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뜸마을을 찾아서 (7) … 마령면 신동마을

눈이 내리고 잠깐 추워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따뜻한 햇볕이 대지를 감싼다. 아직 산과 들에 쌓인 눈은 그대로 있지만, 밝은 햇빛에 반짝거리는 모습이 포근해 보인다.
차창 밖으로 한동안 눈과 추위 때문에 집안에만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밖으로 나와 각자 할 일을 찾는 게 보인다. 몇몇 노인들은 천천히 마을 길을 걸으며 따뜻한 겨울을 음미하고 있었다.
덕천리 보건진료소를 지나 얼마 가지 않아 바로 ‘신동마을’의 시작을 알리는 조그만 마을 경계석이 보인다.

▲ 신동마을 각 집마다 낮은 담은 있어도 대문은 없다. 인심 좋고 이웃간 우애가 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대문은 필요 없어”
신동마을 진입로를 따라 천천히 차를 몰고 나아가니, 양옆으로 산이 나란히 따라온다. 그리고 길이 끝나갈 때쯤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마을이 펼쳐져 있다.
마을회관 앞에 주민 몇 명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몇몇 여성 주민들은 마을회관 앞 수돗가에서 무언가를 준비하느라 바빠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꽤 많은 쌀을 물에 씻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 있으면 점심때잖아. 우리 마을 사람들은 점심시간이면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밥을 먹어. 그럴 정도로 화합이 잘 된다는 뜻이지.”
가장 먼저 만난 이길우(53) 으뜸마을추진위원장이 신동마을의 큰 자랑거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마을에는 ‘대문’이 없다. 그 어느 집도 대문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집이 이웃들에게 활짝 열려 있었고, 그만큼 이웃 간에 얼마나 사이가 좋은지를 알 수 있었다.
집과 집 사이에는 담장이 둘러 있기는 하지만, 그것마저도 사람 키 절반 높이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마당이 훤히 다 보인다. 일반적인 ‘낯선 사람의 침입을 막는 용도’가 아니라 그냥 ‘이만큼이 우리 마당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 삼면이 산으로 둘러쌓인 신동마을. 골짜기 맨 끝마을답게 높지 않은 산에 폭 안긴 모습이다.
◆놋점이로 불렸던 신동
신동마을 옛 이름은 ‘놋점이’ 혹은 ‘놋찜이’, ‘놋점터’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예전, 이 마을에서는 놋그릇을 만들어 전주 등지로 반출했다. 하지만, 이후 놋그릇을 만들던 곳이 사라지고,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신동(薪洞)’이라는 새 명칭으로 바뀌었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진안군 향토문화 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마을은 김씨가 정착하면서 만들어진 마을이라고 한다. 이후 경주 이씨까지 정착하면서 마을이 크게 번창했는데, 현재는 경주 이씨가 마을 주민 가운데 절반 정도가 된다고 한다.
현재 이 마을에는 26가구 70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으며, 60세 이상 고령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산이 많은 지형이라 벼농사는 많지 않고 콩, 고추, 인삼 등 밭농사가 많다.

◆골짜기별로 친근한 이름
마을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만큼, 예전 마을 사람들에게 산은 소중한 삶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골짜기마다 모두 이름을 붙여 놨는데, 그 골짜기에서 많이 나는 나무 이름을 따서 ‘배나무골’과 같은 이름을 붙였다. 그 덕에 마을 사람들은 어느 골짜기에 어떤 나무가 많이 나는지를 알 수 있었고, 그곳에서 필요한 무언가를 얻었을 것이다.
나무 이름 말고도 ‘절터골’이라는 곳도 있다. 예전에 절이 있었다는 것인지, 절을 짓다가 말았다는 것인지 정확한 유래를 알 수는 없지만, 지금도 그곳에 가면 건물 흔적이 남아있다.

▲ 1996년 지었다는 마을회관. 매일 점심시간이면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함께 밥을 먹고, 틈나는대로 모여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사라진 전통에 대한 아쉬움
15~16년 전만 해도 이 마을에서는 당산제(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 마을의 젊은이들은 계속 도시로 나갔고, 마을에 남은 주민들은 늙어가면서 그 전통이 사라졌다고 한다.
진안군 향토문화백과사전에서는 “당산제는 마을 어귀 느티나무에 음력 3월 삼짇날에 모셨다. 남자들은 풍물을 치고 부녀자들이 제를 주관했다. 비용은 쌀이나 돈으로 추렴하여 충당하고, 돼지머리와 떡을 준비해 제를 올렸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밖에도 물이 귀했던 이 마을에서는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상수도가 들어온 지는 1년 남짓. 그전에는 산수도를 이용했기 때문에 가뭄만 들면 식수를 구하는 게 큰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우제를 지냈던 모양이다. 역시 향토문화백과사전에서는 “마을 뒷산 고리봉 밑 놋점터에 샘이 있는데,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마지막으로 제를 지낸 것은 1970년대 말경이었다고 하는데, 모닥불을 피워 연기를 피웠다고 한다.”라고 적고 있다.

◆마을 운동장이었던 저수지
신동마을 왼쪽으로는 크지 않은 저수지가 하나 있다. 신동소류지라고 불리는 이 저수지는 예전 마을에 젊은이들이 많았던 시절, 겨울철 농한기에 사용하는 운동장이었다.
이 마을 김길영(82)씨는 먼저 이 저수지를 만들었던 당시를 회상했다.
“내가 열일곱 살 때였는데,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동원돼서 저수지를 만들었지. 그때 등짐으로 흙을 한 짐 지고 오면 얼마씩 주었던 게 기억나.”
한정용(60)씨는 어렸을 적 마을 젊은이들이 겨울마다 저수지에서 운동경기를 했던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 마을 도랑을 사이에 두고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편을 나눠서 축구도 하고, 배구도 하고 그랬어. 그때만 해도 40가구가 넘었으니까 젊은 사람들이 많았지.”
당시 신동소류지는 한 번 얼면 40~50cm 두께로 꽁꽁 얼었다고 한다. 그래서 건장한 청년 수십명이 뛰어도 끄떡없는 훌륭한 운동장 구실을 했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의 영향인지 최근에는 그렇게 얼지 않는다고 한다.

◆‘으뜸마을’을 향해
주민 간에 화합이 잘 되는 마을이었던 만큼 이 마을은 으뜸마을가꾸기 대상 마을로 선정됐다.
으뜸마을가꾸기 사업을 통해 이 마을은 도농교류 확대와 주민소득 증대 등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다.
특히 밭 작물이 많은 이 마을에서는 된장과 고추장, 두부 등을 생산할 수 있는 가공공장을 건립해 현재 일부 생산설비를 가동하고 있다. 그리고 이 마을의 특화작물 가운데 고사리의 경우는 수많은 중국산이 대형 마트와 시장을 점령한 상황에서도 직거래를 통해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라고 한다.
또 이 마을에서 재배면적이 비교적 많은 인삼의 경우도 시장에서 품질이 좋은 것으로 많이 알려졌다.
마을 주민들은 지속적인 사업 진행으로 농촌체험과 지속적인 특화작물 개발, 친환경농업 육성 등을 통해 으뜸마을가꾸기 대상 마을로서 지속적인 발전을 노리고 있다.

▲ 마을회관에 모인 사람들이 이웃에서 가져온 메밀묵 맛에 푹 빠졌다. 좋은 음식은 나눠야 더 맛있는 법. 주민들은 그렇게 함께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멧돼지 좀 잡아줘요
점심시간이 조금 못 돼서 마을회관에 들어가니 주민 몇 명이 둘러앉아 메밀묵에 약주 한 잔을 곁들이고 있었다. 낯선 사람의 방문에 얼른 젓가락을 가져와 맛을 보라고 성화다.
“이웃집에서 메밀묵을 만들었는데, 맛을 보라고 이렇게 가져왔지 뭐야. 이런 메밀묵은 어디 가서 구경도 못할 거야.”
그렇게 메밀묵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주민들이 멧돼지 피해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 고구마 농사를 지었는데, 하나도 캐지 못했어.”
김무웅(68)씨가 화가 난다는 듯이 말을 시작했다. 땀 흘려 일군 고구마밭 300평이 멧돼지 습격으로 쑥대밭이 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멧돼지 피해를 막기 위해 튼튼한 울타리를 쳤지만, 힘 좋은 멧돼지는 불도저처럼 밭을 망쳐놨다. 보통 멧돼지는 가족들이 함께 떼 지어 다니기 때문에 그만큼 피해가 크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한 주민은 “멧돼지가 아직 인삼은 건드리지 않는데, 인삼을 한 번 맛보면 인삼밭도 작살 날 것”이라며 걱정하기도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주민도 멧돼지 때문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며 군이 ‘대책’을 세워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연보호도 좋지만, 당장 농민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줘야 할 게 아닙니까? 선거 때만 되면 무엇이든 다 해줄 것처럼 굴다가, 선거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목에 힘이나 주고 말이야.”
멧돼지 피해 이야기는 어느새 현재 농촌문제로 주제가 확장됐다. 그만큼 우리 농민들이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함께 만들어 가는 우리 마을”
이길우 으뜸마을추진위원장

으뜸마을가꾸기 대상 마을로 선정된 이후 신동마을의 가장 큰 변화는 주민들의 의식전환이었다.
지금껏 늘 해오던 대로 농사짓고, 계통 출하를 해오던 방식에서 탈피해 도농교류와 직거래 등으로 시각이 넓어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주민들이 의지를 갖고 힘을 모은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이길우(53) 으뜸마을추진위원장은 자신을 ‘막내’라고 소개했다. 그만큼 마을에 노인인구가 많다는 의미이지만, 바꾸어 생각하면 마을 어른들이 이길우 위원장의 든든한 후원자가 돼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으뜸마을가꾸기 대상 마을로 선정된 이후 눈에 띄게 큰 변화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리고 주민들의 협동심이 매우 강하지만, 노인이 많은 만큼 일 추진이 더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60대 주민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변화를 이뤄가고 있고, 마을 주민들이 조금씩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식을 전환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입니다.”
사실 으뜸마을가꾸기 대상 마을로 선정되고 나서 고사리 직거래가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농산물 가공시설이 만들어진 것은 어찌 보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마을 주민들의 꿈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앞으로 사업이 농촌체험 같은 관광 분야에도 많은 투자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전에 마을 주민들의 합의가 전제돼야 할 겁니다. 일단 먼저 추진해야 할 것은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도랑을 정비해 외지 사람들이 와서 보기에 좋도록 해야겠죠.”
이 마을은 진안읍에서 멀지 않은 거리이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끝 마을이기에 환경이 그만큼 깨끗하면서도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그래서 농촌체험마을로서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고사리나 고추 직거래 등으로 주민들 의식이 많이 변한만큼, 그리고 단합이 잘 되는 마을의 특성상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점필정 pjjeom@j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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