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읍 단양리 새마을 윤상목·최영식 부부

▲ 윤상목, 최영식 부부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사람은 언젠가 고향으로 향하는 원초적인 본능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본능을 수구초심이라 한다. 수구초심의 고사성어처럼 사람도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 마찬가지로 고향의 품이 그립고, 고향의 향수를 느끼고 싶어, 귀향한 사람이 있다.

바로 윤상목 씨다. 그는 아내 최영식 씨와 함께 어머님이 생전에 머문 곳에서 살고 있다. 8년 전 윤상목 씨가 어머니의 편안한 여생을 위해 짓은 집에서. 부부가 고향으로 내려온 것은 36년간 근무한 삼성전자에서 윤상목 씨가 상무로 퇴임하고서다. 삼성전자를 퇴임한 그를 친구들은 도시에서 함께 지낼 것을 권유했지만 모든 것을 뒤로하고, 윤상목 씨는 고향을 선택했다.
 
고향에서 시작하는 삶
도시에서 생활한 윤상목(57)·최영식(55) 부부. 진안읍 새마을마을에 살고 있다. 둘은 이 마을에서 살면서 마을주민들과 격식을 차릴 것 없이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 고향이 그래서 좋은 것 같았다.
윤상목 씨는 고향으로 향할 때 다소 아내가 걱정됐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아내가 시골생활에 잘 적응할까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마을주민들과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퇴임하면 고향에 오려고 마음먹었다. 수원에서 살던 아내가 시골에서 잘 적응할까 걱정이었다. 그런데 잘 지내고 있다. 서예작가로 활동한 아내가 조금 안정되면 취미생활을 했으면 한다."
지금은 조그마한 텃밭을 가꾸고 있지만 나름의 계획도 세우고 있다. 후손들을 위해서 그리고 진안을 위해서 장기적인 비전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 진안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정보도 수집하고, 준비하면서 2~3년 트레이닝을 할 것이다. 이 과정이 끝나면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진안과 진안의 후배들을 위한 장기적인 비전을 만들 것이다."
윤상목 씨는 진안의 후배들을 위해 그리고 진안을 위해 무엇인가 남기려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삼성전자 발탁에서 상무퇴임까지
1972년. 윤상목 씨는 전주공고 졸업을 앞두고 삼성전자에 발탁됐다. 그러면서 수원에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회사가 설립하면서 초창기 구성원으로 일한 윤상목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일하게 상무자리까지 올랐다.

그만큼 윤상목 씨의 성실함과 노력 그리고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비록 윤상목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리더십으로 몇 천 명을 거느리는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러한 리더십으로 윤상묵 씨는 98년에 영국, 말레이시아, 브라질, 헝가리, 태국, 중국, 필리핀 등 국외에 전자렌지 5,000만대를 판매하는 성과를 올렸다.

"지금은 1억대가 넘었을 것이다. 이 많은 외국의 본사 공장을 다 돌아다녔다. 공장을 짓고, 생산을 위한 출장이었다."
윤상목 씨는 삼성전자의 일등 공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조·생산의 총괄했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쟁쟁한 인재들을 실력과 능력에서 앞선 것이다.

이처럼 윤상목 씨는 경쟁력과 리더십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를 했다. 아마도 생존경쟁을 위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이런 노력은 한 달에 한번 밖에 쉬지 못하는 여건에서도 밤 10시, 토요일 철야, 일요일 근무를 하면서 견뎠다. 그렇게 근무를 해도 물건이 부족할 정도였다니 업무량의 과중을 알 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혼자 공부도 많이 했다. 서울대, 연세대 등 통솔하려면 이들보다 더 알아야 했다. 그리고 부하직원들을 힘으로 끌어당기는 것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이 필요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책보고, 연구하며 공부했다. 앞서가기 위해서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다."

윤상목 씨는 그렇게 노력했다. 윤상목 씨는 삼성그룹의 상무자리에 오르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성취감과 리더로써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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