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길 군청 학예연구사

우리의 전통사회는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 사이에 상호부조(相互扶助) 정신이나 이웃 의식이 강하여 주민 사이에 친밀한 관계를 보존해 왔는데, 이러한 지역사회를 촌락공동체(村落共同體, village community)라고 한다. 촌락공동체는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강력한 촌락의 규제 아래에서 생활하였고, 공동체 구성원들은 이를 생활지표로 하여 생활하였다. 
구성원들의 전체 모임에서는 고래(古來)의 관습을 확인하고 새로운 규정을 만들며, 동시에 위반자를 고발하고 제재하며 공동체의 임원을 선출하였다. 국가가 행정의 말단조직으로서 촌락을 이용하게 되자, 촌락공동체의 기관은 동시에 어느 정도의 정치적 기능을 담당함으로써 오늘날의 지방자치단체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촌락공동체에는 이른바 ‘어른’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마을 일을 두루 맡아보던 마을의 어른은 실정법보다 앞서는 권위를 바탕으로 마을의 대소사를 관장하였고, 나아가 마을 공동체간의 갈등 요소를 지혜롭게 풀어나갔으며, 존경받은 인물로 마을의 상징적 존재였다. 어른은 집안에서도 마찬가지의 역할을 하였다.
어른과 관련하여 회자되는 속담 중의 하나가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다. 어른의 권위에 어울리지 않게 먹는 이야기가 되고 있지만, 이 말의 본뜻은 먹는 것과 다르다. 즉, 어른이 시키는 대로 하면 실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이익이 됨을 교훈적으로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는 다르지만 ‘어른 없는 데서 자라났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흔히 상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부정적 의미가 강한데, 어떤 사람의 버릇없고 방탕함을 이르는 말로 통용된다.
전통사회가 도시화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공동체의 결속력이 무너지고, 이에 따라 어른의 존재 역시 희미해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집안에서도 핵가족화로 인해 어른의 존재가 설 자리마저 잃어버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를 지켜내기 위한 움직임들이 쉬임없이 계속되고 있으며, 사회가 더욱 복잡해지고 어려워질수록 어른의 존재는 더욱 필요성을 갖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흔히 존경하는 인물로 표현되는 어른을 들면, 대부분 생존하는 분들보다는 돌아가신 분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것은 생존하신 분들에 대한 평이, 아무래도 어렵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촌락공동체는 이와 다르고, 집안은 더욱 더 그렇다. 집안의 경우는, 부모님을 존경한다는 자녀들의 말을 들을 수 있다. 그것은 부모의 절대적인 영향에 놓여 있는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부모의 사랑과 가족을 향한 헌신을 체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촌락공동체나 지역공동체에서 어른으로 존경할만한 인물이 선뜻 떠오르지 않음은 왜인가. 사회가 다원화 다변화되면서 특정 분야에 뛰어난 업적을 쌓은 분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에서 어른으로 모시고자 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 되고 있다. 특정 집단의 상징적 인물이 아니라 다수의 존경을 받는 어른이 그리운 시대이다.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