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알리는 천상의 목소리…송풍초 소리사랑 중창단


가을이 깊어갑니다.

첫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도 이제 막 지났네요. 이제 우리 주변을 아름답게 장식했던 수많은 꽃들은 다 지고 이름모를 야생화들만이 간간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겨울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직 겨울을 맞을 준비도 안됐는데, 세월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마음이 쓸쓸한 사람들을 위해, 청상의 목소리를 전하는 작은 농촌마을 아이들이 있습니다.

전교생이 26명밖에 되지 않는 농촌의 작은 학교지만 용담면 송풍초등학교(교장 이기권) ‘소리사랑 중창단’ 14명의 아이들이 오늘도 아름다운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작은 음악실에 모였습니다.


◆노래하는 아이들

여느 시골아이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뛰고, 떠들고, 장난치던 아이들이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자 서서히 자리를 잡아 갑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합창이 시작됩니다.

짧게 끊어지듯 다시 이어지고, 속삭이듯 노래하다 어느새 맑고 고운 목소리를 한꺼번에 쏟아냅니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잠시 동안이지만, 카메라 셔터 소리마저 아이들의 노래에 방해가 될까봐 차마 누르지도 못합니다.

노래가 끝났습니다.

긴 여운을 뒤로 한 채, 아이들은 다시 예전의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2년 전으로…

아이들이 노래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해 3월이었습니다.

박영근 선생님이 지난해 3월1일자로 용담중학교로 발령을 받은 후 아이들과 노래와의 인연은 시작됐습니다.

내리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노래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됐던 박영근 선생님이 옛 추억이 되살려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게 된 것이죠.

아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박영근 선생님은 가능성을 봤습니다.

그리고 아침, 점심으로 매일 30분씩, 2개월 동안 아이들의 목소리를 다듬어 나갔습니다.



◆값진 수확들

노력의 결과는 매우 값졌습니다.

그해 6월 아이들은 전국대회에 참가해 120개 학교 중 선정한 10개 팀에 뽑혔고, 인기상까지 거머쥐게 됩니다.

이후 KBS ‘열려라 동요세상’에 출전해 인기상을 탔고, 전라북도 어린이 대 음악제에서는 중창부분 은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아이들의 활동무대는 더욱 넓어졌습니다.

3월26일이었습니다. 전주 소리문화의 전당 무악당에서 열린 유진박 콘서트에 ‘소리사랑 중창단’이 특별출연하게 된 것입니다.

2천300석을 꽉 채운 많은 관객들 앞에서 아이들은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마음껏 뽐냈고, 관객들로부터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4월 8일, 경기도 오산 문화예술회관에서 다시 한번 유진박과 함께 공연한 아이들은 7월에 발매된 유진박 3집 ‘노래하고 춤추는 유진박’ 앨범에 함께 참여, ‘무지개 바람’이란 노래도 부르게 됐습니다.


◆아이들을 바꾼 ‘노래’

노래는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노래를 통해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아이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노래하면서 표정이 밝아졌어요.” -김하겸(4)-

“노래하기 전에는 교실을 떠돌아 다니며 친구나 후배들을 때리고 다녔는데, 노래를 하면서 마음도 밝아진 것 같아요. 이제 안 때린다구요.” -방현국(3)-

“노래를 부르지 않았으면 서 보지도 못했을 큰 무대에 서 봤고, 또 사람들이 우리의 노래에 큰 박수를 보내주며 인정해 주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던 것 같아요.” -고유림(6)-

“노래를 부르면서 웃는 우리들의 표정이 사람들을 기쁘게 해 줄 수 있어 좋아요.” -박선경(3)-

노래는 아이들에게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 주었고, 또 세상에 나설 수 있는 새로운 자신감도 심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시선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윤일호 선생님의 얘기입니다.

“노래를 통해 학교생활태도에 있어 두드러진 변화가 보였습니다.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다보니 자신감이 생겼고, 이런 자신감은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 음악을 비롯해 미술, 체육까지 이제는 못하는 것이 없어요.”

노래를 통해 변화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이기권 교장선생님의 시선 또한 남달랐습니다.

“1년하고 10개월 동안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변화와 발전이 있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 볼 수 없게 되었고, 노래는 아이들에게 ‘나도 잘 하는 것이 있다’라는 자부심을 갖게 해줘 학교생활을 즐겁게 해 주었죠.”



◆더 넓은 세상으로

이제 아이들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아이들은 이탈리아 로마한인회 초청으로 외국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예산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꼭 갈 수 있을 것으로 아이들은 믿고 있습니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가 생각이 납니다.

사라지는 모든 것에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천상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지만 나이를 먹어 변성기를 맞게 되면 자연스럽게 단상에서 내려 올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어린이 합창단이지요. 그렇기에 지금 아이들이 들려주는 선율이 더욱 아름답게 들리는지도 모릅니다.

목소리는 변해도, 노래를 통해 느낀 즐거움과 추억들, 그리고 아이들이 갖고 있는 지금의 마음이 영원히 변치 않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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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사랑 중창단’ 이끄는 박영근 교사

어려서 받은 사랑, 이제는 아이들에게…


아이는 농촌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시골 작은 학교를 다녔다.

그런 그 아이에게 노래는 세상을 향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세월은 흘러 그 아이가 교단에 섰다.

“어릴적 생각을 많이 했어요. 시골에서 자란 제게 노래는 새로운 방향성을 심어주었거든요. 시골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도시아이들처럼 다양한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도 없구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고민했습니다. 제 어릴 적 생각이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게 됐습니다.”

평소, 아이들에게 자상한 아버지 같은 모습의 그였지만 음악실에서의 모습은 달랐다.

“천 여명이나 되는 아이들 중 선발한 다른 학교 아이들과 비교할 수가 없죠. 그 학교와 비교해 잘하지는 못하지만 결코 뒤떨어지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음악실 안에서의 모습이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잘 따라와 준 아이들이 고맙죠.”

노래를 통해 아이들에게 ‘희망’을 찾아준 그가 아이들을 위해 또 다시 큰 선물을 마련하고 있다.

 

“올해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외국공연을 도와주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외국공연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어 신청했지만 실패했죠. 여기서 그만둘 수 없다는 생각에 이탈리아에 있는 후배에게 연락했더니 로마 한인회에서 초청장이 왔더라구요. 기회는 마련됐지만 이제는 비용이 문제가 됐습니다. 이런 사정을 안 지역에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면장님도 일찌감치 지원을 약속했고, 군수님도 기업과 연결해 지원해 주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주셨구요. 이번 공연이 성사된다면 아이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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