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영신 서울타임스 회장
가끔씩 그는 우두거니 앉아서 도배 안된 벽쪽을 지켜 본다. 면벽(面壁)이 그에게 주는 의미는 허공에 떠 있었던 우주가 주는 그것 이였다. 광활한 공간에 펼쳐 저 있는 장관은 그의 텅 빈 머리 속의 사고(思考)에 다름 아니였다.  그 것은 무(無)였고 허(虛)였다.  먼 남쪽, 어릴 적, 그것도 두 살 적 떠나간 그 고향의 흔적을 뒤척일 때마다 그의 가슴속이 그랬던 기억을 그는 잊지 못한다.

그것은 남쪽의 어느 항구도시 바닷가가 그랬다. 갈매기가 끼룩 끼룩 몰려들던 항구의 해변 가에서 누나의 등에 업혀 산책 같은 것을 한 것도 같았다. 아니면 거기에는 정확하게 3928년 전, 어느 천체의 파편처럼 먼 공간을 날아서 온 본토의 그것 같았던 기억도 같았다. 그랬다. 그는 떠도는 그의 선친을 따라서 멀고 먼, 정말로 먼 여정을 온 것이다. 그것은 긴긴 인생의 여정이고, 참으로 먼 방랑인 것 이였다.

 

해돋이 하는 새벽 바닷가, 불끈 솟아오르는 붉은 그 힘을 보면서 말없이 떠나간 그 여인은 그들의 부모들이 술 마시다가 농담처럼 약속한 한 회갑(60년)전의 참 기구한 한 소녀의 영혼이다. 그들이 그 100년의 의미를 알았기나 하였을가 마는 그들은 운명처럼 그렇게 같은 장소 같은 공간의 만나고 헤어짐의 반복을 잊은 언어의 반복으로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였다. 그것은 연민도 아니였다. 그냥 그것은 그들의 운명이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세월에 묻혀갔다.

다섯 살 적. 병암역 새벽에 그는 소달구지를 타고 입성하는 기사처럼 그렇게 그의 부모를 따라서 고향에 돌아온다. 아름다운 전원의 풍경처럼 그리고 숨어 있는 밀어의 전설처럼 그렇게 흘렀으면 얼마나 좋았을가.  신(神)은 그들의 그 그림을 그렇게 허락하지는 않았다. 거기에는 채색하다 남겨 둔 도화지의 저주처럼 실 날 같은 거미줄의 그것처럼 그렇게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얼룩져 있었다. 기억은 함성처럼 탑을 세우자고 어느 거리에서 도망치는 패배자의 잔영처럼 그늘을 만들어 놓은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생은 참 아름다운 탄생이라고, 삶은 참으로 찬미하고 싶은 음악 같은 것이라고, 추억은 멍든 볼태기의 그것처럼 어리둥절한 생김새라고, 그는 인생의 대오에서 낙오 할 새라 허둥지둥 그렇게 뛰고 또 뛰어 여기까지 달려 온 것이다. 스칠 때, 그들은 바람처럼 자신들의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하면서 서로 가는 길을 참 멀게도 함께 왔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헤어지고 흩어지면서 물결처럼 함께 흘러 온 세월의 바람 이였다.

‘내 인생을 물어내라. 내 잃어버린 세월을 찾아내라. 이 싸가지야, 내 인생을 변상하라.’ 아마도 그 함성은 무던이도 허퉁한 바람의 그것인 게다. 아마도 그것은 남쪽의 그 해변에서 찾지 못하고 흩어져 간 갈매기의 통곡인 게다.

그의 선친도 소녀의 애비도 지금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들은 애당초부터 없었던 「무(無)」 그것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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