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풍리 회룡마을 스나다 요시미씨
오히라구니에(일본)

▲ 스나다 요시미 씨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 회룡마을에 한국에 온 지 17년이 되는 일본 며느리 스나다 요시미(48)씨가 있다.
그녀는 남편 고양용(49)씨와의 사이에 딸(16살), 그리고 11년 아래인 아들(6살)을 두고 있다.

현재 시부모님과 남편, 아이 둘 6명이 함께 살고 있지만 95년 4월,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인 회룡마을에 왔을 때는 시부모님, 시동생, 중학생이었던 막내 시누이, 시숙님과 조카 3명, 그리고 본인 가족까지 합쳐서 11명이나 되는 아주 대가족이었다.

남편 고양용씨는 7명 형제 중 둘째인데 위에는 형님 1명, 아래는 남동생 3명과 여동생 2명이 있어 고향에 귀향하고 나서는 부모님 일을 도우면서 가족을 위해서 기둥 역할을 해내고 있다.
거기에 일본 며느리인 요시미씨는 낯설고 물설은 시골마을에서 며느리일, 아내일, 엄마 일을 묵묵히 잘 해내고 있다.

처음에는 주위사람들이 일본 며느리가 많은 식구들 사이에서 시골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하고 궁금해 관심 있게 보고 있었지만 잘해내고 있는 것을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녀는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남편 고양용씨는 어떤 모임이 있을 때나 좋은 것이 있으면 부인에게 꼭 갖다 줄 정도로 애처가이다.
지금 집 가까이에 작년 서울에서 살다가 가족과 함께 귀향한 바로 밑 시동생 가족이 살고 있다. 시동생 부인(동서)도 일본인이다.

거기에 올해 봄부터 또 다른 동생 가족이 살게 됐는데, 그 동생도 일본인과 결혼했고, 시누이는 일본에서 약 10년 살다가 두 아이를 위해서 한국생활과 한국교육을 경험시키고 싶어서 얼마정도 기간을 두고 시동생 가족이 살고 있는 곳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요시미씨 가족은 한국과 일본 간의 국제가정이 3가정이나 있는 셈이다.

이 모든 것들은 세계평화가정연합에서 이루어진 인연 때문이다. 거기에 고씨 집으로 첫째 외국며느리로 잘 생활해 낸 요시미씨의 숨은 공이 들어있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 온 그녀를 보면서 가족들의 믿음이 일본인으로 인연을 맺게 한 것이다.
이제 세계가 이웃집 같이 가까워지고, 그만큼 영향도 많이 받게 되어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있어서도 과거의 어려운 문제를 뛰어 넘어서서 서로가 돕고 협력할 수 있는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의 관심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국제결혼을 통해서 가는 길이 가장 빠르고 현명한 길 일 수가 있다.

나를 사랑해주는 어머니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외국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국제가정 아이들은 서로의 나라가 맞서는 스포츠 시합을 보게 되면 어느 쪽도 응원을 안 한다.
그들은 벌써 양 국가를 사랑하는 심정이 있기 때문이다.
요시미씨에게 지금 생활하고 있는 소감을 들었는데, 그중에 인상이 깊은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귀향하고 나서 열심히 일을 했어요. 한때는 소가 40마리까지 늘었는데 사료 사느라, 빚 갚느라 지금은 10마리로 줄여 버렸어요. 고추와 쌀농사도 조금 하고 있는데, 열심히 일하는데 비해 수입이 적어요. 그래서 여유 있게 풍요롭게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요."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딸이 있는데, 딸은 오랜 세월동안 동생 없이 외동딸같이 컸어요. 잘 커줘서 고맙게 느껴요. 왜냐하면 입시 때가 왔는데 준비하지 않은 친구들을 걱정하고 있는 거예요. 남을 생각할 만큼 시야가 넓은 것을 보고 대가족속에서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나 혼자 키웠으면 딸이 그렇게 성장하지 못했을 거예요."

"한국 엄마들이 자식에게 공부해라 외치는 것을 요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생활에 억압받지 않도록 경쟁사회에 이기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이 아팠어요."
"딸은 세계에 나가고 싶어 해요. 외교관이 되고 싶대요. 우리는 바다를 넘어서 왔기 때문에 2세는 바다는 물론 세계로 갈 수 있는 인재가 아닐까라고 희망을 가져 보기도 해요."
"지금 동서도, 시누이도 있어서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재미있어요. 옛날에는 모든 것 따라가기만 해도 어려웠거든요."
요시미씨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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