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여러분 감사합니다.

「시행착오」란 본디 교육용어에서 온 말이다. 여러 가지 동작을 반복해보다가 우연히 성공을 하게 되면 잘못된 동작은 버린다는 뜻이다.

성숙해가기 위해서는 학교에서의 학습도 중요하지만 스스로의 시행착오과정을 거치는 것도 내실있는 교육방법이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에 관하여 아쉬운 점은 5·16 군사정권이 혼란스럽고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지방자치를 중단시킨 점이다.

자율이 아니라 타율에 의해서 피동적으로 임하게 되면 그 일에 대한 목적과 가치를 알 수 없게 된다.

지방자치가 부활되었지만 이제 겨우 12년째이다. 자율이 부여되었지만 아직도 그 자율을 어떻게 행사해야 되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일꾼을 선택하는 데도 그 능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혈연, 지연, 학연이 우선이다. 경륜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애경사나 열심히 찾아다니는 정치건달을 선호하기도 한다. 심지어 돈을 받았으니 '양심상' 찍지 않을 수 없다는 의식수준도 있다.

광복이후의 혼란과 여순반란사건을 거치면서의 한국실정을 지켜본 영국의 「더 타임즈」특파원이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빈정거린 적도 있다.

그러나 우여곡절은 있었을망정 지금의 우리나라를 비민주국가라고 할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자치수준은 민주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

 

「시행착오」를 거치는 기간이 짧았기 때문일까? 그런데 시행착오 기간은 짧을수록 좋다. 유능한 사람일수록 시행착오기간이 짧다.

자치수준이 떨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주민들의 의식수준 때문일 것이다. 「民主」란 말 그대로 국민이 주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주인이 주인행세를 포기했을 때 그 결과는 보나마나다.

그처럼 주권을 포기한 주민들이 자치단체를 욕하는 것을 들으면 쓴웃음이 나온다. 당초에 주인이기를 포기하면 결과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는 법이다.

 

이 난은 지난번 4대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러한 우리들의 의식을 점검해보기 위하여 특별히 기획된 것이다.

지난 5·31 지방선거가 비교적 공명하게 치러졌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기초의원선거에서 매표가 자행되었다는 풍문은 낙심천만이다.

이제 새로운 집행부와 의회가 들어섰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6개월 간은 비판 없이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선진 언론관행이라고 한다.

조용히 지켜보기 위해서라면 이 칼럼은 당분간 쉬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필자는 이 방면에 별다른 경험이나 전문적인 식견이 없다. 그러므로 전문적인 이론을 동원하여 특정 사례를 분석할 능력은 없었으므로 다만 보통주민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시각에 불과했을 뿐임을 밝혀둔다.

그럼에도 열렬히 후원해 주신 독자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부족한 능력에도 장장 21회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었음도 밝혀둔다.

 

또 신문제작 관행을 뛰어넘어 이 칼럼을 1면에 배치해준 <진안신문>에도 감사의 뜻을 전한다.

앞으로는 다른 난에서 <雜同散異>라는 이름의 문화비평칼럼으로 찾아뵐 기회가 있을 것이다. /진안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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