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왔었네, 바람처럼 살았어라, 이제 바람처럼 가겠노라.

/윤영신 재경진안군민회장

 

「늙고 나이 먹고 쓸쓸하고 외롭지만 꿋꿋하고 항상 맑은 눈으로 살아간다」고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서 주인공인 노인의 의지를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
아름다움과 힘이 넘치는 인내와 용기로 바다(삶의 현장)를 헤쳐 나가는 노인의 의지는 문명에 따르는 안이함과 침체감, 그리고 정신적 마비에서의 탈출을 외치며 인내, 용기, 인간정신의 해방을 주문한다. 약육강식의 원시적 벌판에서 삶을 이어가는 노인의 행동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의 감흥을 준다.
“인간은 패배하려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죽을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 헤밍웨이가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확고하다.
「힘은 다 했지만 투지는 잃지 않았다. 아직 꿈을 꾸기에는 늦지 않았다.」
종로에 위치하고 있는 탑골 공원에 앉아 있노라면 가히 이 속이 노인들의 쉼터임을 볼 수 있다. 노인들의 「유토피아」일 수도 있겠고 또는 「실락원」일 수도 있었다. 삼삼오오 노인들은 빨리 친할 수도 있는 호기로움도 보이지만 그늘진 이마의 수심은 지나가던 필자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팔십 사세라는 할머니의 눈물 섞인 푸념을 들어 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맞벌이 하는 둘째 아들 내외를 도와서 손주 녀석을 돌보는 일에 자신이 자청하여 나섰단다. 썩 내켜하지 아니하는 며느리에게 애원하다시피 하여 손주를 맡았다. 돈을 주고 타인에게 또는 양육 시설에 맡기는 것보다는 그래도 육친인 자신이 맡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세 해동안 정성을 다하여 손주를 기르는 것이 당연한 할머니 시대의 방식이였다. 손주와 깊은 정도 들었고 손주도 할머니를 무척 따랐다.
그런데 어느 날 둘째 아들 내외가 아이들의 교육 문제를 거론하더니 캐나다 이민길에 나섰다. 할머니는 그렇게 손주와 헤어졌다. 할머니는 이미 팔순을 거치면서 할아버지와의 사별을 통하여 이별에는 익숙해져 있었지만 가슴을 채워오는 헤어진 손주의 그리움에 밤을 지샌다고 했다. 새로운 거처가 된 큰 아들네는 이미 아이들이 모두 장성해 있었단다. 그 아이들에게는 이미 할머니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였고 가끔씩 구경했었던 할머니를 낯설어 했고 이방인처럼 신기로운 눈길고 대해주었다. 할머니의 접근을 두렵게 피했고 그들과 대화를 목말라하는 할머니에게 「됐어요」가 전부였다. 큰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존재를 그냥 끼니마다 개밥(할머니의 표현)주 듯 개다리 소반에 얹어 방에 밀어 넣어 주는 것으로 잊는 듯 하였단다. 할머니는 중얼거리듯 말한다.
「손주가 보고 싶어요. 손주를 업어주던 등어리가 너무나 허전해요. 정말 외로워요. 빨리 죽어야 할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그리고 끝내 눈물을 훔친다. 필자의 마음도 찢어질 듯 인간의 연민의 소리가 가슴에서 울부짖는다.
탑골 공원은 노인들의 경시장이다. 또는 경연장이기도 하다. 늙어 외로움을 파도처럼 타는 그 노인들도 그래도 자신들과 처지가 똑같은 노인들을 보면서 어울리면서 서로를 이야기하고 위로하면서 또는 자신들을 외면하는 자식들의 손주들의 자랑으로 허전한 마음의 한구석을 남의 것처럼 채워간다.
지나간 세월들을 생각하며 목청을 높이면서 살아온 지난날의 실루엣이 전설같다고 생각한다. 언제던가 다가 올 죽음 앞에 서서 어제 있었던 한 노인의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서로 말없이 그냥 눈만 껌뻑거리여 이심전심으로 그것을 받아들인다.

삼천갑자 동방삭은 삼천갑자 살았는데
초로같은 우리 인생 한 번 가면 다시 못 와
북망산이 멀다더니 저 건너 앞산이 북망일세
허망하고 허망하다 살아서 재미있게 놀아보세.

올해 연세가 88세인 장노인(이름 밝히는 건 거부했고 그냥 그렇게 불어달라고 그랬다)은 20세적 시골의 면의 임시 서기로 있었단다. 가난한 집안을 떠맡은 장노인은 삼남사녀의 장남으로 참 힘겨운 50년대를 헤쳐왔다고 했다. 그들 형제들은 이렇게 모두가 고생의 동반길에의 우애를 다졌고 여동생들은 도시의 공장에 취직하여 그래도 그 중 머리가 뛰어났다는 둘째를 힘모아 가르치자고 의기가 투합 되었다. 당시의 자신들은 그러한 행위가 너무나 당연한 것이였고 지금 다시 그러한 시절이 오더라도 자신들은 서슴없이 또 그럴 것이라고 했다.
둘째는 자신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아니하고 정말 그들의 의지대로 좋은 학교를 마치고 승승장구 잘 나가는 중앙부처의 공무원으로 커 나갔다. 그들 형제들은 자신들의 뜻이 이루어졌음을 기뻐하였고 가문의 영광 앞에 둘째 의 승승장구를 축복하였단다. 시골 고향에서도 그들 형제들의 우애를 마을의 전설처럼 자랑스러워 한단다. 그러나 장노인은 요즈음 세상살이가 허망하다는 생각에 기죽어 있었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길러온 자식들은 모두가 그들의 살 길을 찾아서 뿔뿔이 흩어져 갔다. 손주들의 재롱이 보고 싶어 찾아간 장노인 내외에게 며느리들은 여러 가지 합당한 방법을 다하여 접근을 차단한다. 교육이 어쩌고 위생이 어쩌고 장노인 내외로서는 참 수용하기 어려운 핑계들이다. 아홉평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장노인 내외는 동갑쟁이인 아내가 얼마 전부터 거동하기 힘들어 집안에 누워있으나 가끔씩 들려 보는 그나마 걷기에도 힘겨워하는 여동생들이 전부단다. 잘 나가는 둘째는 바쁘다. 그 제수는 따라서 바쁘다. 며느리들도 바쁘다. 먹고 살기에 바쁘고 애들 챙기기에 바쁘다. 남들처럼 돈 모으는 재주가 없었던 장노인 내외는 물려준 것 없는 자식들에게 죄인처럼 기죽어 있단다.
장노인은 둘째의 출세가도가 사돈네(둘째의 처가)에게 있음을 알면서부터 사돈네에게도 기죽어 있단다. 일년에 몇 번씩 명절이거나 부모님 제사 때에나 불쑥 과일 박스나 굴비 두룹을 들고 급하게 왔다가 급하게 떠난다. 둘째는 형제들의 소시적 도움이 그만큼 가끔씩 내미는 용돈수준의 현금으로 보상되었다고 내외가 함께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장노인은 요즘 마음이 편치 못한다. 그리고 형제들의 뜻이 훼손되는 것 같아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얼마 전 어느 잘 나가는 정치인이 노인들을 폄훼(남을 낮게 보아 헐뜯는 것)하는 이야기로 이 나라 노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을 때에도 장노인은 꼭 둘째의 그것을 보는 것 같아서 분개한 적이 있었다. 장노인은 요즘 어릴 적 읽고 감명 깊었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펴 들었으나 나빠진 시력과 없어진 기억력으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84일간의 바다에서의 고기잡이, 40일간 소년과의 동행, 부모의 명을 받고 노인을 떠나가는 소년, 44일간의 고독한 바다에서의 기다림, 생각보다 큰 고기를 잡아 귀로에 오르는 노인, 상어 떼와의 싸움, 상어 떼에게 빼앗긴 고기의 살덩이, 뼈만 남은 큰 고기, 판자집에 잠든 노인, 사자(힘의 상징)의 꿈 속에 잠든 노인.
인생이 덧없고  삶의 고통이 항상 계속되어도 우리의 장노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힘은 다 했지만 투지는 잃지 않았다. 아직 꿈을 꾸기에도 늦지 않았다」라고.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