국민들과 더불어 해법을 찾고자 전국적인 담론화를 추진할 것입니다.

2007. 8. 29



진안군축제발전위원장(진안문화원장) 최 규 영 드림
작성일:2007-08-31 15:42:47 222.105.114.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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