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람

▲ 김미승 씨
김미승 씨
백운면 동창리 석전마을 출신
(주)만능의료기대표역임
주식회사 parawell대표이사
재경백운면 향우회 이사

어린 소녀 적 길을 가다 우연하게 스쳤던 어느 낯모르는 할머니의 허리 구부러진 행색을 보다가 그 녀가 한 가지 마음속에 꿈을 간직했다면, 어머니를 따라서 5일장에 나갔다가 구걸하는 전쟁 피난민 어린 남매의 행색을 지켜보면서 또 다른 하나의 꿈을 간직 했다면, 그리고 또 후일 오랜 시간을 지나서 철들면서 자신이 관여하던 안양의 조그마한 감리교회에 드나들면서 신이 창조하신 이 세상 곳곳의 빈곤과 질병 앞에 가슴 아파하면서 외면할 수 없는 또 하나의 꿈을 그 녀의 가슴에 묻었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의 그 꿈들을 들어볼만 하지 않은가.

그녀는 말한다. 인간의 행복은 건강한 삶에서만 가능한 것임을.
그녀는 꿈꾼다.
천혜의 청정지역 진안고원에 양노기관「기로촌(耆老村)」을 세워놓고 인간과 자연환경 그리고 사회구조의 상관성을 바탕으로 모든 인간들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에서 노인질병(老人疾病)으로 고통 받는 건강에 관한 문제를 풀어가고 싶어 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실생활에 필요한 이 나라에 전통적으로 내려 온 건강지식을 계도하고 현대인들에게 인간과 자연 속에 오래 전해오는 기(氣)의 의미와 민간요법의 체험 장으로 삼아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를 훨씬 넘긴 늙은 부부가 건강하게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마을로 가꾸고 싶다고 했다. 그녀 부모들의 병고(病苦)를 지켜본 그로서는 더욱 더 간절한 생각이다.
후진국 선교사업도, 자매결연을 통한 고아들의 문제들도 그 녀가 갖고 있는 너무나 크고 깊은 꿈의 영역들이다.

우리의 고향사람 김미승씨.
필자가 그 녀와 대좌한 100분 동안 필자가 느낀 것은 그의 표정은 항상 잔잔한 미소로 포장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가슴에 담고 있는 인간적 고뇌와 오래 풀지 못한 상처의 흔적에서 자기관리를 잘 감당하고 있었다고 생각이 된다.
고향과 그리고 부모님의 이야기에서는 정으로 닮은 가느다란 눈물도 보였다.
아버지 김복실씨와 어머니 박삼순씨 사이에서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단다.

그의 부모들은 젊은 시절 타지에서 들어와 석전마을에 정착하였다고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논, 밭농사 보다 특용작물이나 또는 마을에서는 최초로 축사를 짓고 대량으로 가축을 기른다거나 하는 당시의 농촌으로서는 상당히 앞서가고 있었다고 그 녀는 술회하고 있다. 어쩌면 당시 농촌의 앞서가는 선각자였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장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아버지는 손재주도 뛰어나서 농기구의 개량이나 수리등 이 마을에서는 없어서는 아쉬운 인물로 그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만류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고향 석전마을은 풍수지리상 '배(舟)형국'이라 한다. 그래서 객지에서 온 사람이 부자가 되었다는 속설이 있다. 그리고 배에서 짐을 아래쪽에서 싣는다고 하여 위뜸보다 아래뜸이 잘 산다고 전해 온단다. 본래 석전이란 돌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김미승씨가 작은 오빠를 따라서 고향을 떠난 것은 순전히 앞서 기록한 그 꿈을 위하여 돈을 벌어야 하겠다는 생각 때문 이였다. 그 녀는 항상 생각을 많이 했고, 그리고 혼자서 결론을 내렸다. 그는 상처를 받으면 오래 간다는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항상 잘 웃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 왔다. 그는 그가 전주의 한 백화점에서 4년간 일하면서 자기의 그러한 인격이 형성된 것 같다고도 했다. 그렇게 그녀는 서른두 살이 될 때까지 백화점 패션개인매장과 샵 등에서 일하면서 세월을 보낸다. 그러한 그 녀에게 인척으로부터 의료기 사업에 관한 권유를 받는다. 심사숙고 끝에 그렇게 만난 일진의료기에서 3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그녀는 이 사업이 자신에게 제시한 신의 운명적 정체, 그 것임이 점점 마음에 다가왔다고 말한다. 그렇게 의료기기 무료체험으로 15년의 꿈을 키워 왔다.

서울과 대전 광주 전주 대구 분당 수원 부천 안양 등에 20여개의 파라웰건강센타가 활동하고 있으며 중국, 필립핀 등 외국에도 10여개의 파라웰건강센타가 추진 중에 있단다.
그는 새로운 회사명으로 새롭게 단장한 홈페이지에서 이렇게 인사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의 세계기업으로 우뚝 서기 위하여 새로운 회사명 (주식회사 파라웰)으로 또다시 비상을 준비 하였습니다. 앞으로 더욱 활기차고 정직한 기업으로 (주)만능의료기를 사랑해 주신 고객님들께 주식회사 파라웰이 달려가겠습니다.…」

우리의 고향사람 김미승씨.
그 시절 농촌에서는 선구자적 역할을 하시다가 돌아가신 그들 4남매의 아버지 김복실씨는 「형제가 서로 우애(友愛)하라.」는 유훈(遺訓)을 남겼고, 그들은 그것을 지금껏 잘 지켜간다고 했다. 김미승씨는 자신의 꿈을 사명감으로 마음에 새기고 있으며 체험에 임함에는 차별이 없음을 강조한다. 그는 항상 나서지 않고 듣는 편이란다.
그 녀는 가끔씩 자신의 마음속 감정의 관리가 어려울 때 고향을 간다.
엄마의 무덤가에 그냥 정(情)이 가서 좋아진 노란색 후리지아 꽃 한 다발을 바쳐놓고 언제던가 어릴 적 읽었던 지은이 모를 시 한편을 이렇게 소리 내어 외어본다.
 
넓은 들 황금빛갈/푸르고 높게 하늘 변하면/마음은 더욱 허전하여/옛 님 생각에 눈가엔 이슬이/
돌이킬 수 없는 일이건만/왜 이리도 그리운지/허전함 달랠 길 없어/말없이 이곳저곳 거닐고/
하염없는 그리움이/마음에 비어 가는데/가을은 이렇게/옛날 옛날로 돌아가게 하니/
고향 옛집이 생각나/천리 길 달려가 보나/옛집 없고 앉을 곳 없는데/왜 이리 그리운 지 그리운 지/
기다리는 자 없고/반기는 자 없어도/가을은 고향생각이/눈물지게 하네./
가을이면/해마다 되풀이 되는 병/언제나 해결될지/오늘도 나 혼자 걸어 걸어갑니다./

/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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