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신 서울타임스 회장

가끔씩 나는 전철역 매표소의 우대권 창구에 서 있는 그 노인들의 표정을 읽는 버릇이 나도 모르게 생겼다. 그것은 어쩌면 이제 나도 그 대열에 있어야 하는 연륜이 다가오고 있어서였는지, 아니면 무엇인지 아쉬워하는 그이들의 표정을 바라보는 내 느낌이지만, 그이들의 형용키 어려운 형형색색의 표정을 읽어가는 내 심사는 그렇게 즐거운 것은 아니였다.
그것은 그이들의 그 표정이 잃어버린 세월에 묻어버린 청춘의 포기인지, 아니면 그 흔적을 그리워하는 지나간 세월에 관한 의문인지, 또는 돌팔매 치듯 창구에 던저져 있는 우대권에 대한 분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이 지금까지 몸 바쳐 봉사한 이 사회가 말년(末年)에 베풀어 주는 은혜에 대한 감사인지, 참으로는 어쨌던 그러한 표정들 이였다.

우대(優待)의 사전적 의미는 「특별히 잘 대우함.」 그 반대적 의미는 학대(虐待:가혹한 대우)이다. 혹시라도 제도와 인위적(人爲的) 우대행위가 그이들에게 가장(假裝)된 정신적 가혹한 대우로 비추어져 있었다면 한번쯤 되돌아 볼 일이다.
예산 쓰고 덕 잃는다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행정적 하자(瑕疵)는 우리의 주위 어느 관청에서도 있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우대권은 말 그대로 우대권이여야지 매표창구의 가장된 선심형 무임승차권이 아니다.
삼팔교(三八橋)와 야생초(野生草)는 어느 때 부터인가 모르게 내게는 하나의 내 동반자가 되어 있었다. 삼팔교는 내가 군 생활 중 병영(兵營)에서 병사(兵士)들과 주고받았던 문학적 교감(交感)의 산물(産物)이였다. 사춘기를 갖 넘긴 나의 군생활 중, 그 추억들이 물론 먹고 사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대도, 또는 돈 되는 일이 아니래도 나는 그냥 그리움으로 간직하려고 한다.

화학산 에서의 이소영(李素英) 소위와의 밤새워 있었던 문학적 논쟁이 결국 기상과 함께 기합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지금도 그날의 추억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 부대에서 상급부대 모르게 길렀던 노랭이가 삼팔선(휴전선)을 넘어 월북한 사건으로 전 부대가 비상 속에 빠지고, 나는영창을 간다. 나의 상관이던 AG참모는 그랬다. 속솔이뜸의 댕이가 나라를 지켜 주느냐? 헤밍웨이가 면회를 온다더냐? 그러나 나는 그의 배려로 영창은 삼일 만에 풀려났지만 이(李)소위와 함께 나는 제대 할 즈음까지 부대의 꼴통으로 낙인 찍혀 있었다.
내무반 선배였던 이상문 병장이 며칠 고민하더니 탈영을 하였다. 삼일 만에 잡혀 들어와 헌병대 영창에 수감된다. 영천이 고향 이였던 그는 나와는 몇 개월 선후배 사이여서 처음 무척 텃세하더니 먹걸리에 취해서 한번 응 부리고 나서 친해졌다.
그날 나는 면회를 가서 사연을 듣고 참 놀랬다. 5.16이후 그의 부친이 부역한 사실을 가지고 재판을 받았단다.

그는 항상 그 문제가 그의 콤프렉스였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월북할 요량으로 부대를 나서서 눈 속을 밤새껏 걸었단다. 먼동이 터 올 즈음 익숙하지 않는 낯 선 부대가 보였다. 그는 이쯤이면 넘었겠지 하는 생각으로 공화국 만세를 부르면서 뛰어 들었단다.
거기가 부대의 수색중대인 것을 그가 안 것은 얼마 후의 일이였다. 내가 제대를 한 삼 개월 앞두고 영외거주 하사로 빈둥거리고 있을 적, 일년 몇 개월을 복역한 그가 이등병을 달고 자대 원대복귀 명령을 받고 돌아왔다. 내 제대회식 날 그는 대취하여 그랬다. 「윤 하사, 태극기를 덮어다오. 이 쫄병 고참을 두고 너만 혼자 제대 한다고? 내 시체 위에 태극기를 덮어다오.」
얼마 후 그가 자살로 일생을 마쳤다는 부음을 들었다.
야생초는 내가 제대하여 전주에서 공무원 재임 중, 문학이라기보다는 그냥 젊은 날 조금은 낭만같이 어울려 보자고 미처 있었던 직장 남녀 문학써클 이였다고 해야 맞다. 야생초란 들녘에 흩어져 사는 들풀을 총칭함이다.

외면당한/삶의 유랑민이 아니올시다./길 잃어/실향민의 혼 닮은/무리도 아니올시다./향기 있는/무리는 더욱 아니올시다./넓은 들녘이 좋아/멋 찾아 흩어 진/들풀들이올시다./우리대로 자라고 싶은/한낱 가느다란 의지가/우리입니다./향기보다 더 한/굳은 의지와 억센 끈기가/우리의 염원이올시다./성장에는 눈치도 없습니다./처세에는 아부도 없습니다./넓은 산하와 맑은 자연만/우리들 차지입니다./내일로 향하는/뿌리를 심으려는/젊은 풀포기들/들풀이/우리를 이름입니다./

야생초의 참 값은 정원에 복귀하지 않고 들녘에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그것을 지켰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나는 옆에서 보기에도 참으로 멋대가리 없는 인생을, 돈 쌓을 줄 모르는 무능한 팔방미인(八方美人)으로 그렇게 살아왔다.
여기에서 나는 많은 작별을 배웠고, 그 많은 이별을 연습했다. 추억이 설움인 것도, 연민이 슬픔인 것도 나는 여기서 터득했다. 가슴이 시리도록 아리는 것은, 그것이 사랑인 것도 나는 여기서 익혔다. 지금 나는 다시 이별의 연습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은 삼라만상(森羅萬象)이 갖고 있는 윤회생사(輪廻生死)의 이치를 내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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