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천면 무릉리 이규홍

대개 생각 없고 시건방진 사내들이 그러하듯이 저도 처음 모르는 사람을 대할 때면 이유 없이 잔뜩 결기를 세우곤 했습니다. 특히 상대가 저보다 덩치가 크거나, 눈매가 남다르거나, 뭔가 좀 있어 보인다 싶으면 기를 쓰고 한 번 눌러볼 욕심으로 악수하는 손에다 힘을 주기도 하고, 괜히 눈꼬리를 치켜세우기도 하고, 있지도 않은 것을 있는 양 허세를 부리기도 했지요. 그건 마치 동물적인 본능 같은 유치한 승부욕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증상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상대가 누구건 넉넉한 마음과 웃음으로 대할 수가 있게 된 거지요. 쓸데없이 손아귀며 눈알에 힘을 주는 일 따윈 이제 없습니다.
이쯤 되면 제가 상당한 수련으로 제법 마음을 닦았다고 오해를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뭐 언젠간 저도 마음을 잘 닦아 온 세상 만물을 사랑스럽고 평화로운 눈으로 보게 될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아니올습니다.
제가 눈물을 머금고 그런 경지에(?) 오르게 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요.
하루아침에 인정하긴 어려웠지만 이제 누구와도, 어떠한 형태로든, 물리적인 싸움이나 경쟁이 성립될 수 없는 처지에 제가 놓였다는 걸 어느 날 깨닫게 되었습니다. 달리 말해, 좋든 싫든 이제는 제가 자타가 공인하는 약자임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거지요.
스스로 제 마음이 움직여 그리 된 것은 아니지만 약자임을 인정하고 전의(戰意)를 누그러뜨리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상대를 눌러야 직성이 풀리고 안심을 하던 야수 같은 마음을 내려놓자 이상하게도 이전과는 다른 여유와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래, 나 약하다. 네가 나보다 쎄? 그래서 어쩔래? 한 판 붙어볼까? 하고 도끼눈을 뜨고 그악스레 덤빈다고 상대가 제 가치를 인정해 주진 않을 거라는 걸 약삭빠르게 눈치를 챈 거지요.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게 이처럼 느긋한 즐거움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주위의 모든 존재들에게 도움과 협력을 요청하는 게 나약하고 창피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절대강자는 절대 없지요.
이전엔 제가 모든 것에 앞선 주인공이었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도 그랬고 어떤 일을 할 때도 그랬습니다. 내가 주인공이고 너는 조연에 불과하다. 당연히 일을 할 때도 일이 주인이 아니고 제가 주인이었습니다. 순리를 따르기보다는 제 의지가 앞섰고 제 의지가 무색해지면 짜증을 내거나 아예 일을 놓아버리곤 했지요.
사람을 사귈 때도 모든 인연은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여겼습니다. 내가 있어 네가 있다고 여겼던 거지요. 그러니 자칫 주인공 자릴 빼앗기고 변방으로 몰릴까봐 늘 초조했겠지요. 그래서 이젠 마음을 조금 바꿔먹었습니다.
지금도 제 인생의 주인공이 저라는 믿음은 변함이 없습니다만 일을 대할 때도, 밥을 대할 때도, 사람을 대할 때도 모두가 제게 찾아오신 귀하고 귀한 손님이라 여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지금 천하에 없는 약자이자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이건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무슨 성인을 흉내 내는 말도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아홉 살 난 제 작은딸보다도 전 힘이 약합니다. 휠체어에 의지하지 않고는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아주 망가질 대로 망가진 불량품입니다. 이런 저를 찾아주신 모든 존재가 제게 어찌 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귀한 손님에게 무슨 똥배짱으로 이래라저래라를 한단 말입니까?

 

손 님

먼 곳 반가운 손님 오신 다는데
가만히 앉아 기다릴 수야 있나
집 안팎 단속도 해야겠고
군불 지필 땔감도 넉넉히 마련을 하라고 일러둬야지
개울 건널 아이들 있을 테니
징검다리도 촘촘히 다시 놓아야겠고

내해 아닌 양 무심한 아랫도리가 어깃장을 놓지만
부산한 마음은 즐거워

하룻밤 풋사랑 위해 공들여 몸을 닦던
그 옛날 그 마음이 지금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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