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주에 만난 사람 … 35년간 외롭게 자리 지키는 성지서림 김창연 씨

▲ 성지서림 김창연씨가 '책 읽지 않는 진안'의 씁쓸함을 이야기했다.
기껏 장날이면 수백리 떨어진 곳에서 온 장사치들이 도로 한쪽을 점령하고 허리 굽은 노인들이 오백 원을 실랑이 하는 모습. 군데군데 빈 상가의 외관은 벗겨진 페인트만큼이나 을씨년스럽다. 썰렁하고 음침한 터미널에는 도시의 노령화를 보여주는 듯, 노인들로 가득하다. 버스에 오르기도 힘들 정도로 굽은 허리에 가득 짐을 지고 버스에 오르는 모습. 돕기 위해 손을 내미는 이 또한 환갑이 훨씬 지났을 듯 한 노년의 여성이다.

오지로 소문난 곳에 댐이 들어서고 단위 중심지가 물에 잠기면서 수만 명이 쫓겨 타향살이를 하게 되었다. 보상받아 남은 사람도 농토를 잃고 친구도 잃고 자식들도 다 대도시로 빼앗긴 채 외롭게 지키는 콘크리트 움막들. 읍 소재지 한쪽에 수많은 장사집이 간판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고 있는 중에도 수십 년을 한 간판으로 문을 열고 있는 기적 같은 곳이 있다.

유행을 좆아 업종을 바꾸고 수익을 위해 겸업을 하는 일도 없었다. 무려 35년간 '책' 하나 만을 상품으로 한 가게를 유지하고 있다. 성지서림. 이름처럼 인구 이만의 도시 책의 성지일까. 주인장 김창연(72)씨가 얘기하는 성지의 뜻은 성지(聖地)가 아닌 성지(成志)다.

용담서 초등학교까지 다니고 전주에서 학교를 나왔다. 책을 좋아했으니 그랬을 것이다. 인터넷 서점이 대세인 지금에 도대체 수만권의 책을 쌓아놓고 세월을 낚는 것은 무슨 일이란 말인가? 도서관에서 '문지기'를 하면서 책과 친해졌고 "돈이 없고 능력도 없어" 어떤 다른 사업도 생각하기 힘들었단다.

결정적인 계기는 전주에 있는 홍지서림 사장의 권유였다. "뒤를 봐 줄 테니 서점을 해 보라"는 것.
군대를 제대하고 진안극장이 있던 자리(현재 진안읍교회 자리)에 문을 열었다. 당시에는 세 개의 서점이 더 있었다가 차례로 문을 닫거나 문구사로 전환하기도 했다. 그 동안 자리를 세 차례 옮기는 동안에도 김 대표는 "오로지 책만 팔았다"고 회상한다.

8시가 되면 "유령도시"로 변하는 진안. 24시간 편의점과 한손에 꼽는 술집과 노래방 외에는 간판마저 꺼진 곳이 된다. 대부분 낮에 활동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인근 도시인 전주로 퇴근시간이 되면 발길을 재촉한다. 사람보다 차가 더 많아보이는 곳.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고 시장도 장날이나 되어야 겨우 오가는 사람들이 보일 정도다.

이 늙은 도시에 서점이라니. 책은 죽어가고 있다.
"힘들어요. 이거 내 건물이니까 하는 것이지 다른 좋은 것 있으면 진즉에 때려쳐야 했지요."
한집건너 노인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책을 파는' 행위가 쉬울 리가 없다.
"젊은 사람도 책 안 읽어요. 요즘 스마트폰이다 컴퓨터다 해서 거기에 신경 쓰지 누가 책을 읽겠어요."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도시에 거주하는 '책 읽는 사람들'의 비율이 군단위에서는 현저히 낮다는 데에 서점의 위기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소수의 책 구매자도 대부분 인터넷서점을 통해 낮은 가격으로 책을 구매하는데 익숙해져버린 세태도 한몫 할 터.

"점점 더 어려워요. 여기 보세요. 그래도 베스트셀러라고 주문해서 사왔는데 어디 나가야 말이죠."
대부분 누워서 쌓여있는 책들로 이루어진 계단 한쪽에 <스티브잡스><닥치고 정치><도가니>등이 전면을 뽐내고 있었다.

"여기 말고 옆방에도 한가득 있고 또 2층에도 이만큼 쌓여 있어요."
팔리지 않는 책을 안고 사는 그에게 측은한 마음보다 책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는 삶이 부러워졌다. 그와 대화하는 1시간여 한명의 손님도 없었다. 사진을 찍고 대화를 마치고 떠나려는 나에게 책 한 권을 안겨준다.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나서였다.

"이게 초판은 아니라서 희소성은 덜하지만 20년이 넘은 책이어요. 2500원. 당시 가격인데 지금 그 돈이면 겨우 노트한권이지 책값이냐고. 세권가지고 있는데 한권 줄게요. 이제 두 권 남았네."

그가 젊은 시절에 도서관에서 일할 때 사람들이 한 장씩 뜯어가는 바람에 책 표지만 남는 것을 봤다는 시집이었다. 그가 전해준 시집. 한하운 시집. 민일사의 87년 발행한 것이다. 너덜해질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던 한하운의 시. 한 소절은 마치 지금 그와 서점의 현실과 묘하게 교차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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