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주에 만난 사람 … 사업가에서 농사꾼으로 변신 6년차. 김기화 씨

주천면민의 날에 처음 만났다. 사는 곳이 주천이라 취재 겸 참여자로 화사한 오후의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청년들이 모여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곳. 취재가 아니더라도 사람 모인 곳에는 발걸음이 끌리게 마련이다.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중에는 이곳을 떠나 살고 있는 이들도 있다. 내가 비집고 들어간 자리와 조금 떨어져서 앉아있는 이였다. 양명마을 이장의 소개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김기화(58)씨. 신문에서 귀농인 인터뷰한지가 오래되었다. 만나기가 쉽지 않고 승낙은 더 힘들다. 인터뷰해도 되겠느냐는 말에 흔쾌히 승낙했다. 더불어 구독신청도 그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시원시원하다. 몇 주가 지났다. 두 번인가 찾았고 그때마다 '사람들'이 있었다. 혼자 사는 집이 아니었다. 귀촌동지가 있었다. 그리고 귀촌한 동네의 이웃들과 매일 어울리다시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틀에 소주 한 박스씩 나간다"는 이야기였다. 보통 서넛이 모이고 술과 이야기를 섞는다고 했다. 농사가 바쁘지 않은 철이면 술로 더 바빠질 것 같다.

며칠 전 친척이 "얼굴이 썩었다"는 말에 도시에서 살 때보다 건강이 더 나빠진 것 같아 "이제 안 먹는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고추농사가 끝물이라고 했다. 약을 안 해서 반은 탄저병이 돌았다. 내년부터 안한다고.
"이렇게 바쁘게 농사로 먹고 살려고 들어온 게 아닌데. 뼈 빠지게 일해도 돈이 되지 않는 구조가 농촌의 문제죠."

올해 고추 값이 좀 좋았는가. 농사에 서툴러 병이 들어서이기도 하지만 바쁘고 손이 많이 가는 것이 농사를 오래 해왔던 이들과 경쟁할 수 없다는 판단도 있다.
그는 된장을 택했다. 과거 건강보조식품을 팔던 경험에서 나온 것일까.
이곳에 살기 시작한지 6년이 되었다고 했다. 컨테이너로 4년을 버티고 집은 작년에 지은 것이다. 본인 명의의 산자락에 터를 닦아 시멘트블록을 쌓아 지은 집. 독특하게 보이는 것은 두 가지 난방시스템을 쓴다는 점이다. 방의 윗목 일부는 가스보일러. 전체바닥은 구들로 되어있다. 구들로 통하는 입구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한 쌍 놓여 있다.

"작년에는 조금 했어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해 봐야죠. 콩은 사다가 써야 할 것 같고요. 작년에 좀 늦어서 메주가 잘 뜨지 못했는데 올해는 미리 준비해서 (시기를) 잘 맞추어야겠죠."
지난달 28일 오후 마주보이는 구봉산자락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자연병풍아래 마을들이 오종종하다. 김기화 씨의 병든 고추를 가위로 다듬는 손 아래로 눈에 띄는 파란 고무신. 다시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고급세단 승용차와 중고 포클레인이 나란히 주차되어 있다.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터가 얼마나 될까 생각했다. 지금 함께 사는 '귀농동지'의 집터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마을과도 떨어졌는데 '남'과 가까이 사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귀농의 계기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친구들이 돌연변이라고 해요. 들어올 줄 전혀 몰랐다는 거지. 정착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돈이 있거나 차분히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몇 년 못 넘기고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구요. 나는? 좋아요. 들어와서 후회해 본적 없어요."

그의 집 위쪽으로는 지하수를 집수하는 물탱크가 있다. 마을과 도로를 가운데다 두고 있는 그의 땅은 예부터 마을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섞이지 못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라고 해도 반감과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하면 힘든 것은 '원주민'이 아니라 '들어온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땅에서 관정을 파는 것을 허락했다. 일부주민들은 김기화 씨의 집터에 받아진 물을 먹는다. 회의 때 얼마씩 부담하기도 했지만 아직 실질적인 '보상'(?)은 없는 모양이다. 귀촌인으로서 기자는 더 묻지 않기로 한다.
아직 된장이 담기지 않은 장독의 뚜껑을 들고 사진을 찍기로 한다. 된장은 그의 미래다. 장독의 내용물은 아직 없다.
"이제 채워야죠"
웃음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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