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쓰는 편지
권정이(68, 동향 학선리 을곡)

딸로 태어난 것이 죄가 됐고, 어려웠던 가정형편때문에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 어르신들에게 한이 됐습니다. 그런 어르신들이, 나이를 먹어서는 부끄러워서 내색도 못했던 한글 익히기에 나섰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향해 자신의 마음을 내 보였습니다.
처음 글을 배우고 쓴 글들이 조금은 투박해 보이지만, 그 글들은 어르신들이 살아온 인생을 꿰뚫고 있으며, 생명의 씨앗을 뿌리듯이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글속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도 담뿍 담겨있습니다.
어르신들의 정성이 가득 담긴 편지글을 한 편씩 소개합니다. 독자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어느듯 세월이 유수가치 빨러고나. 벌써 팔월이 중순이 접어 들으가는구나.
나는 양님 딸 하나를 너무나 일을 많이 시키서 후에가 데는구나.
왜 너는 철이 일찍 들으서 학교 갔다오면 호미들고 밭터로 '엄마'하면서 호미들고 밭매로 와서 나랑 갓치 밭매고, 숙재도 못하고 이재와서 생각하니 너무나 마음이 압푸다.
소풍 가는날은 공부 안한다고 학교도 못가게 하고, 이재와서 생각하니 너무너무 미안하고 가섬이 쓰리고 압푸고나.
공부 안하는 날은 아기 보라고 학교도 못가게 하고, 철이 너무나 일찍 들으서 초등학교 이항년때부터 학독에다 고추 갈아서 김치 담아서 밥해주고 한 생각 하면 내 마음이 압푸다.
엄마 원망하지 말고 행복하게 잘 사라라.
어리썰때부터 밥도 잘했자나.
시집 가서도 무선거 없시 잘했자나.
돈은 있다가도 없설 수 있고, 없다가도 있설수 있다.
아들 딸 보면 재미나자나. 손자손녀 보면 나는 재미있다.
내 딸 행복하게 잘 사라라.
건강해라. 항상 몸조심 하그라.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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