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이야기 116 부귀면 봉암리 소태정마을

▲ 무지개도 쉬어가는 소태정 마을 전경

버스터미널에서 처음 만난 한 어머니는 "인생은 비빔밥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버스와 함께 사라졌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빛깔로 만들어가는 세상은 그래서 복잡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서로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일곱 빛깔 무지개를 만드는 마을, 부귀면 봉암리 소태정마을이다.
 
◆무지개도 쉬어가는 마을
부귀면 봉암리 소태정마을은 진안에서 완주로 넘어가는 26번 국도 바로 아래에 위치한다. 소태정마을은 바로 26번 국도의 역사와 그 시간을 같이 한다.

국도가 생기기전에는 산골 오지마을 중 하나였다. 조선 중엽쯤에 김해 김씨에 의해 이루어진 마을로 이후 이씨, 정씨, 박씨가 들어와 살면서 30호 정도가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1993년에 26번 국도가 생기면서 국도변 바로 아래에 위치한 집들이 하나둘 씩 떠나기 시작했다.

이에 군에서 기반조성사업을 하면서 마을 하천 왼쪽으로 다시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소태정마을 출신인 김택수 씨(48)는 "집이 어떤 불을 지피는지를 보면 그 마을의 변천을 알 수 있다. 아궁이에서 연탄보일러가 들어왔고, 그 다음에 기름보일러가 들어왔는데 우리 마을은 아궁이 때다가 바로 기름보일러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우리 마을이 30호 정도 살았는데 국도 생기면서 반으로 줄었다가 다시 30호로 늘어난 마을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소태정마을은 그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마을천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위치한 김영미 씨 집을 제외하고 모든 집들이 왼쪽에 위치하고, 빨간 벽돌집들이 일직선으로 뻗은 길을 따라 반듯하게 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150여년 된 정자나무를 만날 수 있다.
"우리 어렸을 때 이 나무에 커다란 구멍이 있었는데 거기서 술래잡기 하고 놀았어. 그 구멍에 숨어 있으면 멀리서도 안 보일 정도였거든. 그런데 나무가 살이 찌면서 구멍이 메꾸어지더라구."
소태정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한 할아버지는 그 때의 일을 기억하며 주름살 사이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 소태정마을 최고령자 손양림 할머니
소태정마을 앞뒤로는 두 개의 커다란 봉우리가 있다. 앞산은 한량봉이라 하고, 뒷산은 삿갓봉이라고 한다. 한량봉에서는 1980년 초까지 산신제를 지냈다. 제주로 정해진 사람은 한 달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또한 제주가 살고 있는 집 대문에는 금줄을 쳐놓아 외부 사람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였다. 정월 초사흗날이 되면 새벽에 산으로 들어가 목욕을 하고 저녁이 되면 제주와 음식을 들고 올라가는 사람 몇 사람만 제사를 지내러 산에 오른다. 그 외 다른 사람은 산 아래에서 풍물을 쳤다.

"한량봉에서 한량이 보룡재를 넘어가면서 삿갓을 삿갓봉에 던져놓고 여기서 쉬어갔지."
소태정마을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다.
용이 걸어가는 길처럼 구불구불한 보룡재를 넘어 전주장을 보러가던 진안의 모든 사람은 반드시 소태정(小台亭)에서 쉬어가야만 했다. 말을 타고 가던 선비들도 소태정에서 말을 쉬어가게 했다.

그래서 한 때 마을 한 편에는 말 무덤이 있었다.
그 길이 워낙 험한데다가 이쯤에서 한 번 쉬어가지 않으면 전주까지 가는 길이 고달팠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때 마을에는 주막이 많았다. 오죽하면 지나가던 한량도 삿갓을 던져놓고 쉬어갔으랴.
 
◆일곱 빛깔 무지개
그래서 완주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소태정마을은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 전주 등 타지에서 살다가 들어온 사람 등 여러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각기 다른 빛깔로 살고 있다.
2년 전 예전 방식 그대로 살고 싶어서 소태정마을로 들어온 김영미 씨(51)는 가끔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 구들에 불을 때고, 겨울이면 화로를 옆에 끼고 살고, 전기불 놔두고 호롱불 아래 책을 본다.
"도시에서는 모든 것이 소비적이야. 무조건 나가면 돈이야. 그런데 여기는 자연이 보물이야. 자급자족할 수 있으면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 없어."

콩밭에 난 잡초를 뽑느라 얼굴이 까맣게 타들어가도 마음만은 그 어느때 보다 행복하다.
경기도에서 음악카페를 운영하던 박필례 씨(51)는 이 마을 토박이 김택수 씨와 결혼하면서 농부의 아내로 살아가고 있다.
"처음에는 답답했는데 지금은 여기가 더 재미있어. 우리 술멕이 할 때면 얼마나 재미있는데. 우리 마을에 놀러 와요."

소태정마을에 60세 이상 노인은 70%를 차지한다. 혼자 사는 가구도 7가구이다. 귀농한 가구도 7가구다. 노심규 이장도 귀농인이다. 처음에는 거석리에 살다가 소태정마을로 들어온지 4년째이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함께 모여 살고 있는 소태정마을 입구 정자나무에는 오늘도 일곱 빛깔 무지재가 잠시 쉬어가기 위해 턱을 고이고 가만히 누워 있다.

▲ 산으로 들로 마음껏 뛰어다니며 크는 29마리의 흑염소는 김택수 씨의 애정과 관심으로 무럭무럭 크고 있다.
▲ 노심규 이장과 마을사람들이 마을입구 정자나무 아래에 모였다.
▲ 김택수씨와 박필례씨가 감자수확에 한창이다.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