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의 종말 ‘특별한 자’와 ‘아무것도 아닌자’의 경계를 넘어서
신분의 종말 ‘특별한 자’와 ‘아무것도 아닌자’의 경계를 넘어서
  • 진안신문
  • 승인 2006.12.2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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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선진의 ‘올 겨울엔 도서관이나 파먹을까?’(2)
 
▲ 지음 : 로버트 풀러 옮김 : 안종설 출판 : 열대림

저자 로버트 풀러는 고등학교에서 낙제한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을 한 뒤 대학총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낙제아들의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 대학에서 일련의 교육개혁을 성공적으로 주도한 그가 총장직을 물러나 직함과 지위라는 보호막을 상실했을 때 자각한 그 정체-신분주의 를 정의한 책이다.

인간의 역사는 무슨무슨 주의의 진화로 나아가는 역사이며 그 모든 주의는 빙산의 일각, 수면 아래에는 ‘신분주의’가 깔려 있다. 신분주의는 모든 주의의 어머니이다. 성 차별이나 인종주의에서 자유롭다 해도 신분주의를 깨닫지 못한다면 여전히 당신은 신분주의자이다. 당신은 어떠한 사람인가?

 

우리는 처음 만나 “ 무슨 일을 하십니까?” 하고 묻는다. 대답에 따라 그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사전적인 탐색질문이다. 상대의 신분에 따라 존경이나 무시를, 신분의 유무에 따라 ‘섬바디somebody -특별한 자’ 와 ‘노바디nobody -아무것도 아닌 자’로 구별되는 것이다. 이처럼 신분은 자부심의 원천이자 수치심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단 지위를 확보하고 나면 어떻게든 그 지위를 고수하려 한다. ‘관리’ ‘공동’ ‘최고’ 등의 수식어가 따르는 직함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가려주며 사회적 지위-계층이라 부르는-를 규정해주기 때문이다

 

지위가 그 사람의 우수성을 입증하며 성공에 필수적인 요인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이중으로 계산된 영수증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 이중계산서는 권력의 남용으로 나타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서 이런저런 형태의 고통을 당한다. 

부하직원을 못살게 구는 상사, 웨이터를 괴롭히는 주방장이나 손님, 선수을 들들 볶는 코치, 교사를 모욕하는 교장, 조교를 착취하는 교수, 학생을 조롱하는 선생, 급우를 따돌리는 학생, 자녀를 얕잡아 보는 부모, 용의자를 학대하는 형사, 병자를 아무렇게나 다루는 간호사, 민원인에게 불친절할 뿐 아니라 무시하는 공무원 등등. . .이렇듯 신분에 대한 이중적인 계산과 혼돈은 신화처럼 우리를 지배해 왔다.

그러나 이 모든 사례에  비난을 돌릴 대상은 우리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다. 이제 것 신분의 획득에서 저질러지는 남용과 억압을 받아주고 확장시켜준 주체가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 분야에서 우수하다고 해서 다른 분야에서도 우수하지는 않은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모든 지위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위는 우리의 삶과 제도를 관리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도구이다. 우리가 경계하고 물리쳐야 할 것은 지위를 이용한 권력의 남용이나 억압인 것이다.

민주주의는 관계에서의 신분주의를 최소화 하고 우리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 그것도 불완전한 - 에 불과 하다. 그렇다면 그런 제도에서 얻은 신분 또한 모두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한 범주를 넘지 않는 권력사용이 합당하다. 이제 이런 권력의 제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야하고 따라야 하는 시대적 요구가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나부끼기 시작했다.

이제 ‘가정- 아이에서 사람으로, 건강-환자에서 고객으로, 노동- 피고용인에서 동반자로, 교육-학생에서 학습자로’ 상대를 존중해야 하며 존중을 받아야 한다.   

 

압제는 반역의 영감을 제공한다. 그동안 소수인 섬바디가 남용을 누린 사이 다수의 노바디들은 반역의 영감을 서로 결합함으로써 섬바디의 오만을 부수고 합당한 권력사용을 요구한다.

지금의 섬바디가 내일의 노바디가 될 수 있으며 오늘의 노바디가 내일의 섬바디일 수 있다. 이런 보편적인 순환의 진리를 자각해야 한다. 희망적이게도 진보하는 민주주의와 자유의 산물인 요즘의 젊은이들은 노바디와 섬바디의 경계를 자의로 넘나들면서 자유인임을 즐긴다. 나 역시 이를 지향하는 노바디의 삶을 살고 있다.

“인간의 권리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아주 조그만 곳,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 우리의 이웃, 학교 공장이나 농장이나 사무실에서 비롯된다.… 이런 권리가 그런 곳에서 의미를 갖기 전까지는 그 어디서도 의미를 갖지 못한다.

 

다소 딱딱하고 많은 분량으로 여겨질지 모르나 한 두장(章)만 읽어도 충분히 저자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을 수 있는 책이다.

한번 씩 들춰보자 그리고 결속하자. 다수의 노바디들이여! 아무 것도 아닌자들이여!

섬바디가 다시 노바디로 돌아오는 것이 섬바디의 궁극적인 구원이 될것이니 세계의 노바디들이여 노바디로 있는 동안 노바디를 즐기자.

첫 직장을 얻어 섬바디의 맨 끝 대열에 선 아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삶의 목적은 명예와 돈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데서 찾아진다는 것을 알게 하련다. 인정은 존엄성을 이기고 죽음까지도 이긴다. 인정받는 섬바디는 인정하는 노바디속에 세워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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