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홍 정천우체국장
휴일의 한낮, 창문으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참으로 시원스럽다.
세상에서는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각종행사로 분주하고, 나는 그 가운데 섬처럼 지내고 있다.
날마다 날아오는 각종 행사초대장이나, 청첩장에서 첫인사말이 “오곡백과가 풍성한 계절”이니 “천고마비의 계절”이니 하는 결실의 계절인 가을을 표현하고 있다.
올 한해 수많은 난관을 견디고, 지탱해온 자연의 섭리를 인간의 잣대로 재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질만능주의를 제일의 가치로 삼는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가 영겁의 세월을 지내온 자연의 섭리를 명쾌히 규정하고 있다..
넘치는 것보다 채워가는것이 우리들의 본연의 삶일진대, 마치 우리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살고 있지나 하는 느낌이 든다.
얼마 전 종교계의 한 인사의 죽음을 두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종교권력의 한 중심에 살았던 그가 남은 육신마저도 병원에 후학들을 위해 기증하여 진정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것이다.
기존의 관행의 굴레를 뛰어넘어 참된 구도자로서, 이 세상에 먼지하나도 남기지 않은 그의 죽음에서 우리들은 과연 무었을 생각하여야 할 것인가....
여전히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 끝이 시원스럽다.
가을걷이를 마친 들녘에서는 나락들이 제 할일들을 마치고 가지런히 쉬고 있다.
그 위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가을 햇빛이 눈부시게 비추고 있다.
우리들은 참으로 똑똑하다.
자연의 흐름을 사계절로 나누고, 또 24절기로 나누고, 356일, 24시간, 60분 ,1초...
얼마나 현명한가? 마치 푸줏간에서 한칼의 고기를 자르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을 나누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자. 그 나눔이 우리들의 생활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단지 나눔의 어설픈 현명함이 대자연의 혜택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목격했다.
지난여름 미국남부를 강타한 카트리나 허리케인과 얼마 전 파키스탄을 황폐화 시킨 지진 등은 우리들이 대자연을 마음대로 다루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인간의 중심에서는 분명 이 가을은 충만한 시간들이다. 하지만 자연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준비를 위하여, 그동안 지녀왔던 것들을 비우는 시간이다.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내려놓는 시간이다.
자! 우리들도 이 가을에 몸과 마음에 지닌 것들을 조용히 비워보는 시간을 가져봄이 어떨런지...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이 바로 새로운 세계를 향한 변화의 첫 걸음인 것이다.
어느 찻집에 이런 글이 목판에 새겨있었다.
“텅 비어있으면 남 보기 아름답고 내 마음 고요 합니다 /시월의 휴일 한낮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