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너머 아리랑

/이규홍 주천면 무릉리

 

사고가 난 후 한 달쯤 지나 수술한 목뼈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물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처음 한동안은 휠체어조차 탈수가 없어 침대에 누운 채로 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있던 본관에서 응급센터가 있는 재활병동까지의 거리가 여자혼자 침대를 밀고 가기에는 꽤 먼 길이라 한동안 아내가 애를 좀 먹었다.
전북대병원을 가본 이는 알겠지만 본관과 응급센터를 잇는 복도처럼 생긴 다리가(다리처럼 생긴 복도라 해야 하나?) 인상적이었다. 우린 그 길을 구름다리라 불렀는데 침대에 누워 이동하는 동안 수많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과 꼬물거리며 어디론가 흘러가는 구름이 참 보기에 좋았다. 까딱 잘못되었으면 저 하늘을 다신 보지 못할 뻔 했구나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배시시 한숨이 새어나오기도 하고 입술이 씰룩거리기도 했는데 삐뚤빼뚤 제멋대로 가는 침대를 미느라 여념이 없던 아내는 아마 눈치 채지 못했을 게다.
그렇게 찾아 간 물리치료실은 늘 환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 한참씩을 기다려야 했다. 누워있던 나는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천정만 멀뚱거리며 쳐다볼 뿐이었지만 들리는 소리만으로도 그곳에 흐르고 있는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아픔을 치유하려고 애쓰는 치료사들과 환우들의 힘겨운 노력과 땀이 치료실안을 달구고 있었다. 그런 느낌을 난 아내에게 이렇게 표현했다.
“야, 여기 왜 이르키 시끄럽냐?”
사실 이 말이 그때의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나 이외의 다른 모든 사람과 사물에 관심을 가지거나 아량을 보일 수 없을 만큼 난 아팠다.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데. 하물며 창졸간에 움직이지 못하게 된 내 팔다리에다 대랴. 부러져 꼼짝 못하는 내 목에다 댈 수 있으랴. 아마 곁에서 누가 피를 토하며 죽어간다 해도 난 눈도 꿈쩍하지 않았을 게다. 그렇듯 다른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내 관심 밖이었다. 그렇게 내가 물리치료실을 드나들기 시작한지 한 열흘인가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보게 된 처음 보는 낯선 광경 앞에 난 그만 아연했고 그야말로 ‘쪽팔려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 돼야 했다.
웬만큼 몸이 회복이 되어 목도 좀 가눌 수 있고 예전보다 움직임이 한결 수월해지자 주치의는 내게 휠체어를 탈 것을 권했고, 등에 욕창이 날 정도로 답답함에 몸부림치던 나는 당연히 그러마고 했다.
그 날 난 보무도 당당히 휠체어에 몸을 싣고 물리치료실로 향했다. 아, 그 기분이라니. 그동안 천정만 바라보고 지나던 구름다리를 앉아서 보는 그 기분. 하릴없이 창밖의 하늘만 올려다보다 아래로 바깥세상을 제대로 내려다보는 그 기분. 좋았다. 소풍가는 아이처럼 마냥 좋았다. 몸이 다 낳은 듯 했다. 적어도 물리치료실 문을 들어서기 전까지는.
어제까지 누워서 보던 대로 물리치료실안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고 다들 움직이고 있었다. 천천히, 혹은 힘겹게. 모두 자기가 원하는 목표를 향해 땀을 흘리며 한걸음, 한걸음씩 열심을 다하고 있었다. 거기까진 예상했던 대로였다. 차례를 기다리며 치료를 받고 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훔쳐보던 나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입을 딱 벌린 채 절래절래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만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 광경은 차라리 참혹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바깥세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세상 온갖 아픔들의 집합소인 것 같았다. 그 모습은 나의 아픔쯤은 댈 수도 없는 엄청난 고통들이 조용히, 그러나 간절히 소망을 일구어가는 장관이었다. 그렇지만 빤히 쳐다보기에는 너무도 민망한 장면들이었다.
여기서 그 많은 환우들이 얼마나, 어떻게 아픈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으련다. 또 고통을 함께하는 가족들의 눈물어린 사정에 대해서도 일일이 말하고 싶지 않다. 어디 아픈 사람들이 이곳에만 있으랴. 어디 힘겨운 사람들이 몸이 성치 못한 사람들뿐이랴. 하늘아래 수많은 생명들이 자신들의 힘만으론 항거조차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오늘도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서 보려 몸부림을 치고 있음을 짐작으로나마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비지땀을 흘리며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떼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백발의 노인과, 사지가 마비된 채 껌뻑거리는 눈만으로 의사전달을 해가며 조금이라도 더 낳은 상항을 위해 마음으로 몸부림치는 청년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힘내라고, 한 발짝만 더 떼보라고 소리를 지르며 함께 애를 태우는 물리치료사들의 모습들이 마비된 내 정신과 몸을 일깨우고 있었다.
당연히 그날 이후로 난 얌전히, 아주 황공한 마음으로 열심히 치료에 임했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하늘에 감사해야 했다. 그리고 절실히 가슴에 새기게 된 꿈 하나는 세상의 모든 병든 몸들과 힘겨운 삶들이 그 짐을 그들만의 것으로, 그들만의 책임과 운명으로 결론짓고 끝내게 해선 안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세상의 그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곤경에 처하게 된 이는 없을 터. 서로 부딪히며 살아가던 삶 속에서 얻은 몸과 마음의 상처라면 함께 하늘을 이고 사는 모든 이들이 나누어져야 할 짐이다.
희한하게 발전해 가고 있는 괴물 같은 자본주의는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한다. 좆잡고 반성 좀 하란 얘기다. 사람과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중심에 두지 못하고 그놈에 자본본위의 체제와 온갖 구조가 만들어 낸 덫에 걸려 고통 받는 이들에게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막나가는 걸음을 돌려 그늘에서 헤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모든 하늘아래 생명들에게 현실적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과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누구의 탓도 아니지만 모두의 책임이다. 그게 함께 세상을 굴러가게 만드는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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