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 진안치과 원장

지난 해 돌아가신 전우익 선생님의 책 제목이다.
전우익 선생은 1925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에 서울에서 중동중학교를 졸업한 뒤 경성제대에 입학했으나 혼란스런 정국 탓에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었다. 그 시절 대학을 다닐 정도라면 상당히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으로 추측된다. 1947년부터 ‘민청’에서 청년운동을 하다 사회안전법에 연루돼 6년 남짓 옥살이를 했고, 출옥 뒤에도 보호관찰 대상이 되어 예순 다섯 살 때까지 주거 제한을 받아 고향 밖을 나가지 못한 채 부자유하게 살았다.
봉화군 상운면 구천리에서 밭농사 짓고 나무 키우며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외에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사람이 뭔데> 등 3권의 책을 펴내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거짓 없는 삶의 참모습을 알렸다. 고인의 글은 투박한 농사꾼의 이야기뿐이지만, 소박한 삶 속에 진실한 삶이 있음을 아무런 꾸밈도, 왜곡도 없이 보여주었다. 신경림 시인은 고인을 가리켜 ‘깊은 산속의 약초’ 같다고 했다.
‘세상에 나는 물건을 사람만이 독식해서는 안 되지요. 새와 곤충이 없이 사람만이 산다면 얼마나 삭막할까요? 그런데도 혼자 먹겠다고 야단이지요.’
사람만이 조금 더 편하게 조금 더 배불리 살려고 다른 동물을 해치고 환경을 파괴하는 것과 오로지 물질적 풍요만을 절대적 가치를 둔 사람들을 향해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더불어 사는 삶이야말로 신명나는 세상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사회적 가치관은 “나 혼자만 잘 살면 된다!” 고 강요하고 있다. 경쟁력 없으면 도태되고, 나이가 들어 젊은이보다 능력이 뒤쳐지면 제거 당하게 된다.
다른 나라에 비해 경쟁력이 부족한 농업은 발전시킬 필요가 없다. 부족한 농산물은 수입하면 되고, 수입 농산물로 차려진 식탁이 훨씬 저렴하니 노동자의 임금도 적게 줄 수 있어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생은 공부만 잘 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 사회에 필요한 공공선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학생의 경쟁력(성적)만 높이면 되는 것이다. 학교의 평가는 오직 타 학교보다 몇 명이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갔으며, 사법시험에 합격한 학생의 숫자가 얼마인가로 판가름 되는, 이 지극히 단순한 논리가 현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개인이 경쟁력을 키우면 국가의 경쟁력도 커져서 모두 잘 살게 된다.’ ‘나의 경쟁력은 곧 국가의 경쟁력이다.’ 얼핏 들으면 분명 옳은 말인 듯하나 이것이야말로 지극히 위험한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다. 경쟁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다 많은 노력을 개인에게서 이끌어 낼 수 있겠지만, 경쟁은 어차피 소수만 살아남게 되어있고 경쟁에서 뒤쳐진 많은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항상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배자가 존재하게 되기 마련이다. 승자와 패자가 공존하는 상황에서는 패자를 돌보지 않고 버려둘 때 사회는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그런 위험에 빠져있지 않은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강남의 아파트 값이 미친 듯 뛰어오르는 기사를 접하면 분노하게 된다. 남의 재산이 많아져서 배가 아프거나 10억하던 아파트가 하루 밤 새 15억, 20억으로 뛰고, 투기에 성공한 집단에 들지 못 해 화가 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재산이 노력도 없이 몇 억씩 불어 날 때 가난한 농민과 서민의 재산은 그만큼 상대적가치가 하락하는 것이 안타깝고 화가 나는 것이다. 봄부터 더운 여름을 거쳐 가을까지 온갖 노고를 아끼지 않고 가뭄과 홍수, 병충해와 싸워 얻는 농민의 대가는 정말 보잘 것 없기 때문이다.
경쟁력을 강조하는 사회는 경쟁력 있는 산업에 투자를 집중하기 마련이다. 수출을 주도하는 산업을 위해 원화가치를 낮추려고 수십조의 혈세를 쏟았지만 농민을 위한 투자는 얼마나 했는지 묻고 싶다.
경쟁력을 강조하는 사회는 경쟁력 있는 사람에게만 투자를 한다. 학교에서도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초점을 맞춘 수업이 진행되고 뒤쳐진 학생은 관심 밖에 놓아두고 있다. 성적 지상주의가 판을 친다.
경쟁력 없는 장애인에겐 지극히 기본적인 투자도 하지 않는다. 가끔 불굴의 신화를 이룬 장애인에게 얄팍한 관심을 보일 뿐, 투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이며 그 기본적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경쟁보다는 화합을 이루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호화롭고 부유하게 살 수는 없다. 그런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최소한 기본권리인 의식주를 바탕으로 정치, 경제,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소득이 보장되어야 하며, 빈부 격차에서 오는 상대적 빈곤감과 사회적 박탈감을 줄여야 한다. 교육의 불평등화도 최소화 시켜 학생 개인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 져야한다.노인복지와 의료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사회복지 제도가 구축되어야 하며, 신체적 원인과 사회적 원인으로 노동력을 상실해도 최소한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보장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지만 우선 이것들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된다.
과거 우리사회는 마을이란 공동체 속에서 자연스럽게 여러 문제를 해결해 왔다. 옆집의 쌀이 떨어지면 우리 집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올려 어려움을 함께 나누었고, 이웃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갔다. 그러나 지금 현재 우리농촌에서 생기는 일들은 마을이란 작은 공동체 스스로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더 많다. 대부분은 국가가 나서서 풀어 나가야 할 일이다. 그러나 마냥 기다릴 수는 없지 않는가. 근본적 해결은 어렵겠지만 마을의 일을 함께 풀고 면의 일은 면민이 함께 토론하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 작은 일부터 하나씩 함께 풀어가다 보면 큰일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키워질 것이다.
‘군의원이 알아서 해주겠지. 군수가 알아서 할 거야.’가 아닌, 모두 함께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시켜야 한다. 그래서 진안 군민의 일을 진안 군민 스스로가 함께 결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골프장 건설에 대한 찬반 토론이 얼마 전 주천면에서 있었다. 그러나 반대 대책위만 참석했을 뿐이라고 한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나 공개 토론도 없이 상대의 의견을 듣지도 않겠다는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정당할 수 없으며 추진할 자격조차 없다고 판단된다. 자치단체에서는 거기에 맞는 행정적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며, 그럴 것으로 기대한다.
주천의 주민들에겐 큰 경험이 된 일이라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바쁜 농사철에 농사일을 미루면서까지 노력한 결과다. 지역 주민이 함께 이룬 소중한 경험과 결과를 한 단계 더 높여 진안의 주민자치 발전에 기여하는 단단한 디딤돌이 될 것을 기대한다.
‘나 혼자만 잘 사는’ 게 아닌 진안군민 ‘모두 함께 잘 살아가는 길’ 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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