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춘 식 금양교회 담임목사

책 한 권 살 엄두가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이 있었다. 중 1년 때 학교 도서관에서 사서(司書)누님에게 앙드레 지이드 “좁은 문”을 대출하니, 하시는 말씀이 “애구, 이 책을 읽으려구!” 하였다. 이는 책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내심 불쾌한 마음이 들어 열심히 읽어보았지만, 누님의 말씀대로 별다른 감동이 없었다. 고 1년 때에 다시 읽는 기회가 있었는데 벌레 우는 한 여름 밤을 지새우며 단숨에 읽었다. 그 한동안 그 소설 주인공이 된 착각 속에 살았다. 어리석음 때문에 실패와 좌절을 많이 겪으면서도, 조금이라도 사람구실하면서 살게 된 것도 기회 있을 때마다 책을 읽은 결과였다. 얼마 전,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젝션 TV를 개발한 회사가 땅의 크기에서 밀린다면 생각의 크기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이미지 광고를 본적이 있었다. 우리가 태어난 곳은 땅 크기로 자랑할 수 없는 나라이다. 그러나 우리보다 작은 땅을 가진 이스라엘보다 생각만큼은 더 크고 더 깊고 더 통찰력 있는 나라가 되고 싶은 소원이 있다. 이 소망을 이루는 길은 여러 가지 길이 있겠지만,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믿는다. 진안에는 공공도서관이 있다. 15년전이나 지금이나 디지털 자료실 이외에는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그나마 디지털 자료실에는 상주하는 직원이 없기 때문에 불편하기 짝이 없다. 작년 한 해 동안 서울지역은 도서 구입비가 23억에 이르는데 진안지역은 작년보다 3천만원이 줄어 2천만원으로 도서를 구입해야 할 형편이다. 이는 시골에서 빚을 얻어서라도 자식들을 서울이나 도시로 보내려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큰 보탬이 된다. 진안 공공도서관이 작년 한 해 동안 책을 대출한 이용자 수가 9,613명이니, 만 명을 육박한다. 진안 인구가 3만이 못 미치니 적어도 1/3이상이 진안공공도서관을 이용했다는 수치가 나온다. 진안공공도서관은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 속에 있다. 아동 열람석 미비, 건물 노후화, 인원 부족은 제쳐 두고라도 아직까지 여자 전용 화장실이 없다는 것은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세 명 중에 한 명 꼴로 도서관을 이용한 진안 군민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빌 게이츠가 컴퓨터와 자선 사업가의 황제로 인정받고, 세계 최고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마을 도서관 덕분이라고 했다. 이는 책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주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빌 게이츠의 고백은 지금은 수몰로 사라졌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 뜻있는 분들과 마을 도서관을 지었던 필자에게 위로가 되는 말이다. 댐 주변을 돌아보면, 도로, 체련공원, 휴게실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시설을 개발하고 있다. 그 재원은 수자원 공사 용담댐 발전 기금에서 출연된 것이라 한다. 댐으로 인하여 피해를 본 지역 주민을 위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을 간과하고 개발되어진 시설물이 있다면 훗날 부정적인 역사의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넓고 깊은 생각과 통찰력을 가지고 연구할 수 있는 도서관 시설도 육성되어야 한다. 물이 가득 채워진 아름다운 용담댐만 자랑할 것이 아니라, 댐 주변발전 기금을 지원하여 지성과 감성과 영혼을 마음껏 채워 줄 수 있는 공공도서관도 자랑할 수 있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해와 달과 별을 볼 수 없는 서울에 가지 않아도, 자연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진안에서 문화 경제 사회를 꽃 피울 수 있는 큰 바위 얼굴, 아름다운 사람들이 배출되기를 소원한다. 진안을 사랑하고 아름답게 발전시키려는 관계자 여러분들과 진안에서 자녀를 키우는 모든 분들에게 깊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빌 게이츠가 감사했던 고향 마을 도서관처럼, 우리도 이러한 인물을 배출할 수 있는 진안도서관을 가질 수 있기를 2004년 전 이땅에 오신 주님께 날마다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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