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이야기 117 주천면 무릉리 강촌마을

▲ 강촌마을 마을 표지석과 나란히 한 무릉원 간판이 무릉도원을 떠올리게 한다.
흔히 무릉도원이라 하면 마치 이 세상에 없는 아름다운 세계를 말한다.
옛 고전인 작자 연대 미상의 '무릉도원'이라는 책의 내용을 보면 5명의 미인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상대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결국 자신이 정한 상대와 무릉도원에 가서 잘 살았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옛날 부모님이 정해준 상대를 따라 결혼하던 풍습을 생각하면 어쩌면 무릉도원이라는 곳은 저 멀리 있는 세상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세상이 아닐까 싶다.
주천면 무릉리 강촌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그렇게 조금씩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마을이다.
 
▲ 자신의 까만 살을 드러낸 채 600년의 수명을 다한 대추나무
◆마을의 유래와 역사
강촌마을은 본래 용담현 이서면 구역에 속하였다가 1914년 일제식민시대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주천면 무릉리에 속하게 되었다.
마을 이름은 원래 맨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하촌', '아랫말'이라 불렀으나 어감이 좋지 않다 하여 '강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강등웅 노인회장(75)은 "아래 하(下)니까 마을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했어. 처음에는 여기가 무릉리니까 복숭아 도(桃)를 사용하여 도촌이라고 하려다 용덕리에 같은 마을 이름이 있어 다른 것으로 하자 한 것이 강촌(江村)이야."라고 말한다.

강촌이라는 이름은 마을 뒤에 위치한 강경들에서 따와 1972년부터 강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강촌마을은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인민군 주둔을 막기 위해 마을 집을 모두 태워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전쟁을 피해 용덕리, 주양리, 완주 등으로 피난을 가서 살았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다시 돌아와 집을 짓고 살았다.

강등웅 노인회장은 "전쟁 끝나고 2년 뒤에 들어와 살았는데 그 때까지도 인민군이 남아 있었어. 그래 사람들이 마을 위에 고지집을 짓고 한데 모여 살면서 밤에는 총을 들고 보초를 서곤 했어."라고 말한다.
강정웅 씨(70)는 "전쟁 나기 전에만 해도 150가구는 족히 되었지. 그런데 전쟁 나고 모두 피난가고 나서 뿔뿔이 흩어졌어. 지금은 18가구 정도 되지."라고 말한다.

강촌마을의 산신제는 음력 1월 3일과 10월 3일에 마을 뒷산에 있는 산제당에서 지냈다. 처음 지낼 때에는 어자, 선암, 강촌 3개 마을이 합동으로 지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강촌마을만 지내다가 2008년부터는 지내지 않는다.
최정수 이장은 "그냥 마을 행사로 생각하면 좋은데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일종의 미신이라 하여 지내지 않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그 외에도 매년 음력 1월 14일에 한 해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거리제를 지냈다. 거리제는 마을 앞 소나무가 있는 정자나무 거리에서 지냈다.
현재는 마을천렵이라 하여 농사일이 한가해지는 여름날 중 한 날을 잡아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는 행사를 가진다.
"옛날에는 여기 도랑에서 뱀장어도 잡고 그랬는데 지금은 고기를 잡고 싶어도 못 잡어."

또한 박희종 씨 집 마당에는 600여년 된 대추나무가 있다.
남궁선순 씨는 "원광대학교 교수가 왔었는데 대추나무가 이렇게 오래 자라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뭐 이것저것 해보더니 600년 정도는 되었을 거라고 하더라구. 그 뒤에도 몇몇 사람이 다른 나무 심어 줄 테니 이 나무를 팔라고 했는데 안 팔았어요."

현재 대추나무는 이미 자신의 생명을 다하고 자신의 까만 뼈만 앙상하게 드러내놓고 있다. 남궁선순 씨는 "매년 5월이면 '무릉리 낭만의 밤'이라 해서 아는 지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고 즐기는 자리가 있는데 이승철 관장님이 오셔서 굿을 지내요. 상할아버지에 대한 일종의 예의라고 할 수 있죠."라고 말한다.
현재 대추나무는 2004년 11월 5일에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 강정웅 전 강촌마을 이장
◆무릉도원을 꿈꾸다
강촌마을은 현재 18가구가 살고 있다. 그 중에 귀향까지 포함하면 11가구가 귀농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정수 이장은 2005년에 서울에서 귀농하여 작년부터 이장을 맡고 있다.
"여기 오니까 너무 좋지요. 말년을 부지런히 그리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거 같아요."

이제는 귀농이라고 말 할 수 없는 박희종, 남궁선순 씨 부부는 강촌마을에 처음 들어온 것이 1986년이다. 현재는 무릉원을 운영하고 있는 남궁선순 씨는 "저희가 본격적으로 이곳에 와서 산 것은 1994년이죠. 지금 이 정도까지 되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어요."라고 말한다.

2009년에 귀농한 최광민, 나정임 부부는 고모가 살던 곳에 새로 집을 지어 들어와 살고 있다. 그리고 요양차 왔다가 아예 들어 온 사람 등 각자 저마다의 색깔과 모습을 가지고 들어와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마을이다.

강촌마을 토박이인 강정웅 씨는 "편해지기는 했지만 예전보다 재미는 없어."라고 말한다.
강등웅 씨도 "인심이 예전만큼 못해."라고 말하는 얼굴 사이에 희미한 옛 기억의 아련함이 지나간다.

▲ 2005년에 귀농한 최정수, 박정열 부부는 아름다운 현실세계인 무릉도원을 살아간다.
▲ 최정수 씨의 손자들이 방학을 맞아 할아버지 집을 찾아 왔다. 하루종일 물 속에서 고기 잡고, 옥수수 먹고, 평상에 누워 낮잠도 자면 그곳이 천국이다.
▲ 무릉원에서 만든 솟대들이 하얀 구름과 함께 하늘로 올라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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