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멍이 뚫릴 것 같은가, 아니면 沒落의 늪에서 스스로 허우적거릴 것 같은가.

인간의 심성이 백치상태에서 살았더라면 인간의 오늘의 비극이 조금은 덜 하였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성의 상실이란 인간관계가 인격적 또는 애정적 관계에서 계약적, 형식적 관계로 전환되어가면서 인간다운 보임이 없어지는 데에서부터 기인되어 왔다.
마음으로만 풍요하게 인간성을 음미하면서 가난하게 살아가던 민중들의 틈새에 정치적 욕망에 사로잡혀 엘리트 의식에 자신을 가미하여 들어온 그 자들이 이미 인내에 익숙해진 이 민중들에게 인간을 포기할 것을 강요하면서 더 부담해야 할 것 없는 의미 없는 고통을 더 윽박지르면서 다가 온 것이다. 그 자들은 자신들이 그 시대의 주역이 되고자 하였고 그들이 모리배처럼 구축한 성곽의 주인이 되어서 그것의 승계를 고정화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엘리트란 한 마디로 학술적이고 발전적인 용어이기보다는 독점적 정치 용어로 변질되어 가면서 일반 대중에 대한 소수의 지도자 그룹을 지칭하는 더욱이 이 나라의 일반 사회에서는 특히나 그것이 특정의 선량으로 변질되기도 하였거니와 부르조아 민주주의가 이상적인 환영(幻影)에 불과하다는 관점에서 소수 지도자의 권력이 어떠한 방법에 의하여 다수 민중의 이익을 위하여 조성되는가 하는 것이 그 숙제로 제기된다.
그러나 시대가 무너지면서 도처에서 그것의 부정적인 징조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우리의 시대에 그것은 특히 기초자치단체에서부터의 일이다.
지도자는 현명하지 못하고 옹졸하여 수세기 이전으로 회귀하여 주먹과 폭언으로 민중의 기를 꺾으려 시도한다. 인간의 우주성을 망각하고 하찮은 권력과 물욕에 매여서 지켜가야 할 금도를 어기고 고을의 평화에 역행하고 인간성을 배반하여 자신의 몰락하는 함정을 스스로 쌓아간다.
인간이 인간됨을 상실하였을 때 우리는 거기서 파생하는 온갖 사건들에 휩싸여서 무한한 회한과 더 큰 연민으로 곤혹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고 싶은 것이다. 만족스런 바보가 되기보다는 불만스러운 소크라테스가 차라리 되고 싶은 것이다.
다수의 민중이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 끌고 가는 사회로부터 외면당할 때 부정과 부패는 전염병처럼 퍼져가고 그 시대는 붕괴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다수의 민중이 굶주리는데 소수의 집단이 여유로울 때 그 시대의 조종은 이미 타종을 시작한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지나간 일들은 말하지 말자고. 그러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은 혹시라도 잘못되어 간 지나간 일들을 앞으로 교훈이 될 수가 있겠기 때문에 우리는 잔소리 같은 지나간 일들을 곱씹어 보는 하기 싫은 일들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욕망이나 기본에 있어서 확고한 습관적 균형이 도덕적 선이며 욕망이나 기본을 훈련하여 이것이 중용의 정도를 나타내도록 함으로서 악덕에 대한 덕을 발견하여 이를 택하여야 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장하였다.
이제 우리는 발생과 마침을 혼동하지 말자.
내 분수에 맞게 우리 지역의 특성에 맞게 과연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어디인가를 눈여겨 살펴보자.
우리 모두는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머리를 맞대고 지혜와 역량을 모아서 원근각지에 흩어져 있는 우리 고을의 사람들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권모와 술수가 난무하는 그 곳을 흉내 내다가 자칫 내가 판 함정에 내가 빠져드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하겠다.
높은 비전을 제시하며 당당하게 입장한 자치단체장이 10년이 지난 오늘 다수의 민중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유쾌하게 퇴장하는 그 모습을 우리는 보고 싶은 것이다.
철학과 신념을 내면화하지 못하고 이기적 목적 앞에서 변절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우리는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각각 재능에 따라서 신은 인간에게 풍성한 은사를 주었는데 그 재능을 성실하게 활용하지 못하고 마지막 때의 심판에서 실패한 인생이 되는 것은 더 할 수 없는 불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성서의 한 토막을 여기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치려 하거니와 막나가는 그이거나 집안망신으로 고을의 명예에 먹칠하는 그이들이거나 우리 다같이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대승적 견지에서 구별하는 세속을 만들어 가자.
세 명의 종이 있었더란다. 주인이 타국에 나가면서 하나의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두 번째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세 번째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나누어 주고 떠났단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종들과 회계를 하였단다. 다섯 달란트의 종은 다섯 달란트를 남겼으며 두 달란트의 종은 두 달란트를 남겼단다. 그런데 유독 한 달란트의 세 번째 종만이 받은 돈을 땅에 묻어 두었다가 주인의 성격을 힐난하며 그냥 내놓았더란다. 주인이 그 종에게 말한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는냐.」
그 종에게서 한 달란트를 회수하여 열 달란트의 종에게 주었다는 이야기다.
인근 고을의 10년 전과 오늘을, 우리 고을의 10년 전과 오늘을 우리는 심각하게 비교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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