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꽃이 핀다. 정이 넘친다.

길을 따라 쭉 가다보면...

어느새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 보인다.

“아~ 산내마을이다.”

한 숨 돌리기도 전에 여기저기에서...

마을의 따뜻한 향기가 여름 바람따라 흘러들어온다.



조용하면서 소박함이 물씬 나는 말 그대로 오지마을, 이곳은 성수면 산내마을이다.

지금은 마을 뒤쪽으로 도로가 개통되어 버스가 하루 3번 운행하여 사람구경도 하지만 예전엔 읍내 장을 볼라치면 30분 걸어서 아랫 마을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다닐 정도로 바깥 세상과 먼 생활을 해왔다.

이곳은 마을이 두 개로 형성 되어 있다. 내좌·산수동으로 나뉘져 불리다가 지금은 산내라고 명칭을 바꾸었다. 30호가 두 곳으로 나누어져 농사 지으며 생활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예전에는 마을이름이 안짝애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딸만 많이 낳았다는 뜻으로 불리다가 내좌, 산수동 이라 명칭을 바꾸었는데 그 뒤로 아들을 낳았다는 미담으로 내려오고 있다.

처음 마을을 찾았을 때 집옆 텃밭에서 콩순잎을 따는 작업을 하고 있는 노부부를 만났다.

황두하(76)이귀순(73)부부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고향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황두하씨는 어려서 일찍이 부모를 잃고 왜정때 형님따라 이곳까지 들어와서 지금껏 터를 잡고 살아 왔다고 했다. 일하는데 힘들지 않냐는 말에 “왜 힘들지 근디 자식들 주는맛에 힘든지 몰러”하며 자식얘기가 나오니까 황씨 입가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근디 아까부터 사진을 왜 찍고 그랴 늙은이 찍어서 머허게” “그람 어차피 찍을람 잘 찍어”하며 농담도 하며 힘든 일손을 잠시 멈추었다.

산내 마을은 고령층이 많다보니 마땅이 젊은층이 없어 마을 행사가 있으면 이 마을에서 제일 젊은 김학근 이장(왼쪽 상단사진)이 말없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찾았다.

그의 얼굴에서 묻어나는 소박한 웃음이 이 곳의 인심과 풍요로움이 넘쳐 보였다.

김씨는 어차피 누가해도 하는 일이라며 4년째 이장일을 보고 있는데 주민 모두가 고령층이다 보니 나름대로 고충도 있지만 일에 보람도 있다고 한다. 우선 우리 마을의 숙원인 마을앞 경지정리를 올 봄에 끝내서 마음이 흐뭇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곳을 찾아왔을 때 마을 회관이 안 보인 것 같다고 했을 때 김학근 이장은 머쩍은웃음을 지으며 회관이 있는 곳으로 안내를 하였다.

허름한 창고 같은 곳을 가리키며 김씨는 좀 창피하다며 머쩍게 계속 웃기만 했다. 안을 들여다 보았을 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기둥은 쥐들이 갈아먹어서 뜯겨져 나가고 한 쪽에 마이크 시설을 해 놓았는데  사람이 오래 있을수 없이 악취가 심하게 났다.

김씨는 마을 행사가 있으면 이곳에 와서 방송을 한다고 했다. 또한 마을 행사를 치룰려고 해도 마땅히 장소가 협소하다 보니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편 김학근 이장은 “작아도 좋다며 몇 안되는 우리 마을 사람들이 정겹게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고 쉴수 있는 그런 공간이 마련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담 너머로 아이소리 어른목소리가 뒤엉켜 들리는 소리에 발길이 집안으로 향했다.

마당에서는 벌써 수확한 고추를 마을 어른들이 모여 다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쪽 수돗가에서는 집주인 서정인(영농회장)씨가 무언가 열심히 맛깔스런 말도 해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감자를 긁고 있었다. 일하는 어른들 출출할까바 간식으로 삶아서 대접하려고 한다며 “나 이쁘게 찍어줘” 하며 한바탕 웃었다.



왁자지껄 동네 어른들이 모여 고추를 다듬고 있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일을 하는 중에도 시종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한쪽 수돗가에서는 집주인 서정인씨가 간식준비로 감자를 준비하고 있다.



우옥자 할머니(67)는 친손녀 박미소(15)양과 외손자 김형준(10)군과 함께살고 있다. 할머니는 농촌일이 힘들 때마다 동네 재롱둥이 두 손주들이 커 가는 것을 보면서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고 한다.



김학근 이장이 마을회관이라고 안내했지만 기자의 눈으로 본 건물은 마을회관이라고 믿기 어려운 폐허가 된 집 한채였다. 주변정리도 전혀 되어 있지 않는 허름한 창고같은 곳은 마을회관이라 부르기도 민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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