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람

▲ 서수원 씨
서 수 원 씨
·진안읍 운산리 유산마을 출신
·서울시 9급 공채합격(종로구청)
·행정5급 임관(송파구삼전동장)
·행정4급 진급(광진구청경영기획국장)
·녹조근정훈장(대통령)
·사회복지사(2급)
·재경진안군민회 자문위원

사람들은 흔히 어딘가에 있음직한 그 파랑새를 찾아서 멀리, 아주 멀리 어려운 길을 떠난다. 그것을 사람들은 인생이라고 이름 한다. 그리고 그 파랑새는 어딘가에 있는 행복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 파랑새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고 항상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둥지를 틀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다만 사람들은 머리서 그것을 찾고 있었다.

벨기에의 문학자 마테를 링크는 그의 희곡에서 항상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파랑새라는 희망의 상징을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준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나무꾼의 두 남매가 꿈을 꾼다. 꿈속에서 요술쟁이 할머니가 나타나서 파랑새를 찾아달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파랑새라고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행복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우리에게 은유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두 남매는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서 멀리 여행길에 나선다. 죽음의 나라를 두루 살피고, 또 과거의 나라를 빙 돌아서 두루두루 세상을 편력한다. 그러나 아무데서도 행복의 파랑새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자기 집에 돌아와서야 집 문에 매달린 새장 안에서 그 행복의 파랑새를 만난다.
 
우리의 고향사람 서수원씨.
그는 1950년 3월, 아버지 서택용씨와 어머니 이부흥 여사 사이에서 일가의 5남매 중 넷째아들로 태어난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이고 거의 평생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살아 왔노라고 그는 눈시울을 적신다. 그 이후 다섯 남매를 기르시느라 거칠어진 어머니의 손과 굵어진 손마디 마디마다 훈장처럼 맺혀있는 어머니 세월의 그 뒤안길을 읽으면서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의 아픈 고마움을 깨닫는단다. 구르는 가을낙엽이거나 그 가을바람에 흔들거리는 코스모스를 바라보면서도 생명의 고귀함을 느끼며 주마등 같이 지나간 어린 시절과 어렵게 자라 온 그 주변들에 아직껏 흔적으로 남아있는 어머니의 그림자가 큰 울타리처럼 그에게 다가온다고 했다.

그의 고향 유산(乳山)마을은 부귀산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줄기에서 유산 방죽 뒤쪽에서 성적골을 통하여 마을 뒷산으로 이어진다. 마을 뒷산 봉우리를 유봉이라 부르며, 칼날바위날이 안산 역할을 한다. 마을은 소가 누어있는 형국으로 와우혈(臥牛穴)이라고 한다. 마을 앞에서 보면 마을 뒷산 한 가운데 두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이를 유봉이라고 하며, 신흥마을 쪽에 머리 형태로 되어있는 곳을 쇠머리봉 이라고 한다.

그가 1969년 9월 서울시 공무원공채시험에 합격하고 고향을 떠나기까지 그는 진안초등학교와 진안중학교, 그리고 진안농고에서 수학하는 동안 또는 40년의 공직생활을 마치는 동안에도 항상 인간사회의 질서(秩序)와 근본(根本)에 관하여 필연적 의미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다고 했다. 중용15장의 '먼 곳을 감에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출발함과 같고, 높은 곳에 오름에는 반드시 낮은 곳에서 출발함과 같다.'거나 또는 시경에서는 '처자의 어울림이 거문고를 타듯하고, 형제는 뜻이 맞아 화합하며 즐거웁고나, 너의 집안 화목케 하며, 너의 처자 즐거우리라.' 또 맹자 진심편(盡心篇)에서는 '흐르는 물은 그 성질이 낮은 웅덩이를 먼저 채워놓지 않고서는 앞으로 흘러가지 않는다.'하였다.

이것들이 그가 마음속 깊게 간직하고 있었던 근본(根本)과 질서(秩序)였다. 행원자이(行遠自邇)요, 등고자비(登高自卑)라. 옛말에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지 않은가?
우리고향의 자수성가(自手成家)한 모든 이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그 역시 배움에 관한 갈증을 풀기 위하여 혼신의 노력으로 세상을 살아왔다.

1998년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최고관리자과정을 수료하였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한다. 2007년 서울시립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면서, 졸업논문 "노인 일자리 찾기"로 석사학위를 수여받고, 2급사회복지사 자격시험에 합격, 공직 퇴임이후 그의 활동영역을 짐작케 한다. 2009년 한양대학교 행정자치대학원 고위정책과정을 수료, 2010년 6월, 40년간 몸 담아 온 공직을 정년퇴임 한다.
그 날, 국가는 그의 공로를 높이 치하하고 녹조근정훈장을 수여하였다.

우리의 고향사람 서수원씨.
서수원씨는 1976년 12월, 그의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그런 것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사람 하나만 바라보며 그와 결혼한 그의 아내 김순영(충주,48년생)여사에게 34년 내조(內助)에 관한 고마움을 사랑으로 전한다고 했다. 그의 슬하(膝下) 두 남매에게도 자신의 평생 신념으로 간직한 마음을 가훈(家訓)으로 이렇게 전한다고 그랬다.

탄주지어(呑舟之魚) 불유지류(不遊支流):큰 물고기는 얕은 개울에서 놀지 아니하고
홍곡고비(鴻鵠高飛) 불집오지(不集汚池):큰 새는 높이 날지 더러운 연못에 모이지 않는다.
서수원씨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전한다고 했다.
오늘은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설 차례다. 하루, 하루를 새로운 출발로, 새로운 만남으로, 그리고 새로운 도전으로 지금 이 시점이 끝이 아니고 시작임을 항상 기억하자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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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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