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식 마령면 평지리 원평지 출신 (주)에스에스프린팅 대표 재경마령초등학교총동창회 재무이사 재경마령면향우회 총무 재경진안군민회 이사 은나라 말기 강태공은 위수 가에 사냥 나왔던 창(昌)을 만나, 의기투합(意氣投合)하여 주왕을 몰아내고 주(周)나라를 세운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강태공은 영구(營丘)에 봉해졌다가 그 곳에서 죽는다. 그를 포함하여 그의 5대손에
한영주 안천면노성리하보(下保)마을 출신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현) 환태평양도시발전협의회 (PRCUD)회장(현) 건설부국토계획조사연구단 연구원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기획조정실장 2002월드컵지원연구단장 전북발전연구원장 역임 누에가 머리를 쳐들고 있는 형국의 잠두혈(蠶頭穴)이라 부르던 뒷동산의 모습도, 뒤안쪽 장독대에 그득히 담겨 있었던 간장독들도, 그리
김 강 호 씨 안천면백화리하배실마을(下梨)출신 光州생활용품할인마트『토탈』대표 시조시인(동아일보신춘문예당선) 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 회장 우리시문학동인 회장 일찍부터 안천은 효열(孝烈)의 고장이다. 또한, 이곳은 용담 현의 지역으로 용담의 연혁과 역사를 같이하고 있다. 물거현(勿居縣)의 백제시대, 청거현(淸居縣)의 통일신라 시대, 그리고 용담현(龍潭縣)의 고려
이 익 노 씨 진안읍 군하리 출신 대흥동 주민센터 동장 제가 하는 일이야 주민들 만나는 일이죠." 이익노(54) 동장은 무척 바빴다. 골목을 누비며 동민의 삶을 챙기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다. 그렇다보니 사무실에 붙어 있는 날이 별로 없다. 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동은 한때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 살던 곳이다. 지금은 인구가 신도심 쪽으로
백 순 안 씨 정천면 망화리 이포마을 출신 재경정천면향우회 부회장 개인택시대표 까마득한 날에/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매화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
김 종 철 씨 백운면 반송리 두원마을 출신 전주시의회 의원 대한주택관리(주) 회장 김종철(47)씨. 마흔한 살의 나이에 전주시의회 의원이 되었다. 처음 의원선거에 도전했을 때 현역의원을 제치고 최다득표를 하며 초선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리고 현재는 재선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김 의원의 고향은 백운면 반송리 두원마을이다. 어린 시절 지금은 폐교가 되어버린 반송
김 회 문 씨 진안읍군하리 출신 외환은행가락동지점장 재경전북대외환은행동문회장 외환은행테니스동호회 간사 그 아버지는 가난했어도 아버지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계셨던 자식을 위한 마음은 항상 누구보다 앞서가고 있었다. 일찍 그 아버지의 꿈을 그가 보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인생(人生)에 대한 두려움을 그 꿈으로 채색할 수가 있었다. 아버지는 항상 마음속에 아들의
손 철 수 씨 부귀면 세동리 신덕마을 출신 인천바르게살기운동회원 인천남구주안5동의용소방대대원 단지촌(시화점) 대표 나의 무릎을 베고 마지막 누우시던 날/쓰린 괴로움을 말로 차마 못하시고/매었던 옷고름 풀고 가슴 내어 뵈더이다./ 까만 젖꼭지는 옛날과 같으오이다/나와 나의 동기 어리던 팔구 남매/따뜻한 품 안에 안겨 이 젖 먹고 크더이다./ 우리고을의 거인(
홍 성 수 씨 진안읍 군상리 노계동 출신 전북은행 효자동지점 지점장 홍성수(51)씨. 그의 고향은 진안 노계동 웃새골이다. (웃새골은 현재 주공2차 아파트가 자리한 곳이다.) 창문을 열면 마이산이 모두 보이는 곳에 자리 잡았던 그의 집, 그곳에서 그는 마이산의 정기를 받으며 학창시절을 보냈노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태어난 곳은 쇠징기라고 하는 곳
이 화 영 씨 성수면 좌포리 양산마을 출신 재경양산향우회 회장 재경성수면향우회 고문 하나종합안전 상무 그는 가끔씩 고향 나들이에 나서서 지금은 모두 떠나고 없어져 폐허된 마을에 세월의 정적만 남아있는 그의 집터의 흔적을 보면서 가슴에 숨겨있는 울적한 감회를 갖는다. 거기서 그는 진안사람들의 향수의 대명사처럼 되어있는 용담댐 수몰민들의 향수와는 또 다른 향수
한 순 남 씨 성수면 외궁리 안평마을 출신 관세청서울세관통관지원과/계장 그녀의 고향 안평(雁坪)마을은 성수면의 소재지 마을이다. 조선말 130여 년 전 난들이라 불리면서 시작된 몇 가구가 자리 잡고 원외궁 마을로 속해 있었던 이 자리에 면사무소, 파출소, 학교, 농협, 우체국 등의 기관들이 들어서고 5일장이 형성 되면서 소재지 마을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 하
송 남 섭 씨 부귀면 신정리 승각마을 출신 대한 칼라 박스포장 대표 겨울이 저만치 물러간 줄 알았다. 겨울은 지나갔으니 으레 봄이 오겠거니 했다. 하지만 겨울은 아직 이라고 말한다. 봄에게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다시 찾아온 겨울, 하얀 눈을 맞으며 지난 19일 고향사람을 만나기 위해 부귀면으로 향했다. 마침 고향사람의 주인공이 사업차 진
동향면 신송리 출신 강호빈(56)씨가 논산소방서장으로 지난 6일 부임했다. 강호빈 서장은 장수 계북초등학교와 장계중학교, 대전고등학교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건양대학교 행정학과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올 12월 말이 정년인 강 서장은 퇴임 후에 사회복지 관련 시설의 원장으로 활동할 계획이다. 강호빈 서장은 1977년 3월 소방공무원으로 입문해
우리군 상공인회 김정호 회장의 아들 진수(조선대학교 4학년)씨가 제6회 임베디드소프트웨어 공모대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번에 참여한 팀은 총 320개 팀이며, 이들은 예선을 거쳐 180개 팀이 본선에서 경쟁을 벌였다. 그 가운데 김진수씨가 소속된 이니셜에프팀이 대상을 수상했다. 공모대전은 지식경제부가 주최하고, 한국정보산업연합회, 임베디드소프트웨어산업협의회
최 창 호 씨 성수면좌포리증자부락 출신 서울시구로구주민자치위원회 회장 새마을운동본부구로2동 회장 서울시구로구재향군인회 회장 수빈AIC주식회사 대표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은 『삼국사기』「신라본기 진흥왕조 난랑비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國有玄妙之道하니 曰風流라…) 가르침을
우리군 출신 성점수(52)씨가 북전주세무서장으로 부임했다. 성 서장은 1987년 행정사무관으로 임용되면서 국세청에서 근무를 시작해 2002년 11월에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성 서장은 육군사관학교 36기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수료했다. 이후 재무부에서 근무한 성점수 서장은 대구, 인천, 수원 등 총무과장과 법인세과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서울지방국세
강 만 영 씨 마령면 평지리 송내마을 출신 한국문인협회회원 한국아동문학회 이사 한국아동문학작가회의 부회장 강만영(72)씨의 고향은 마령면 평지리 송내마을이다. 그의 고향이 마령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사실은 다르다. 마령면이 아닌 백운면에서 태어났다. 말 못할 사정이 있어 보여 더는 묻지 않았다. 진안이 고향이기 때문이다. ◆조실부모 자수성
최 미 자 씨 용담면 와정리 와정마을 출신 서울특별시 구로구의회 의원 민주당구로을구당여성위원장 민주당지방의원협의회 부회장 1970년대 청계천 한 작은 피복 공장에서 일하던 한 청년이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근로자를 혹사하지 말라!" 이렇게 외치며 분신 자결한 이 후 불기 시작한 산업현장의 속칭 또는 자칭 공순이와 공돌이들의 노동운동은 열악
재전 진안군 향우회 임병찬 회장이 지난 15일 연임됐다. 이날 재전 진안군 향우회 신년하례식은 3부로 나눠 진행됐다. 제1부에서는 2009년 정기총회를 열고 임원을 선출한 결과 임병찬 회장이 또다시 재전 진안군 향우회장으로 만장일치 추대됐다. 이어 열린 2009 신년하례식에서는 백운면 봉학리에 살고 있는 이성근(101) 옹이 직접 임병찬 회장으로부터 장수패
송 숙 자 씨 주천면 신양리 금평마을 대전 계룡버스(주) 버스 운전기사 자정을 넘기고서야 송숙자(52)씨를 만날 수 있었다. 송씨의 직장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다 보니 늦어졌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 송씨와 이야기할 곳이 마땅치 않아 송씨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송씨는 대전 서구 둔산동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2남2녀의 자녀를 두고 남편과 함께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