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애 도시…행정, 민간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론 불가능

〔글 싣는 순서〕

·1회 : 모두가 편안한 진주시 '무장애도시'
☞2회 : 시작도 하지 못한 남해군의 '베리어프리'
·3회 : 휠체어가 다닐 수 없는 진안군의 현재
·4회 : 장애인이 불편 없이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사회
      (오키나와 베리어프리투어센터)
·5회 : 베리어프리는 의무이다(오키나와 및 일본행정의 정책)
·6회 : 베리어프리 진안을 실현하기 위한 현황과 비전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게재되었습니다

베리어프리(Barrier Free)란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무는 운동을 말한다. 건축에서는 크게 휠체어를 탄 고령자나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다름없는 이동권을 확보하자는 뜻에서 공공시설이나 주택, 숙소 등의 건축물을 지을 때 문턱을 없애거나 보조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진안의 공공시설과 상가, 인도 등은 비장애인 위주로 설치된 것이 대부분이다. 턱이나 계단은 높고 울퉁불퉁해 휠체어나 몸이 불편한 장애인은 이용할 수 없다. 이러한 현실과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인식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
진안신문은 이번 기획취재를 통해 장애인이 이용할 수 없는 장소나 시설을 찾아 촬영하고, 사진 전시회 및 발표회를 통해 진안군 장애인들의 불편함을 함께 생각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그리고 국내와 국외 베리어프리 조례를 제정한 지역을 찾아 소개하고, 추후 우리지역에서 베리어프리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간담회도 마련한다. /편집자 주

 

▲ 남해군 '무장애 도시'를 취재한 남해시대 김태웅 기자.

지난 2013년 5월,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남해군 정현태 군수는 "모두가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무장애 도시'로 만들겠다"라고 선포했다.
이는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알려졌고 장애인을 비롯한 군민들은 남해군이 편리한 생활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 많은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정현태 군수의 선포는 아무런 계획 없이 마음만 앞선 무장애 도시 선포였다. 선포는 했지만 정 군수는 물론, 실무를 맡아 추진해야할 담당부서에서도 무장애 도시에 대한 로드맵조차 제시하지 못한 것.
이 점에 대해서는 정현태 남해군수도 인정했다.

2013년 12월 남해터미널 뷔페에서 열린 (사)경남지체장애인협회 남해군지회 송년의 밤 행사에서 정 군수는 "먼저 여러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한다. 지난 5월 남해군이 무장애도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뜻으로 선포를 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준비는 충분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내년부터는 무장애 도시 실현을 위한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겠다"라는 말도 함께 전했다.

2013년과 달리, 2014년의 남해군은 무장애 도시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 시행을 준비했다.
당시 남해군의 '무장애 도시' 정책을 취재한 남해시대 김태웅 기자는 "2014년 남해군 관계자는 '예산과 정책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해 나갈 것이다. 또 진주 등 선진지의 무장애 도시 관련 조례도 검토 중에 있어 2014년 안으로 남해의 실정에 맞는 조례를 제정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라며 "2014년 연말까지는 베리어 프리 시범 구역을 조성하고 민간 다중이용시설에도 편의시설 설치를 권장해 나갈 계획까지도 가지고 있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 후로도 남해군의 '무장애 도시'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다.

◆시민단체와 언론만 목소리 높여
무장애 도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며, 행정이나 민간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남해군의 경우에는 행정의 노력과 의지가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남해시대 김태웅 기자는 "남해군의 베리어 프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며 "시범거리를 만들자는 계획도 흐지부지 사라졌고, 조례제정 조차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김태웅 기자는 "시민단체와 지역 언론이 무장애 도시에 대한 필요성을 주장해 주민들로부터 인식이 확산됐고, 해 보자는 분위기도 조성됐다"라며 "하지만 자치단체장이 바뀌고, 또 담당하던 공무원들도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남해군의 '무장애 도시' 계획은 사라지고 말았다"라고 밝혔다.

◆제안도 시민단체에서부터
진주시에서 시작된 '무장애 도시'. 지역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열악한 상황에서 '남해군도 진주시처럼 무장애 도시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하고 고민한 것도 시민단체가 먼저다.
2013년 7월, 남해군지역사회복지협의체에서 시행한 '2013 사회복지종사자 해외연수'를 위해 지역의 장애인단체와 건축사무소 관계자, 그리고 오랫동안 장애인편의시설을 연구해 온 건국대 강병근 교수까지, 7명의 관계자들이 독일을 탐방했다.

일주일동안 란츠훗, 로텐부르크, 괴핑엔, 뉘른베르크, 베를린 등의 지역을 견학하며 독일의 무장애 생활환경을 견학한 이들은 연수보고서를 통해 남해읍 주요 거점에 대한 무장애 환경 시범구역을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2013년 해외연수를 함께 한 남해장애인종합복지관 송대성 관장(현재 가온누리 대표)은 "독일의 사례는 문화적 충격이었다"라며 "수백년 된 건물에도 어김없이 경사로가 설치돼 있었고, 바닥과 건물의 차이가 1m 이상인 곳도 바닥을 들어 올릴 정도였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심지어 건물 밖과 안의 높이가 차이가 있을 경우에는 경사로를 완만하게 하기 위해 집안 중간까지 공간을 사용하도록 해 놓은 곳도 있었다"라며 "독일연수를 통해 보고 온 것만 보고하지 말고, 남해군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제안을 해 보자는 의견을 나눴다"라고 밝혔다.

 

▲ 남해군에 '무장애 도시'정책을 제안한 가온누리 송대성 대표.

◆남해읍에 무장애환경 시범구역 구축 제안
연수팀이 연수보고서를 통해 제안한 것은 남해읍 주요 거점에 대한 무장애환경 시범구역 구축이다. 이를 위해 농협중앙회 앞에서부터 군청입구 삼거리 주도로 구간을 시범 지역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지역에 무장애환경을 구축해 이동편의 제공 및 상가활성화 등의 효과를 유도하고 주차면을 줄여 보행안전존 구축, '험프식 횡단보도'를 설치해 이동편의를 제공하자는 제안이다.

 

두 번째로는 읍사거리에서 종합사회복지관으로 이어지는 간선도로 구간에 무장애 환경 시범 및 체험구역을 설치하자는 안이다.
연수팀은 첫 번째 안은 예산이 많이 수반돼 주민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체험구역을 설치해 주민들이 이용하게 하고 필요시 체험활동을 연계해 무장애환경 구축에 대한 주위를 환기시키자고 제안했다.

세 번째로는 지구단위 개발 시 무장애 환경 구축 설계 반영이다.
당시 연수팀은 보고서를 통해 "기존 도시를 무장애 환경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별도 비용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관련 건축주 등 주민과의 의견조율에 많은 에너지가 소요된다. 그러나 향후 남해군에서 지구단위 개발을 할 경우 설계단계에서부터 무장애 환경 구축 설계를 하게 되면 큰 추가비용이 없어도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다중이용시설이 포함된 지구단위 개발 시 무장애 환경구축 설계를 필수적인 요소로 설정할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한 조례설치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빛 못 본 시민단체의 제안
하지만 시민단체의 이러한 제안은 결국 빛을 보지 못했다.
가온누리 송대성 대표는 "시민단체의 제안을 군에서 받아들였지만 시행에 있어서는 점차 후순위로 밀려났다"라며 "후 순위로 밀려난 '무장애 도시' 계획은 결국 자치단체장이 바뀌면서 마무리되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송 대표는 "남해군에서 당시 '무장애 도시'를 추진했었으면 경남지역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기회였는데 결국 빛을 못 보게 됐다"라며 "하지만 언젠가 빛을 볼 수 있게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시민단체가 바라본 남해군 무장애 도시 실패의 원인은 뭘까?

남해시대 김태웅 기자는 공무원의 의지를 꼽았다.
김태웅 기자는 "베리어 프리는 단순히 장애인뿐 아니라 아이들에서부터 노인들까지 모두가 편한 삶을 꿈꾸는 것이지만 당시 군 관계자들은 이런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라며 "지역에 무장애 도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관심은 물론 공무원들의 의지도 중요한 요소일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의 역할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요소다.
가온누리 송대성 대표는 "당시 시민단체에서는 당장 무엇이라도 할 것 같은 의욕을 보였지만 사업추진이 지연되면서 그 열정 또한 식어버렸다"라며 "주민들의 열정이 식은 것 또한 남해군 무장애 도시가 실패한 절반의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송 대표는 또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의식개혁도 중요하지만 행정과의 관계 또한 중요한 요소일 것"이라며 "행정가들은 좀 더 넓은 시각을 갖고 무엇이 먼저인지, 주민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작도 하지 못한 '무장애 도시 남해'.
'무장애 도시 진안'을 꿈꾼다면 반드시 새겨야 할 잘못된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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