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왔었네, 바람처럼 살았어라. 이제 바람처럼 가겠노라.

/윤 영 신 재경진안군민회장

 

십수 년 전 남도땅 추월산 자락을 지날 적의 일이었다.
『영감, 영감 때왈이나 먹고 가지.』
애절하게 울어쌓는 할머니의 곡성(哭聲)이 가까이서 들려와 필자는 걸음을 멈추고 다가갔다. 묵은 푸대 종이 위에 놓여 있는 초라한 젯상의 차림을 보면서 서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호곡하시던 할머니가 울음을 그치고 눈물을 훔치면서 젯상 위의 술잔을 필자에게 내밀었다. 사양할 틈새도 없이 내미는 그 술잔을 마시면서 연유를 물었다. 그 날은 할머니의 남편이 돌아가시고 석 달이 되는 초정일(初丁日)로 말하자면 졸곡제(卒哭祭) 그 날이라 하였다.
할머니에게는 장성한 육남매가 있는데 모두가 대처에 나가서 나름대로의 성공의 길에 들어 있다고 하였다. 시골 구석이였지만 그래도 부모로서의 할 일을 자식들에게는 마쳤다고 그랬다. 그렇게 자식들이 성공하여 떠난 그 시골에서 늙은 내외는 서로 의지하면서 그렇게 살았단다. 할아버지 살아계실 적 항상 할머니에게 이르는 말씀이.
“내가 먼저 세상을 뜨거든 몇 푼 되지는 않지만 이 저금통장은 선뜻 애들에게 내주지 말고 흔들고만 계시게. 그래야 자네가 자식들에게 괄시 받지 않고 살 수 있다네. 꼭 그렇게 하시게.”
할아버지는 고향을 떠나버린 자식들에게 불신의 마음을 갖고 있었고 그것을 항상 마땅하지 못해 하셨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삼우제가 지나면서 자식들은 은근한 마음으로 남겨 있는 시골구석의 논밭이거나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겼을 것 같았던 현금들을 수소문하면서 서로 다툼하는 기색을 어머니가 느낌으로 눈치 챈 것이 요 근래의 일이란다.
그런 일이 없었던 아이들이 서로 홀로 남은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나서더란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삼년상이나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자고 설득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요즘 팔십을 넘긴 할머니의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삼년 시묘살이는 아니래도 그냥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그렇게 살다가 할아버지를 따라가고 싶은데 아이들의 성화가 너무 드센 것이다.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도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가하노라.』
성서의 이 구절이 생각나서 어쩌면 지금쯤 그 할머니는 추월산 자락의 할아버지 곁에서 편히 잠들어 계실까, 아니면 지금도 저금통장을 흔들면서 이 집 저 집 자식들의 집 문전을 전전하고 계실까. 호곡하던 그 울음이 내 것처럼 귓전에 울려온다.
얼마 전 일간지에서 공항에 버려진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었다. 아들의 효도 여행에 묻혀 왔던 어머니가 공항 대합실에 버려진 채 갈 길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한사코 아들의 신원이거나 연락 장소를 말하지 않은 채 침묵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욕먹을 아들과 며느리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무덤가에 살고 싶습니다.
조석으로 좋아하는 반찬을 준비하고 무덤가를 이쁘고 깨끗하게 치우고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을 씌워주고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을 막으며 무덤을 만지고 안고 쓰다듬을 것입니다. 그 무덤을 붙잡고 마구마구 서럽게 소리 내어 울겠습니다.>
이름조차 잃어버린 어느 시인의 이 구절들이 지금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모두라고는 아니라도 이 시대 부모와 자식간의 의미가 너무나 크게 퇴색되어가고 있음을 슬퍼할 것인가 말 것인가. 버림을 받으면서도 자식의 이름을 지켜주고 싶은 어머니가 또 아버지가 지금 혹시라도 어느 거리에 또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자식들의 집 번지를, 또는 전화번호를 그 어른들은 정녕 잊고 있는 것일까. 침묵하는 그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평생을 비바람과 혼돈의 세파 속에서도 마다하지 않고 자식들의 세끼 밥상과 삶의 옷자락을 챙겨주셨던 그 어버이의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배고프고 외롭고 병고에 시달리면서 지금도 몇 푼 남지 않은 저금통장을 흔들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고려장이라는 고구려 때 사람을 생매장하던 순장법(殉葬法)이 있었다. 노쇠한 노인을 묘실에 옮겨 묻어 그 곳에서 죽게한 방법이였다. 이 방법은 늙은 부모를 산채로 버리던 나쁜 습속이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그 악랄하고 불효막급한 그 제도가 없어지게 되는 「기로 전설」에 나오는 내력의 이야기 중 한 가지를 소개하자.
늙은 아버지를 산채로 지게에 져다 산 속에 버렸단다. 그리고 지게를 산 속에 두고 돌아가려는 그에게 따라 온 그의 아들이 그 지게를 지고 나섰다. 그가 아들에게 이유를 묻는다. 아들이 대답한다.
“아버지가 늙으면 나도 이 지게에 아버지를 지고 와서 버려야 하잖아요.”
그는 아들의 대답에 크게 뉘우친다. 늙은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셔 와서 오래오래 살았으며 그리고 그 이후 고려장이라는 천하의 악습이 없어졌다는데 시대가 바뀌고 요즈음 다시 현대판 고려장의 현상이 곳곳에 그 징조를 보인다.
정말로 고려장이라는 제도가 우리나라에 실재하였는지 아닌지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어쩌면 이야기의 전래 수용 과정에서의 허구였었으면 좋겠다.
노인에 대한 공경과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하고 효의 윤리를 제일로 삼았던 우리 사회의 도덕관념이 언제부터였는지 무너지고 있는 이 시대에 노인을 버리는 풍습이 다시 그 징조를 보이는 것은 인간을 육체적인 힘이나 능력 위주로 평가하여 재산상의 가치관으로만 생각하는 패륜적 행위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그들 노인들이 살아온 한 시대의 역할에 대하여 존경받아야하고 보호되어야 하는 이유가 충분히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모르는 일이 아니면서도 그것이 맹랑한 여러 가지 핑계들로 방치되는 것은 인간적 고뇌의 흔적으로 남겨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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