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쉬고 있을 때, 나는 일한다”

▲ 신의범
신 의 범 씨
백운면 대현리 내봉마을 출신
한국 M&A 캐피탈 주식회사 대표
여의도순복음교회 실업인선교회 총무 역임
백운초등학교 제32회 동창회장
재경백운면향우회장
재경진안군민회 이사

가끔씩 인간은 우연히 주는 기회를 통하여 자신의 인생이 바뀌는 순간을 지나치면서 이것이 운명이겠거니 그렇게 치부하면서 살아간다.
신의범씨. 그가 신탁은행 노량진 지점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20대 후반기에 만났었던 서영희씨는 그렇게 우연한 인생의 운명을 따라서 그에게 다가온 여인이었다. 점심시간 잠깐 비운 동료직원에게 걸려온 전화를 통하여 인연으로 다가온 이 여인은 지금 그의 아내가 되어 1남2녀의 어머니로 신의범씨에겐 이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반려자로서 그의 곁을 지킨다. 한평생 수없이 많은 인생의 험로에서 우여곡절을 곡예처럼 살아온 신의범씨 그에겐 아내의 만남과 아내와의 한평생은 정말 운명처럼 하늘이 점지해준 하늘의 뜻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첫사랑 만나던 그날 / 얼굴을 붉히면서 철없이 / 매달리며 춤추던 사랑의 시절 / 곱게 핀 장미처럼 우리사랑 꽃 필 때 / 아, 아 잃어버린 첫사랑 생각이 납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그들은 그렇게 만난다. 그리고 1980년 5월 22일에 그들은 만인의 축복 속에 결혼한다. IMF는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어려운 시절이었다. 신의범씨에게도 그것은 예외일 수가 없었다.
그가 경영하던 사업장들이 무너져 나가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 그의 주위에도 격랑이 닥쳐온다. 빚쟁이들에게 쫓김을 당하고 그가 살고 있었던 서초동의 집에까지 그 물결은 휩쓸어 왔다. 평생을 일구어 온 집이 경매로 날아가고 그의 운명이어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처럼 초라한 그런 시절이었다. 집안은 그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아내와의 별거하는 여덟 달은 그에겐 연옥을 헤매는 그러한 세월이었다.
그때 보여준 아내의 용기와 행동을 그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처음 우을증세거니 또는 빚으로 몰려오는 사람들의 폭거에 자지러지던 그의 아내 서영희씨는 분연히 그 사항을 극복하고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억척을 보이더니 어려운 시절 어려운 집안의 견인차가 되어 주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지족하기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신의범씨는 오늘의 자신의 위치가 있기까지 아내 서영희(벌교출신, 49)여사의 그 공을 오래 기억할 것이란다.
그는 1949년 10월. 2남3녀 중 넷째로 태어난다. 우리가 겪어 온 50년대의 농촌실정이야 뻔하게 그렇게 어려운 시절이었다.
백운초등학교와 마령중학교 그리고 전주상고를 마칠 수 있었던 것도 당시로는 집안의 형편에 여유가 있었다고 그는 기억한다. 그래도 그는 고등학교시절 전주에서 가정교사나 신문배달등의 그가 할 수 있었던 모든 아르바이트에 참여하면서 장학생으로 학교를 마친다.
70년대 은행시험에서 낙방하는 불운 앞에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먼저 병역을 마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자신의 판단이 옳았고 적중하였음은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당시 자신의 결정이 얼마나 슬기로웠는지 그렇게 인생의 지표가 되어 있다.
제대하여 대한항공, 한전, 신탁은행 등에 합격하고 은행 행원의 길에 입문, 7년여 간의 행원생활로 오늘의 정신적, 경제적 지식의 터전을 잡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은행의 그 업무에 적성이 맞지 않는다는 교만된 마음의 유혹에 빠진다. 주위의 모두가 부러워하는 행원생활을 청산한다.
특수화장품 판매 회사를 백화점에서 직영했었던 시절도 있었고 교육보험의 창설 지부장으로의 세월도 비켜간다. 권투체육관의 경영과 8군 소속 장교들을 상대하여 외국어 학원을 운영할 때에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무한한 감동의 도취 속에서 살아간다.
숨을 고르고 태산개발(건축자재제조 판매시공)의 창업에 평사원으로 참여하여 구조조정과 전 간부의 영업사원화, 시기적으로 맞는 혁신에 참여하여 남이 쉬고 있을 적 나는 일한다는 신념을 갖고 밤낮없이 일하며 미래를 꿈꾸어 갔다. 그리고 전문건설업체 한국 리스콘(주)을 창업한다.
생산과 시공에 참여하면서 5년을 보낸다. 어쩌면 고지가 저기인 것 같다고 생각을 마쳤을 때 그는 삼풍로양빌라 직영 주택사업에 참여한다. 그리고 좌절한다. 때마침 불어 닥친 IMF는 그에게 더 큰 한파만 안겨주었다. 그는 창업하려는 그의 주위에 이렇게 충고한다.
“연구하라, 알고 나서 창업하라. 적정한 자기 자본을 현실화하라. 거듭 강조한다. 과도한 부채를 즐겨하지 말라. 실패의 길에서도 의기소침하지 마라.”
엠엔 에이(M&A)의 학문적 원론은 이렇다.
기업이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일종의 경영전략으로 대상기업들이 합쳐 단일회사가 되는 합병(Merger)과 경영권 획득을 목적으로 주식을 취득하는 매수(Acqusion)를 합한 개념이다.
우리의 고향사람 신의범씨. 그가 하고 있는 기업진단 컨설팅이 이제는 익숙한 고향사람의 터전을 마련하고 그가 그렇게 세월을 가르면서 살아왔듯이 어쩌면 지금껏 잊고 살아왔던 고향진단 컨설팅으로 발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H. P 011-662-2323)
/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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