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장 개발로 황폐해진 산
칼바람이 몰아치는 지난 12월 22일, 아침. 옷깃을 여미게 할 만큼 추운 날씨였다. 부귀 궁항리 정수암마을까지 외로이 찾아가야 했다.
약속장소인 약초센터에 5분 늦게 도착했더니 동행할 마실 지기들이 출발한 후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홀로 찾아간 정수암마을에는 9차 마실길을 걷기 위해 도착한 마실 지기들이 추위를 이기고 있었다.

얼마나 추웠던지 주머니에 들어간 손은 나올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양쪽 손은 들어갈 주머니라도 있어 망정이지만 얼굴의 양쪽 볼과 코끝은 집어넣고 싶어도 넣을 공간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칼바람에 노출된 얼굴은 붉게 굳어가고 있었다.
 
◆시작부터 망설이게 한 '마실길'
이 마을 손두수 이장의 마을소개. 그러나 귀는 칼바람에 마비가 빨리 마실길을 걷던가 집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어묵 국물이 있다는 말에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아마도 어묵 국물과 그 안에 떡이 없었다면, 마실길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정천면 갈용리 무거마을에 살고 있는 권대웅 씨. 그가 준비해온 따끈한 어묵 국물은 굳어 있는 몸과 마음을 녹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선경지명이 있다는 말이 이러한 여건에서 나왔을 것이다. 또 마실길에 참여한 서수원 씨의 아내 박미숙 씨의 따뜻한 차 한잔은 마실길의 시작에 여유를 주었다.

이날 마실길에 참여한 사람들은 말 그대로 먹을 복이 있었다. 따끈한 어묵 한 사발에 곁들인 막걸리 한잔. 그리고 따뜻한 차 한잔은 시작부터 망설이게 한 마실길도 힘차게 만들었다. 더불어 부귀면사무소(면장 장강섭)와 복분제국(대표 문남기)에서 막걸리를 후원해 줘 추위를 이길 수 있었다.
그렇게 막걸리 한사발에 어색함이 수그러들 때쯤 출발을 알림은 정병귀 팀장이 담당했다.
 
◆음주 마실길의 시작
마실길의 동행은 구자인, 구해강, 구해산, 권대웅, 김동철, 김희경, 문만식, 박미숙(정천), 박미숙(부귀), 박인권, 박종일, 박주홍, 서수원, 손두수, 송선순, 이석우, 이환오, 장미옥, 정병귀, 정영춘, 최광훈 씨 등 21명이 시작했다.

이날 참여한 남성들은 대체로 음주 마실길을 걸었다. 적당한 체온 유지의 음주 마실길. 그러나 그도 잠시 잠깐 이었다.

운장산 산자락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은 뒤통수를 시리게 했고, 여전히 두 손은 주머니 속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마실길을 걷는 준비 미숙이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주는지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머리엔 모자, 안에는 내복, 손에는 장갑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필수품이다.
우린 상궁암, 중궁암, 하궁암, 신궁암, 미곡마을을 거쳐 원봉암마을까지 아스팔트와 농로, 육교 등을 걸었다.
이처럼 거쳐온 마을 중간 중간에는 휴식, 그리고 손두수 이장과 미곡마을 배정환 이장의 마을 소개가 있었다.
 

▲ 마실길 도중에 만난 산길. 눈이 녹지 않은 산 길은 춥게만 느껴졌다.
◆원봉암 마을에서의 환대
점심시간. 원봉암 마을회관에 도착해 정말 후한 대접을 받았다. 다소 이른 시간에 도착했지만 이를 개의치 않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개개인에게 주어진 돼지고기 김치찌개. 냄비 채 안겨주었다.
냄비가 밥상 앞에 놓일 때 추위에 떨었던 몸도 비로소 누그러졌다. 김치찌개뿐만 아니라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하얀 쌀밥도 선뜻 내어주는 인심은 시골만이 간직하고 있는 정 그 자체였다. 이 자리에서는 오전동안 걸으며 알게 된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도 하고, 휴식을 취했다. 점심에 반주도 빠질 수 없었으며, 의회에서 삭감된 생태관광 10대 모델이 안주가 되었다.

마실길에 참가한 사람 중에는 "마실길을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군의원들이 생태관광 10대 모델의 의미를 알 리가 없다."라며 "군의원들이 마실길을 걸어보고 나서 예산을 삭감하든 했으면 좋겠다."라고 비꼬아 꼬집었다. 그러면서 또 자연스럽게 참여자 소개도 이어졌다.
이처럼 편안한 자리를 마련해 준 원봉암 마을 홍순태 이장님 그리고 부녀회원 어르신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마실길 중간에 만난 황폐해진 산
점심을 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골프장 건설이 중단된 터였다. 황폐해 질대로 황폐해진 산은 보는 이로 하여금 미간을 찌푸리게 하였다. 인간의 환경파괴는 어디까지 인지 새삼 느끼게 하는 모습이었다.

이처럼 황폐해진 곳에서 불과 몇 분 거리에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이 교차한다. 마실길을 걸으면서 함께한 사람들은 금남·호남 정맥을 바라보며, 또 직접 넘었다. 이러한 곳에 황폐하게 놓인 골프장 건설 현장을 보면서 모두 안타까워했다.

모두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전주 공원을 지나 모래재 휴게소에서 잠시 머물다 적천마을을 지난 신덕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무진장여객 버스에 몸을 맡긴 채 첫 출발지인 정수암 마을에 도착해 각자의 길을 찾아갔다.

▲ 골프장 개발로 황폐한 벌판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다.
▲ 골프장 개발로 황폐해진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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