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 아래 옛 흔적만 아련히
파란 하늘 아래 옛 흔적만 아련히
  • 점필정 기자
  • 승인 2007.02.22 2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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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면 신암리(1) 고림하, 고을림, 고중대

우리 고장에는 모두 11개 읍·면과 77개의 법정리, 276개의 행정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행정리에 포함되지 않은 자연마을, 용담댐 건설로 물에 잠긴 마을, 사람이 떠난 마을까지 더하면 훨씬 많은 마을이 우리 고장에 있습니다. 이번 주부터 본지에서는 우리 고장의 자연마을을 중심으로 각 마을의 기록을 살펴보고, 현재 마을과 주민들의 모습을 세세하게 조명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것은 우리 고장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과 변화를 통해 지역의 미래를 함께 생각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사라져가는 자연마을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도 한 가지 이유입니다. 앞으로 본지는 우리 고장의 각 자연마을 탐방을 통해 우리와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께 생생하게 전달하겠습니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 임하마을 옆에 있는 신암저수지. 파란 하늘이 비친 저수지 역시 푸른 빛을 품고 있었다.
종종걸음으로 느릿느릿 오는 것 같던 봄이 잰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티 없이 파란 하늘과 따스한 햇볕에 기분까지 상쾌했던 20일 오후. 볕이 잘 드는 산과 들에는 때 이른 푸른 빛이 도는 게 벌써 새싹이 돋은 모양이다.
‘우리 마을 이야기’라는 새 연재 첫 취재는, 우리 고장 남쪽 경계 마을 가운데 장수군과 접해 있는 백운면 신암리의 자연마을이다. ‘처음’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마을을 향해 출발했다.
국도 30호선을 따라 백운면 소재지를 지나 얼마 가지 않아 왼쪽으로 난 742호 지방도로 접어든다. 도로 양옆에 펼쳐진 논밭에는 포근한 날씨에 맞춰 농민들이 나와 농사일에 땀을 흘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왼쪽으로 ‘대전 마을’이라는 마을 표지석이 눈에 띈다. 여기부터 신암리다. 그리고 조금만 더 가면 ‘유동 마을’, ‘임하’, ‘원신암’ 등 신암리 자연마을이 차례로 나타난다.
특히 임하(반절어름) 마을에 들어서기 전 왼쪽 742호 지방도 갈림길에는 섬진강 발원지인 ‘데미샘’이 있음을 알리는 커다란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고중대. 낡고 허물어진 집 세 채가 덩그러니 서 있다.
◆사라진 예드림, 고을림 마을
일단 데미샘의 방향이 원신암 마을 쪽에 있다는 것만 확인하고, 우선은 임하 마을을 거쳐 신암 저수지를 따라 나 있는 도로를 따라 나아갔다.
그리고 742호 지방도를 따라 들어오면서 몇 차례 봤던 ‘백운산장 휴업’이라는 손으로 쓴 안내판이 또 보인다.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나쳐 왔는데, 지금 향하는 ‘고림하’ 방향 도로에도 걸려 있는 것을 보니 평소에 손님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신암 저수지를 뒤로하고 산을 향해 나 있는 좁은 콘크리트 포장 길을 따라 올라갔다. 골짜기로 난 길이어서 그런지, 포근한 날씨에도 녹지 않고 쌓인 눈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갔는데, 생각했던 고림하는 찾을 수 없었다. 신암리 일대가 나온 지도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고림하의 위치를 찾아봤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집터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고림하는 신암 저수지가 생기면서 물에 잠겼다고 한다.
진안군 향토문화 백과사전에는 고림하의 옛 이름인 예드림에 대해 ‘백운면 신암리 반절어름 남서쪽에 있던 마을. 신암 저수지로 수몰되었다.’라고 간략하게 적고 있다.
일단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갔다. 그리고 콘크리트 포장이 끝날 때쯤 백운면 소재지 근처부터 봐왔던 ‘백운산장’이 길 오른쪽에 있었다.

혹시 누가 있을까 싶어 백운산장으로 가 봤다. 아래쪽 식당은 최근까지 영업을 해왔는지 비교적 정리가 잘 돼 있었다. 그리고 식당을 지나쳐 맨 위에 있는 주택으로 향했다. 누군가 있을 거란 기대에 사람을 찾아봤지만, 이곳 역시 비어있는 듯 인기척이 없었다. 다만, 이 주택 옆에 있는 건물 처마에 메주가 죽 매달려 있는 것으로 봐서는 누군가 거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당시로서는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이곳 역시 예전에는 고을림이라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을(乙)이라는 지명을 봐서는 새가 많은 숲이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742호 지방도를 따라 고중대 쪽으로 향했다.

▲ 데미샘까지 이어지는 생태 탐방로가 시작되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정자
◆장수로 통하는 서구이재도로
742호 지방도를 따라 원신암 마을 진입로 지나쳐 얼마 가지 않아 보기 좋은 건물이 보여 마당으로 들어가 봤다.
한쪽에 서 있는 안내판을 보니 ‘신암리 산촌종합개발사업안내도’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그 아래에는 신암리 일대 모습이 담긴 그림과 함께, 옆으로 사업내용이 간략하게 적혀있다. 내용을 살펴보니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진행된 이 사업은 신암리 일대에 14억 5천300만 원의 사업비를 들여 산촌관광센터와 마을회관, 장뇌재배단지 조성 등의 사업이 진행됐다는 설명이었다.

이 보기 좋은 건물은 바로 산촌관광센터로 조성된 것인데, 현재는 비수기라 그런지 비어 있었다.
한편, 사업 안내도 옆에는 ‘서구이재도로 개통 공로비’가 서 있었다. 뒤편으로 빼곡이 적힌 글은 742호 지방도 승격과 장수까지 개통되기까지 과정이 새겨 있었다.
공로비에 따르면 742호 지방도는 동창과 신암을 잇기 위해 1994년 군도로 건설됐는데, 1년이 지나 지방도로 승격됐다. 그리고 1999년 184억 원이라는 사업비를 들여 서구이재(서구리재)를 넘을 수 있는 도로를 닦기 시작해 6년만인 2004년 6월15일에 개통됐다.

얼핏 보아도 굽이굽이 돌며 팔공산 방향으로 올라가는 도로의 모습이 꽤 난공사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자동차에 올라 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올라가면서 보니 곳곳이 바위를 깎아 도로를 닦은 흔적이 역력하다. ‘신암’이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바위가 많은 곳이었기에 공사가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든다.
그렇게 산 중턱에 있는 ‘백운교’까지 올라가 신암리를 내려다보았다. 파란 하늘 아래 골짜기에 자리 잡은 마을 모습이 소박하게 보인다.

차를 돌려 다시 마을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에 고중대에 잠시 멈췄다. 이미 누가 와 있는지 자동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멀리 마을에 두 사람이 보이는데, 마을 사람 같지는 않았다. 가까이 가서 인사를 건네니 ‘혜인사’에 있는 스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몇 차례 이곳을 찾아와 살펴보고 있는데, 수행하기에 괜찮은 장소 같습니다. 마을에서도 적당히 떨어져 있고, 주변이 참 조용합니다. 또 햇빛이 잘 들고 앞이 시원하게 열려 있습니다. 절을 짓기에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이 스님은 옛날 신암리에 큰 사찰이 하나 있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지형이 수행하기에 좋기 때문이라는데, 이 스님은 고중대가 가장 자리가 좋아 나중에 이곳에 사찰을 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스님과 같이 온 사람이 떠나고 다시 고중대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빈집 세 채가 덩그러니 서 있는데, 한쪽으로 밭이 있었을 법한 자리는 누군가가 터를 닦아놓은 흔적이 보였다. 아마도 터가 좋아 누가 건물을 지으려고 자리를 마련해 놓은 게 아닐까?
그렇게 고중대를 살펴보고 이제는 원신암 마을 방향으로 갔다.

▲ 섬진강 발원지인 데미샘.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마음까지 깨끗하게 씻겨주는 것 같다.
◆섬진강이 시작되는 곳
일단 원신암 마을은 나중에 들르기로 하고, 먼저 데미샘을 보기 위해 자동차를 오기재(오계치) 방향으로 난 콘크리트 포장 도로로 몰았다. 마을 근처는 일부 포장이 안 된 곳도 있었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비교적 정비가 잘 돼 있다. 그리고 정자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는 곳이 나오는데, 데미샘까지 이어지는 생태탐방로가 시작되는 곳이다.
일단 자동차를 정자 옆에 세워두고 탐방로를 따라 걸어 올라갔다. 키 작은 대나무가 숲을 이루는 곳을 지나고, 졸졸 흐르는 계곡물을 따라 걸어가니 여름철에는 휴양객들이 꽤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20여 분을 걷고 나니, 오른쪽 계곡으로 길이 이어진다. 이정표가 데미샘 방향이라고 알려준다.
다시 흐르는 물소리에 발맞춰 가며 오르다 보니, 어느새 물소리가 잦아든다. 그리고 위쪽으로 긴 야외 의자가 보이고 안내판이 서 있는 게 보인다.
데미샘이다. 섬진강 발원지. 데미샘을 알리는 비석 옆에 흰 플라스틱 바가지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샘물을 마셔도 좋다는 뜻 같다. 얼른 바가지를 들어 물맛을 봤다.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갈증이 나기도 했지만, 차가운 샘물은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데미샘 옆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섬진강의 최장 발원지인 데미샘이 있는 봉우리를 천상데미라 하는데, 데미라는 말은 더미(봉우리)의 전라도 사투리로 섬진강에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라는 뜻으로 천상데미라 불리워져 왔으며, 이 샘이 천상데미에 있다 하여 데미샘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이곳 데미샘은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고, 수정같이 맑고 이가 시리도록 차가우며 다른 어떤 샘에서도 맛볼 수 없는 미묘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렇게 데미샘을 확인하고 내려오다 보니,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술병과 과자 봉지는 그렇다고 해도 어떤 사람은 불을 피워 밤을 구워먹기까지 한 모양이다. 가끔 담뱃갑도 눈에 띄었는데, 관광명소가 화마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이번에는 탐방로가 아닌 포장 길을 따라 정자까지 내려갔다. 정자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오후 4시가 조금 넘었다.
따뜻하게 비추던 해는 어느새 멀리 서쪽 산과 가까워지면서 노란빛을 내기 시작했다. 돌아가야 할 시간.
다음 주에는 신암리 사람들이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는 원신암과 반절어름을 찾아가 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담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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