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강가에 엷은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그 물안개 너머 1975년에 만들어진 나지막한 다리가 보인다. 그리고 그 다리 건너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성수면 용포리 반용마을이 나온다. ◆마을의 유래와 역사 성수면 용포리 반용마을은 동래 정씨, 진주 강씨, 옥천 조씨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 예전에는 진주 강씨의 집성촌이었으나 40년 전
흔히 무릉도원이라 하면 마치 이 세상에 없는 아름다운 세계를 말한다. 옛 고전인 작자 연대 미상의 '무릉도원'이라는 책의 내용을 보면 5명의 미인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상대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결국 자신이 정한 상대와 무릉도원에 가서 잘 살았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옛날 부모님이 정해준 상대를 따라 결혼하던 풍습을 생각하면 어쩌면 무릉도
버스터미널에서 처음 만난 한 어머니는 "인생은 비빔밥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버스와 함께 사라졌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빛깔로 만들어가는 세상은 그래서 복잡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서로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일곱 빛깔 무지개를 만드는 마을, 부귀면 봉암리 소태정마을이다. ◆무지개도 쉬어가는 마을 부귀면 봉암리
반듯반듯한 길 사이로 1980년대 도시를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졌던 빨간 벽돌집이 가지런히 있다. 여느 마을에서 볼 수 있음직한 정자나무도 없다. 그러나 마을 사이 직선으로 뻗어 있는 길이 그렇듯 반듯한 사람들이 모여 꿈을 꾸는 마을, 진안읍 연장리 대성마을이다. ◆어머니라는 이름 그늘 한 점 없는 1983.47㎡(600평)의 공간에 옥수수가 가득 심어져 있
진안에서 전주로 가는 26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분홍빛으로 물든 동산을 볼 수 있다. 진안읍 연장리 원연장마을에서 주최하는 꽃잔디 축제가 있는 곳이다. 잘 닦여진 산책로를 따라가는 내내 꽃잔디에서 뿜어 나오는 향기로 마음이 취해버린다. 정상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지만 이내 불어오는 바람에 땀은 식어버린다. 아직 산책로로 정비되지는 않았지
여느 시골마을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에 이끌려 걷기 시작한 마을이다. 1970년대 도시의 산동네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한 마을이다. 작은 시멘트 계단을 오르면 작은 집들이 두어 채 있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다시 작은 집이 두어 채 나온다. 집 안을 들여다보니 농기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농사를 짓는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안읍 단양
인간은 땅을 밟아야만 살 수 있다. 땅을 살아있는 생명으로 대하는 지리과학의 하나인 풍수지리에서 가장 좋은 지형으로 꼽는 것이 배산임수형 마을이다. 성수면 좌포리 봉좌마을이 그런 곳이다. 마을 뒤로는 봉황산이 있고, 앞으로는 섬진강이 흐른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끼리 섬진강으로 나가 천렵도 많이 했지만 이제는 주말이면 외지에서 온 젊은 사람들로 북적이곤 한
새벽녘에 창문을 흔드는 바람소리가 요란하더니 봄비 치고는 꽤 많은 비가 내리는 날이다. 산자락을 휘감고 도는 안개가 아름다운 구봉산 자락 아래에 자리잡은 주천면 운봉리 양명마을을 찾았다. 마을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소나무를 깎아 만든 커다란 솟대들이다. 솟대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을 입구에 세웠다. 지금은 많이 사라져서
인간은 산 아래, 그리고 강 주변을 따라 마을을 형성하면서 살기 시작했다. 산의 능선을 따라 길을 내어 다른 마을로 이동했고, 나무를 베어 땔감을 마련했고, 나물을 뜯어 산길을 넘어 생계를 유지했다. 그건 생명의 길인 산이 있기에 가능했다. 성수면의 끝자락에 자리한 달길마을 또한 만덕산과 세월을 함께 했다. 762m의 만덕산은 완주군 상관면, 소양면과 상관
삼일 째 내리는 봄비에 조용한 시골 마을은 더욱 조용하다. 오암마을 마을회관 문을 열어보니 아무도 없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관촌장이 열린 10일에 마을 엄니들은 거의 대부분 장을 보러 나가신 듯하다. 성수면 중길리는 관촌과 근접한 곳에 위치하고, 진안으로 나가는 버스보다 관촌으로 나가는 버스가 많아서 주로 관촌장을 이용한다. 예전 마령장이 컸을 때
입춘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얼굴에 닿는 바람은 차갑다. 작년 여름 울창했던 마을숲은 자신의 몸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도 70여 그루에 달하는 느티나무와 참나무로 이루어진 마을숲은 이 마을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예전에 마을숲을 없앴다가 마을이 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마을 사람들이 보호하고 있는 아름다운 숲이다. 구불구불 이어진 아스팔트 길을 따
용담면에 소속된 법정리. 용담군 군내면 지역으로 뒷산에 범같이 생긴 바위가 있고 내가 흐르므로 범바우, 호암 또는 호계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호계리라 하여 진안군 용담면에 편입되었다. 현재는 용담댐 건설로 전 마을이 수몰되었으나 옛 마을의 산기슭에 수몰 주민들이 이주하여 새로 호계마을을 조성했다.(진안군 향토문화백과사전 발췌) ◆
얼핏 보면 한 동네로 보인다. 몇 가구 되지도 않는데 설마하니 두 개 마을로 분리되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알고 보면 엄연히 다르다. 한쪽은 용담면 송풍리, 바로 옆은 용담면 월계리다. 송풍리 왕두골 마을과 인접해 있는 마을은 월계리 와정마을이다. 와정마을 역시 왕두골 마을과 함께 용담댐을 바라보고 있다. 본래 왕두골마을과 와정마을은 왕두골 이름으로 묶인
흔한 말로 '개미새끼 한 마리 볼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다'고 했던가. 서늘하고 을씨년스러운 겨울날씨만큼 마을도 조용하다. 마을 주변에 있는 밭에는 알곡을 빼앗긴 쭉정이들만 널어져 있다. 마을엔 낯선 이들을 경계하는 사나운 개들만이 '컹 컹' 짖을 뿐이다. 옥수마을은 용담면을 이루고 있는 대부분 마을이 그러하듯 용담댐 건설로 인해 수몰민들이 집단 이
송풍리에서 정천가는 방향으로 가다보면 왼쪽으로 용담댐 휴게소 가는 길이 나온다. 휴게소로 가는 길로 진입하기 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언덕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이름 하여 왕두골 마을이다. 왕두골 마을은 뒤로는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으로는 용담댐이 흘러 그야말로 배산임수 지역이라 할 수 있으며 대부분 주민들이 용담댐 건설로 인한 수몰민
중앙마을은 이름처럼 송풍리의 중앙에 위치한 마을로 본래는 방화마을에 속해 있었지만 5년 전 하나의 마을로 분리됐다. 또한 마을은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만큼 학교, 우체국 등 주요기관이 들어서 있다. 옹기종기 모여 있기 보다 큰 도로를 중심으로 길게 늘어선 마을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학교 관사를 제외하고 20여 가구, 40여 명이 모여 산다. 마을에 빌라가
어느새 가을도 깊어졌다. 누렇게 익은 벼를 수확하는 모습은 이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문화마을도 예외는 아니다. 집 앞 도로마다 고추며, 나락이 널어져 있다. 용담면 송풍리 문화마을. 용담댐 건설로 인해 생긴 수몰민 이주단지 마을로 10여 년의 짧은 역사를 지닌 마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모정에서 하루를 오전 10시가 안 됐을까. 마을 입구에 세워진 모
방화마을은 송풍리에서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43가구 80여 명이 살고 있다. 방화마을은 방하실과 점촌을 합한 지명으로 방하실은 현재 송풍저수지가 있던 자리에 조성됐던 마을이었지만 저수지가 생기면서 수몰됐다. 또한 점촌은 방하실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옹기점이 있다하여 이름이 유래한다. 방화마을 유래를 듣기 위해 김부원(67) 씨를 만났다. 김부원 씨는 방화마
회룡 2리 마을 전창구 이장에 따르면 회룡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210여 년 전에 남평 문씨가 가족을 이끌고 서울에서 남향하여 정착하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 후 각처에서 모여들어 용담댐 수몰 이전에는 용담에서 제일 큰 마을로 성장하였다. 회룡마을은 현재 회룡1리와 회룡2리, 숨복골로 나눠진다. 회룡1리와 회룡2리는 아랫담, 웃담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아침 8시가 넘었을까. 저 멀리 노온마을 주위로 아침 안개가 자욱하다. 도로변에서는 앞을 가로막은 산 때문에 마을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안개 깔린 그 모습이 신비롭게만 보인다. 노온마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 신비로움 속으로 들어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마을 초입은 조용하기만 하다. 고령화된 마을 노온마을은 현재 46가구 65명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