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름이 덮인 곳, 그곳에서 행복을 느끼다

 


마을을 들어가는 길이 다른 마을과 달리 작년 수해피해로 인해 한창 복구 사업이 진행 중이었다. 얼마나 더 가야하나 가도 가도 산뿐, 얼마만큼 들어 왔을까? 저 멀리 하나 둘 집들이 보였다.

 

여름 장맛비로 마을 앞 개울가에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오고 마을에 들어섰을 때 그리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지만 시선을 끄는 건물이 있었다. 마을의 자랑거리이면서 옛 어른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건물인 문화재 제28호로 등록되어 있는 건물. 예전엔 천주교 본당으로 불리었는데 지금은 어은공소로 명칭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 마을은 원래 깊은 산속이었는데 고종때 천주교 신자들의 핍박이 심해 전국에 있는 천주교 신자들이 몸을 피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 되어 지금의 후손에 이르러 살고 있는 거라고 했다.

 


이 마을은 주민 모두가 천주교 신자들로 현재는 40호 주민 80여명이 옹기종기 가족같은 분위기속에 살아가고 있다. 처음 마을을 찾았을 때 마치 고향집에 온 것처럼 편안한 느낌을 들게 한 것은 마을이장인 송용환(이장 52세)씨를 만났을 때 그의 넉넉하고 푸근함이 묻어나오는 웃음에서 느껴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낮 일을 마치고 몇몇 마을 사람들이 이 곳 공소 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건물에 얽힌 사연이 있으면 들려 달라는 말에 김화섭(55)씨가 말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움막을 치고 생활 하면서 미사도 보고 지내다가 1909년에 건립 하였으며 우리나라 천주 교회사 연구에 중요한 건물이라고 한다.

 

진안에서는 처음으로 설립(1900년)된 본당이었으나 1921년 마령면 연장리에 한들 본당이 설립 되면서 공소로 편입 1947년 다시 본당으로 승격, 한국 전쟁으로 폐쇄된 후 1952년에 진안읍에 본당이 설립되면서 현재 어은공소로 남아 있다고 했다.

마을 주민들은 이러한 중요 문화재가 우리 마을에 있다는 것이 흐뭇하다며 더 이상 훼손되지 않고 영구히 보존 할 수 있도록 행정에서 많은 관심을 써주길 바란다고 했다.

 


그런데 취재하는 동안 한쪽 길 모퉁이에서 웃음과 함성 섞인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을까? 가까이 가보았는데 순간 너무 놀라서 손에든 카메라를 땅에 떨어뜨릴 뻔 했다. 물 세래를 맞았다. 마을 안에 있는 우물가에서 이원표(70)씨와 김영자(61)씨가 수도꼭지에 호수를 연결하여 서로에게 물을 뿌리며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마냥 즐거워하고 있었다. 사소한 일에 즐겁게 웃고, 행복해 할 수 있는 마을 주민들, 그 안에 ‘정’이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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