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로 선 진안2-동향 산영재(치)

 

햇볕이 따스했던 지난달 25일 두번째 두발로 선 산행 행사가 있었다.

즐거운 옛 이야기를 들으며 힘든 줄도 모르고 고갯마루에 올라 온 일행들은 300여년 된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지난 10월 두발로 선 진안 첫 산행이 시작됐습니다.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었던 나도산에 이어 두 번째 산행은 옛 이야기가 숨쉬는 곳 동향 산영재에 올랐습니다. 이번 행사에는 김남기(동향면장)씨를 비롯한 동향면 직원 신창묵, 서한준, 김사흠씨와 마을 이장 전기홍(장전), 박병옥(섬계), 박천옥(추동), 성태홍(하양), 그리고 박주홍(정천우체국장)씨와 아빠를 따라 함께 온 소연(조림초6), 상희(조림초4)양 등 14명이 참가했습니다. 이날은 특별히 전기홍(68) 장전마을 이장님의 설명으로 더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날씨가 제법 따사롭다. 몇일 전까지만 해도 초겨울 추위로 옷깃을 여미게 만들더니 두발로 선 진안 두 번째 산행을 떠나 던 지난 11월 25일, 바람도 햇볕도 웬일인지 따스하기만 해 산을 오르기도 전 일행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첫 발을 떼다

천(川)이 조용히 흐른다. 간간히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를 벗 삼아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바위와 자갈들을 살짝 살짝 건드리며 지난다. 오래 전 옛날부터 그 자리 그대로 흘렀을 물은 천을 옆으로 끼고 산영재로 오르던 사람들의 서러운 눈물에 즐거운 이야기에 함께 울고 웃었을 터였다. 그렇게 산영제로의 두 번째 산행을 시작했다. 굽이굽이 흐르는 물처럼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아 첫 발을 떼었다.

 

◆겨울의 시작

“와~ 낙엽이 정말 좋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정말 끝내주네”

여기저기 일행들 사이로 낙엽 밟는 재미에 소란하다. 입동이 지난지도 한참. 이제 서서히 겨울의 초입에 들어섰다. 몇주 전까지만 해도 붉게 물들어 제 아름다움을 뽑냈을 나무들은 이제 앙상한 가지만이 남아 겨울잠에 들어섰다.

 

◆옛 발자취를 따라

고갯 길이 제법 넓다. 꽤 오랫동안 이 길을 지나는 사람이 없었을 터인데 걷기에 수월하다. 험난한 길을 예상했었는데 반듯한 길이 반갑기만 하다.

“이 길은 원래 도로였어요. 상전과 안천에서 동향으로 통하는 길이 나기 전 동향에서 진안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죠. 산림도로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일제시대 지도를 찾아보면 도로로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 그리고 여기 보이는 바위는 명난바위입니다. 수십년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지만 사고 한번 나지 않아 붙여진 이름이지요.”

33년간 장전마을 이장 일을 보며 수 없이 이 길을 지났던 전기홍씨의 말이다.

이름난 바위라는 뜻의 ‘명난바위’ 이 바위는 6.25때 인민군 감시를 위해 보초를 섰던 바위이기도 하다는 전씨의 설명이다.

잠시 휴식을 취한 일행은 다시 발걸음을 내 딛었다. 옛 절이 있던 자리의 절터골에 이르렀다. “절이 현재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도 남아있는 기왓장 등 여러 가지 흔적으로 미루어 옛날, 절이 있던 자리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행들이 서 있는 자리에서 전씨의 설명을 듣고 산 위를 올려다 본다. 옛 고즈넉한 산사가 이쯤인가 가늠하면서...

 

깊은 숲 속 나뭇가지 사이로 종달새 보금자리가 일행들 눈에 띄였다.

 

◆산영재 그 이야기 속으로

“여기있다 호랑이굴!”

앞서 가던 일행의 호랑이란 소리에 모두의 귀가 번쩍 떠진다.

“옛날 진안에서 이장 일을 마치고 오다 이 굴 근처에 다다르면 소름이 돋고는 했어요. 제 생각엔 이곳이 이 길에서 가장 무서운 곳 같아요.”

큰 바위 틈 사이로 작은 굴이 하나 있다. 과연 호랑이 한 마리가 들어갈 수나 있을까 싶게 입구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호랑이굴을 바라보는 일행들은 까만 어둠이 내린 굴 안에서 호랑이의 푸른 섬광이 번쩍할 듯 하다.

“산영재에 얽힌 이야기는 많이 있어요. 옛날 용암마을에 장씨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이의 힘이 얼마나 장사인지 소금을 짊어지고 이 먼 길을 한 두어번 쉬고 그냥 넘었다고 하지요.”

호랑이굴에 호랑이가 살았던 그렇지 않던 이 길을 새롭게 다시금 밟아보는 마을 주민들은 진안에서 장을 보고 오는 아낙 마중하러 나오거나 소금 팔러 다니며 넘던 이 ‘사냥제’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하늘 향해 뻗은 고목을 벗 삼고

수북하게 쌓인 낙엽 밟는 재미에... 나무 위에 소담하게 지은 종달새 둥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고... 뜻밖에 보게 된 맷돼지 발자국이 신기하고... 2시간 남짓 오르는 동안 여기저기 숨은그림찾기처럼 나타나는 소소한 선물이 일행들 발걸음을 더욱 즐겁게 한다.

그러는 동안 멋진 모습으로 300여 년을 한 자리에서 지켜온 고목이 일행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상수리나무라 했다. 나무 아래에는 성황단 흔적이 엿 보인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 나무 옆으로 옛날에는 500여 년 된 떡꿀밤나무가 있었어요. 그 나무도 있다면 멋진 경치가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전기홍씨는 그 자리가 6.25직전 5사단 주둔지였으며 해남에서 원주까지로의 작전 도로였다고 말한다.

동향에서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과 밖에서 동향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모두 이 곳에서 한번 쯤은 쉬어갔을 터였다. 나무 아래 납작한 돌 하나 얹어 마음 속 깊이 묻어 둔 소원 하나 쯤 빌고 갔을 거였다.

파란 하늘 향해 높이 솟은 나무가 한 숨 돌리는 우리 일행을 흔쾌히 품어 준다.

 

산행 중 신창묵씨가 맷돼지 발자국을 발견했다. 일행들의 소리를 듣고 급하게 사라진

흔적이 보였다.

 

◆발걸음도 가벼운 하산 길

지금까지 가파른 산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 오르긴 올랐다 보다. 이제부터 내리막이다. 내려가기에 앞서 위에서 내려다 본 하산 길은 온통 황토 빛이다. 미끄러운 낙엽 길이 썰매 타면 참 재미있겠다 싶다.

어느새 일행들 사이에선 누가 먼저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게 흥겨운 노랫가락이 흐른다.

노랫소리 따라 함께 걷던 중 바위 좁은 틈을 가리키며 전씨는 1952년도 인민군이 숨어 지내다 아군에 의해 죽은 장소라고 설명한다.

매 마른 풀숲사이로 아스팔트가 보인다. 상전과 동향의 옛 경계 이정표인 소나무를 지나니 어느새 끝이다. 걷다보면 이야기 하나, 다시 걷다보면 전설 하나. 사냥제 이곳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며 걸어 온 하산 길에 작은 행복을 느낀다.

 

◆못 다한 이야기

산행을 무사히 마친 우리 일행은 처음 목적지까지 태워다 준 용달차를 타고 다시 동향면사무소로 가기 전 장전마을에 들렀다. 산행 중에 자주 언급됐던 매봉대한 설명을 듣고자 함이다.

장전마을 뒷산은 매가 꿩을 잡는다는 매봉이다. 또한 마을 앞에는 꿩이 엎드려 숨어 있다는 복치혈(伏雉穴)이란 명당자리가 있다고 한다.

“매봉에서 보면 보이는 이곳은 꿩이 매에게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해요. 그래서 이처럼 숲으로 잘 가꾸어져 있습니다. 만약 숲을 훼손하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해요.”

전기홍씨는 산영재에서부터 장전마을에 얽힌 전설까지 쉼 없이 이야기를 풀어냈다. 전씨의 설명이 함께 한 이번 산행이 그래서 더 즐거웠는지 모른다.

긴 산행에 지칠만도 할 텐데 장전마을을 벗어나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일행들은 흥겨움의 연속이었다. 그 흥겨움 속에서 두발로 선 진안 두 번째 산행도 서서히 마무리 됐다. 다음번 더 즐거운 세 번째 산행을 기다리며.

 

1952년도 인민군이 숨어 지내다 아군에 의해 숨진 장소라고 전기홍씨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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