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하면 두려움이 없다”

▲ 안봉은
안 봉 은 씨
마령면평지리송내출신
FILL KOREA 대표
마령초등학교총동문회 감사
재경마령면향우회 회장
재경진안군민회 이사

오늘도 우리의 안봉은씨는 아차산에 높이 올라 한강을 내려다본다. 멀리 한강의 굽 돌이에 희미한 여명의 빛이 가득하고 고구려의 그 함성이 힘차게 들려온다.
요즘 그는 전과 달리 중국에 유학하여 있는 쌍둥이 아이들의 생각이 문득 문득 생각 키워 올 적마다 울적한 생각을 지우려고 아차산을 혼자서 오르는 버릇이 생겼다. 벌써 늙어가는 것일가. 멋 적은 생각을 지우려고 애써 눈길을 돌린다.
문득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 생각에 눈시울이 젖어진다. 고향에는 70을 넘기신 양친께서 수확도 나지 않는 농사 일로 고향집을 지키고 계신다.
안봉은씨, 그는 아버지 안창규씨(70세)와 어머니 박태영씨(72세)의 3남3녀 중 3남으로 1953년 10월 늦 가을에 태어난다.

1953년은 민족상쟁이 휴전기로 접어들었으나 아직도 후방의 전시상황은 곳곳에 빨치산들의 준동과 전방 휴전선의 대치상태로 아직까지 국내 정정이 불안정한 그런 시기였다.
그 속에서도 중농의 그의 가정사정은 그가 기억에 남아 있을 만큼의 끼니 걱정을 한다거나 그렇게 옹색한 그런 사정은 아니 였으므로 그의 유년 시절은 비교적 순탄한 시절 이였던 듯 하다. 그는 고향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전주에 유학하여 전주상고를 졸업한다.
그리고 고향에 머물러 몇 년간의 모교에서의 행정실 일반 서무직을 담당하는 일방, 야간의 방위병(지역기동타격대) 근무를 마치면서 자신과 농촌과의 불가분의 관계와 자신은 어쩌면 헤어 날 수 없는 농민의 아들임을 깨닫기 시작하는 철 든 인생의 아이러니를 느꼈단다.
그것은 그의 숨어있는 인간의 회복 이였으나 현실적인 고뇌의 흔적 이였음을 그는 애써 숨기지 않는다고 그랬다.

그는 고향을 뜬다. 거짓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꼭 농민의 아들이 되어 고향에 다시 돌아오리라는 마음의 다짐을 안고서였다. 엘칸토에 취업하고 10년은 그에겐 청춘이, 청운이, 그리고 그것의 만끽함과 만족함이 항상 함께 했었던 그런 시절 이였다. 꺄슈 에서의 8년은 더욱 그런 것 이였다. 승승장구 그의 뜻은 이루어 졌고, 그의 앞길에는 거칠 것이 없는 듯 하였다.
그의 연애와 결혼의 재미있었던 그 이야기만 잠시 하면서넘어 가자. 혼기가 가까워지자 부모님들의 맞선성화가 극성에 달하자 그는 사귀어 애인 있음을 고향에 거짓 아뢰기에 이른다.
드디어 부모님과 애인의 대면의 날이 다가온다. 그는 직장의 친구의 친구였던 이홍복씨(50세;당시29세)에게 대리애인이 되어 줄 것을 애걸하고 승낙을 얻는다. 그리고 그후 그들은 연애인지 연민인지 정말로 애매모호한 교제를 시작한다. 5월 아까시아 꽃잎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푸라타나스 향기가 콧속을 유혹하는 그런 계절, 데이트 약속장소에 여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남자는 분개하여 따진다. 여자의 이야기인즉 그의 고향이 청주근교의 농촌인데, 그 날 모내기가 있으니 하향하여 집일을 도우라는 집안의 명에 따랐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대답한다. 아, 하, 남자가 할 말을 잊는다. 그리고 청혼하여 결혼하였더란다. 그렇게 안봉은씨는 쌍둥이 아빠가 되었고 휠.코리아의 사장도 되었다.
1997년은 이 나라의 경제가 쑥대밭이 되었던 그런 해였다. 안봉은씨가 6억8천만원이 이토록 무서운 금액인 것을 알았을때 이미 그는 알거지가 되어 있었고, 주위의 무거운 신음소리들로 천지가 뒤죽박죽 되어있었다.
방황과 회한과 한숨으로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인내와 끈기 앞에 그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근면이라거나 신용이라거나 처세라거나 이런 용어들이 교과서에 나오는 학문적인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가 몸과 마음으로 실천 해 보인 그런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다.

열심히 일하면 두려움이 없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 어렵고 힘들어도 바르게 살자. 이렇게 국민학교 시절, 수신 책에서나 읽었음직한 것들을 자신의 실생활에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살아간다.
그는 순흥안씨 통례공파(시조;安子美,고려신종때신호위상장군)29대손이다. 순흥안씨의 도시조(都始祖)는 안원(安瑗)으로서 그는 당나라 사람 이였다가 신라에 귀화한 사람이다
안봉은씨는 요즘 중국 쪽의 상담에 열심이다. 그의 쌍둥이 아들 모두를 중국에 유학시켜 중국을 배우게 한다. 그는 요즘 당태종 이세민의 일대기나 다름없다는 정관정요(貞觀政要)10권을 몇 독 할 만큼 열심히 읽어 낸단다.

역사를 아는 자는 무너지는 담장아래 결코 서지 않는다.
우리의 고향사람 안봉은씨, 농민의 아들 되어 고향에 서고 싶어 한다. 고향생각 새록새록 코스모스를 좋아하고, 고향같이 포근해서 코스모스를 좋아한다. 언제던가 그가 찾아 갈 그 고향 길에, 우리 모두 코스모스 피어있는 그 고향 길에 함께달려 가 보자. (H.P; 011-733-8801)

/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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