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선진의 ‘올 겨울엔 도서관이나 파먹을까?’(13)

지음 : 프란츠 M 부케티츠
옮김 : 두행숙
출판 : 들녘

우리는 보도를 통하여 지구상의 많은 종들이 날마다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보고를 듣는다. 그 때마다 우리는 지극히 일시적이긴 하지만 관심을가지고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
우리 곁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사랑하는 친구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 그러나 그 슬픔도 어느덧 일상에 묻혀 흘러가고 아는 얼굴들이 어느 날 보이지 않게 되면 우리 앞에 놓인 소멸에 대해 소스라치게 놀란다 해도 곧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받아드려야 할 연속성의 일부분임을 깨달을 뿐이다.

옛날에 바나나는 부자집 아이들이나 먹을 수 있는 귀한 과일이었으나 오늘날에는 과일 중에서 그다지 비싸지 않은 서민적인 과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 바나나를 어느 날 먹을 수 없게 되었다 한다면 우리는 조금은 놀랄 것이다. 그러나 이내 ‘바나나 대신 다른 무엇’을 구하게 되고 그것을 구할 수있다면 바나나는 그저 우리의 추억속의 화석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물며 이럴진대 우리가 보도 듣도 못한 것들이 예전에 있었다 해도, 그리고 지금 사라지는 중이라 해도 그것이 우리를 얼마나 자극하고 놀라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역사를 공부하는 일은 역사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예견하고 역사의 충고를 받아드려 우리의 삶을 좀 더 성공적이고 영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돌이켜보건대 이 지구상에 영원한 것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진리는 ‘우리의 삶은 생성과 변화와 소멸의 과정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라는 것일 뿐이다.
거대한 공룡이 멸절된 것은 그들의 거대한 식욕과 번식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며 멸절의 과정에서 진화하지 못하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 일반적인 믿음이었다.
38억 년 전 최초의 생물출현이후 고생대부터 있어 온 생물종의 5번의 절멸은 모두 자연적인 재앙에 의한 원인으로 규정지어졌다.
그리고 이제 제 6번째의 절멸기가 진행 중인데 그 원인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에 의한 것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왜 바나나는 우리 앞에서 사라지게 될 까?
그것은 바나나의 종이 다양하지 못함이 원인이며 그 원인은 인간이 입맛에 맞게 맛과 모양을 똑 같은 종으로 개량을 해온 탓에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져 단 한 번의 질병으로도 바나나는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6번 째 절멸기는 인간에 의해 오게 되는 것일까?
호모사피엔스라 불리는 인간의 출현은 다른 종들에 대한 위협을 의미한다는점에서 그렇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달리 지성과 욕망의 덩어리로 자신의 생활공간을 위해 다른 종을 밀어내는 일에서부터 같은 인간 종에서도 다른 민족을 밀어내고 자신의 종족을 위한 공간을 넓히고 문화를 이식시키는 증식의 역사 속에 이제 60억이라는 인간폭탄을 장착하게 된 병기가 되었다.
사라진 것들에 대한 많은 가설들과 추측들이 분분하고 그들처럼 사라져야 하는 우리들을 위해 이제 겨우 쓸모없이 보이는 다른 생명체들의 역할에 관심을 가지는 시각이 늘어난다 해도 돌아보면 ‘자연은 거대한 공동묘지’ 이며, 문화 역시 ‘거대한 공동묘지’ 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 우리는 그것도 아주 소수에 불과한 우리가 가지는 동, 식물에 대한 연민과 공감은 정말 윤리적이며 평등한 시각일까?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이 우리의 생명을 위한 식품이며, 우리의 질병을 위한 약품이라는 소용가치에 연연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정말 우리는 보기에 혐오스럽고 독을 가진 동 식물들에게도 우호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는가?
오래 동안 복지를 누려온 서구사회는 제 3국의 자연과 산업에 관심을 갖고있으며 그것들을 보호 육성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이 말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미국이나 다른 서구 산업국가들의 경제전문가들이 경제 개발도상국들에 대해 그들의 생물자원을 소중히 하라고 압박한다면 이는 마치 늙은 플레이보이가 젊은이들에게 동정 童貞을 지키라고 설교하는 것과 같다”

전 세계가 미국적 생활방식을 추구하고 미국이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자신들의 시장으로 점유하려 하는 것에 대한 부단히 경계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과연 이 경계대상에서 면책될 수 있는 것인가. 날마다 개발을 부르짖으며, 경제를 우선순위에 두는 이런 국가정책하의 국민들이 진지하게 멸종에 대하여 고려해야 할 이유와 책임이 여기에 있는것이다.
편리함을 버리지 못하면서 자연을 사랑한다고? 환경을 보호한다고? 그냥 편하게 ‘언젠가는 모든 것이 사라져갈 것이고 그것이 우리 앞에 놓인 운명이라고 받아드리고 살고 말지’ 싶은 처절한 절망을 받아드리지 않을 수없는 사라진 것들에 대한 추도문이다.
이 책은. 그 앞에 놓인 제상 祭床에는 불도저, 연쇄식 톱, 자동화기, 핵무기를 올려놓을 수밖에 없는 우리인간들의 속죄는 과연 받아드려도 좋은것인가. 마음을 그지없이 무겁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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