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적인 체험문화에서 벗어난 ‘건강약초마을’

으뜸마을을 찾아서 (4) ··· 백운면 동창지구

 

-편집자 주-

이전의 농업·농촌정책은 중앙정부에서 시달하는 내용을 지방정부에서 시행하는 이른바 하향식 정책이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중앙정부 주도의, 설계주의 농정은 지역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많은 자금지원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농업·농촌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처럼 외생적 지역발전에 대한 한계를 실감하고 내생적 지역발전에 대한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군에서는 2001년도에 시·군단위로는 전국 최초로 지자체의 독자적인 지역개발사업으로 ‘으뜸마을 가꾸기 사업’을 실시했다.

단기적으로는 지역특성을 살린 소득작목 개발과 관광기반 및 도농교류기반 구축으로 주민 소득향상에 기여하고 장기적으로는 지역의 자연·문화·역사적 특징을 살린 마을로 개발하여 지속적인 지역공동체로서의 마을조성이 ‘으뜸마을 가꾸기 사업’의 목적이다.

해수로 5년. 으뜸마을 가꾸기 사업이 우리의 농촌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마을 사업에 주민들이 얼마큼 주체적으로 참여해 주민조직이 얼마나 활성화됐는지, 살펴본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정겨운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한 주민을 만났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때문인지 입김을 뿜어대는 소를 어루만지며 길을 재촉하는 주민의 모습이 정겹다.


 

5동창이라고 했다.

백운면 동창지구는 선각산을 중심으로 신선이 춤을 춘다는 선인무수(仙人舞袖)의 혈을 지니며, 진안의 8개 명당 자리 중 5번째로 좋은 터를 갖고 있었다.

원동창과 신리, 석전, 무등 등 4개 자연마을로 구성돼 있는 동창지구는 동서남북이 모두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동쪽으로는 덕태산과 선각산, 팔공산이 위치해 있고, 그 능선을 경계로 장수군 천천면과 연결돼 있다.

서쪽으로는 내동산이 성수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성수산이 임실군을 연결하고 있다. 북쪽으로도 성수산 줄기가 서쪽까지 이어지며 진안읍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동창지구지만 그 어느 마을보다 넓은 뜰을 갖고 있다.

주곡농업 외에도 대마, 목화, 인삼, 잎담배, 약초 재배가 성하고 있는 이유다.


도시민들과 함께 한 김장체험

마을이 시끄러워졌다.

막바지 가을걷이와 겨울준비로 한창 바빴던 지난 11월 11일과 12일. 이틀 동안 백운면 동창지구에는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들었다.

올해 동창지구 마을주민들로부터 500평의 터를 임대받아 주말농장을 운영하던 25명의 도시민들이 마을주민들과 김장담그기 체험을 통해 도농교류행사를 가졌다.

서울과 전주 등지에서 찾아온 의사, 금융인, 방송인, 패션사업가 등 평소 흙 만질 기회를 찾지 못했던 도시민들은 이날만큼은 동창마을 주민들과 함께 직접 배추도 절이고, 마늘도 까며 김장담그기 전 과정을 체험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고랭지에서 재배된 질 좋은 배추와 마을에서 직접 재배한 농산물로 만들어진 맛 좋은 양념까지.

그 맛을 잊지 못한 도시체험자들의 입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김치를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주민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도농교류의 새로운 수확이다.


오가피 된장, 새로운 소득사업

답답한 도시환경과 달리 풍부하고 깨끗한 자연경관과 우리의 전통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 우리의 농촌이다. 하지만 농촌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깜깜한 어둠속에서 작은 불빛 하나 찾기 어려워졌다.

다른 농촌마을과 달리 젊은 마을로 불리고 있는 동창지구도 시대의 흐름을 바꾸진 못했다.

원동창, 신리, 무등, 석전 등 4개 자연마을에는 모두 89가구 243명의 주민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243명의 주민 중 50세를 넘어선 주민은 모두 129명으로 전체 주민의 53%를 차지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우리의 농촌은 자연스럽게 노인과 부녀자들만이 남게 된 것이다.

2003년, 으뜸마을가꾸기 사업이 시작되면서 백운면 동창지구 주민들의 고민도 노인과 부녀자들의 소득증대에 관심이 모아졌다.

부녀회를 중심으로 오가피 된장을 생산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지난해 동창지구 부녀회원들은 콩이 아닌 마을의 특산물인 오가피를 이용해 된장을 생산해 냈다.

마을을 찾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금씩 판매를 시작한 오가피 된장은 입소문을 통해 도시민들 사이에 전해졌다.

“생각보다 도시민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농가의 수입도 크게 늘어 콩으로 된장을 만들 때 보다 가구당 30만원 이상씩의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많은 오가피 된장을 담궜다고 밝힌 정경교 백운면 동창지구 으뜸마을가꾸기 추진 위원장은 “오가피 된장이 마을 부녀회원들의 소득 증대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 또한 숨기지 않았다.

오가피 된장과 김치로 마을 부녀회원들의 소득증대를 꽤했다면 노인들에게는 비단짜기 체험행사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노인들이 맡아야 할 일을 찾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마을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마을 주민 중 3, 4명의 노인분들이 어려서 비단을 짰던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경험을 살려 체험프로그램을 마련하게 됐습니다.”

비단짜기 체험프로그램을 위해 올해 동창지구에서는 200주의 뽕나무를 심었고, 내년 봄에는 또 다시 500주의 뽕나무를 더 심을 계획이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마을 노인들에게는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게 됐고, 또 마을을 찾은 도시민들에게 다양한 체험의 기회는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정 위원장의 얘기다.

 


동창마을에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는 바로 나귀를 타고 마을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다는 점이다.


다양한 문화체험 기회 제공

이제 도농교류를 통한 농촌관광은 열악한 농촌환경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농외소득 분야 중 하나다.

하지만 각 마을마다 똑같은 행사를 붕어빵처럼 찍어내면서 도시민들은 농촌지역에서 내 놓은 농총관광 프로그램에 대해 식상해 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지역의 특색에 맞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개발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런점에 있어 동창지구의 체험 프로그램은 다른 농촌지역과는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동방무예 체험이다.

오랫동안 동방무예를 연마한 정경교 위원장의 지도아래 참가자들은 동방무예의 직접 배워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

또한 다양한 국악체험도 동창마을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전북도립국악원 회원들로 구성된 백년회(동창마을 입구에는 300평 규모의 연꽃단지가 조성돼 있다. 전북도립국악원 회원들은 동창마을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모임 이름도 백년회로 정했다) 회원들의 지도로 다양한 국악체험의 기회도 마련된다.

특히 백년회 회원들은 마을주민들을 위해 올해에만 4번의 공연을 펼치며 태평무와 화관무, 살풀이, 국악공연 등을 선보였다.

다도체험 또한 동창지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체험 프로그램 중 하나다.

3만여 평에서 재배되는 오가피를 이용한 오가피 차와 300평의 논에 재배된 200주의 연꽃에서 만들어지는 백연꽃차에 내년에는 감국차도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귀가 끄는 마차를 타고 마을을 둘러보는 재미도 맛볼 수 있다.

지난해 구입한 2마리의 나귀와 올해 구입한 2마리의 나귀 등 모두 4마리의 나귀들이 마차를 끌 준비를 마친 상태다.

“다른 지역 농촌체험프로그램이 모두 획일적이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우리지역에서는 좀더 새롭고 깊이 있는 체험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문화를 살리고, 또 예술과 무예가 어우러진 재미있는 프로그램까지.

좀더 새롭고, 깊이 있는 체험프로그램으로 도시민들을 맞겠다는 것이 정경교 위원장의 각오다.


소식지를 통한 의미 있는 소통

[10월3일 백운면민의 날에 우리마을이 종합2위를 하였습니다. 경품 김치냉장고도 우리마을 전영자님께서 안아오셨구요. 이장님께선 면민마라톤대회에서 2위를 하셨습니다. 1위를 하신분이 놀러오신 젊은 사위라하니 실질적인 1위나 진배없죠.^^]

[10월4일 이장님댁 소가 이장님과 똑 닮은 건강한 송아지를 낳았답니다.]

[10월17일 노인회에서 마을 은행과 감을 따셨습니다. 일을 마치고 둥구나무 앞 평상에서 조촐한 막걸리 잔치가 열렸지요.]

어떤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볼 수 없는 동창마을 주민들만의 소중한 소식들이다.

일상에서 펼쳐지는 주민들의 소중한 이야기들은 모두 ‘흰구름 살포시 쉬어 가는 백운 나들목 소식’에 고스란히 담긴다.

으뜸마을가꾸기사업 백운면 동창지구 지우(본명 엄인주) 사무장이 본격적으로 마을가꾸기에 뛰어든 지난 8월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소식지는 마을주민을 뛰어넘어, 고향을 떠난 출향인들까지 연결하는 소중한 소통의 통로 구실을 담당하고 있다.

“체험관과 마을회관에서 많은 일들이 펼쳐지지만 정작 주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더라구요. 마을의 일을 주민들에게 알리는 작은 소통의 통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매달 한 번씩 소식지를 만들게 됐습니다. 하지만 추석을 맞아 고향을 다녀간 출향인분들이 마을의 작은 소식들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출향인과 마을주민을 연결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보았지요.”

마을의 소식을 주민들과 공유하자는 의미로 만들어진 소식지였지만 이제는 지난 10월 새롭게 개편한 마을 홈페이지(www.e-nadulmok.org)와 함께 고향을 떠난 출향인들과 마을을 연결하는 중요한 구실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전북도립국악원 소속 회원들로 구성된 백년회는 동창마을을 찾은 주민들에게 다양한

국악체험 마당을 제공한다. 사진은 지난 3월 나들목체험관 준공식 행사.


마을발전을 꿈꾸는 새로운 시도

올해 3월25일 준공된 백운나들목체험관에는 40평의 체험장을 비롯해 6평짜리 황토방 3개가 마련돼 있다. 여기에 재래식 화장실을 현대식 시설로 개조한 마을회관과 올해 말까지 완공 예정인 30평의 황토메주체험장까지. 50여명의 도시민들이 한꺼번에 숙식과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이런 기반시설을 바탕으로 동창마을 주민들은 마을발전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

바로 ‘2006년 나들목마을 체험학교’다.

오는 12월과 1월, 두차례에 걸쳐 실시되는 체험학교에서는 20여명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증평굿 전수 체험과 동방무예 체험기회를 마련하게 된다.

나고 드는 길목에 자리 잡았다는 의미로 지어진 동창마을의 새로운 이름 ‘나들목 마을’처럼 주민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쉼터 같은 그런 마을을 그려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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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교 백운면 동창지구 으뜸마을가꾸기사업 추진위원장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마을발전 이끄는 가장 큰 힘이다

 


그는 귀농인이었다.

10여년 동안 부산에서 외항상선 항해사로 활동했고, 한 척의 배를 움직일 수 있는 선장 자격도 갖췄지만 15년 전인 92년, 그는 과감히 바다를 버리고 산을 선택했다.

“인연이 있어서 이곳까지 왔겠지요. 10여 년 동안의 뱃 생활이 지겹기도 했지만 어려서부터 농촌에서의 생활을 꿈꿔왔습니다.”

백운면 동창지구 으뜸마을가꾸기사업 정경교 추진위원장이 농촌을 선택한 이유는 밀레의 ‘만종’에서 나타난 농촌마을의 편안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동방무예를 연마한 그는 한적한 산 속에서 소림사 못지않은 강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런 이유에서 였을까?

산과 평야가 공존하고 있는 백운면 동창마을이 그의 새로운 안식처가 되었다.

하지만 작은 농촌마을은 다른 귀농인들처럼 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처음 시도한 고추농사는 실패로 돌아갔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가 선택한 취업의 길도 녹녹치 않았다.

오랫동안 꿈꾸워 왔던 삶이어서일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섯 달 만에 손수 집을 져 식당을 열었고, 급하게 떠났던 부산의 부동산이 팔리면서 생활고도 해결됐다.

“귀농인들이라면 다들 느끼겠지만 처음 몇 년 동안의 생활이 어렵더라구요. 치밀한 계획을 세워도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귀농이라는 것을 그때 느꼈지요.”

귀농의 어려움을 경험하며 점차 농촌생활에 적응해 갈 때 쯤, 그에게 주민들과 함께 마을발전을 이끄는 으뜸마을가꾸기사업 추진위원장이라는 책임이 주어졌다.

“아직 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이나 주민들의 감정을 다 알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있었지요. 하지만 오랜 뱃 생활을 통해 습득한 다양한 시각과 그런 경험을 통해 마을이 발전해 나갈 길을 한정된 시각이 아닌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정 위원장의 다양한 시각이 서서히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 것이다.

“농촌마을이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조급증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약초를 심어도 그 결과물이 소득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3년이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행정이나 주민들은 너무 빨리 결과물을 기대하는 것 같아요. 2003년 시작한 우리마을의 으뜸마을가꾸기 사업도 3년이 지난 올해 서서히 성과물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행정에서도 사업 시행 후 3, 4년은 기다리는 느긋함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3년의 준비기간 동안 으뜸마을가꾸기사업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했다면, 주민들의 노력의 결과가 소득으로 연결되기 시작한 내년부터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의지가 더 높아져 마을 발전을 이끄는 가장 큰 힘이 될 것으로 정 위원장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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