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 이야기(3)
백운면 신암리(3) 대유마을(대전, 유동)

▲ 신암리를 가로지르는 내와 그 옆 정자. 한밭 길 건너에 있다.
봄기운에 밀리는 것 같았던 동장군이 다시 기운을 차린 모양이다. 센 바람과 비가 내리더니, 비는 어느새 눈으로 바뀌어 곳곳에 ‘아직은 겨울’이라는 표시를 남겼다. 멀리 보이는 산 정상은 새하얀 빛으로 바뀌었고, 귀밑을 스치는 바람은 정말 차갑기만 하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잠시 장롱에 넣어 두었던 두꺼운 옷을 다시 꺼내입은 모양이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스카프와 마스크로 머리와 얼굴을 감쌌다. 마지막 꽃샘추위가 정말 매섭다.

▲ 유동마을의 나지막한 돌담이 정겹다.
6일 오후. 지난주 반절얼음(임하)에서 취재를 했던 최학구(86) 옹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최 옹이 꼭 신문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 것도 있지만, 취재에 많은 도움을 받아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찾은 최 옹의 집. 여전히 집 앞에 메어 둔 강아지는 낯선 이를 경계하며 짖어댄다. 그리고 집 옆 축사에서 구수한 소 울음소리도 들려온다.
집 마당으로 들어가니 집 안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그리고는 부부가 낯선 손님을 맞았다.
지난주 길가 포도밭에서 만났던 유정애(53)씨와 남편이었다. 유정애씨가 기억을 더듬어 기자를 기억해냈다. 최 옹은 외출 중이어서 집에 없다고 해 부부에게 신문을 전해주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왔는데, 할머니 한 분이 같은 방향이면 차를 태워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아까 길 옆 버스정류장에서 보았는데, 추위 속에서 꽤 오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백운면 소재지에 있는 병원에 가는 길이라고 하는데, 대전마을과 유동마을을 들러야 한다고 하자 노인은 대전마을까지만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노인을 뒷자리에 태우고 대전마을로 향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대전마을에서 백운면 소재지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으니 병원까지 가자고 얘기했다. 노인은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 한다. 하지만, 노인은 영 미안했는지, 동생네 집에 잠깐 들러야겠다며 석전마을 근처에서 내려달라고 한다.
노인을 내려주고 다시 대유리로 향했다.

◆한밭과 니랏골
대유마을은 한밭(대전마을)과 니랏골(유동마을)의 한자어 마을명칭 앞글자를 딴 행정리다.
한밭은 신암리 입구 첫 마을로 김해 김씨와 연안 송씨가 정착해 이뤄진 마을로, 벌에 큰 밭이 있다고 해 한밭이라고 불렸다.
니랏골은 주위에 큰 느릅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인데, 조선시대 말 천주교 신자인 밀양 박씨와 경주 김씨가 피신해 정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유동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양인수씨
◆작은 마을 니랏골
먼저, 니랏골로 향했다. 도로 왼쪽 마을 진입로에 ‘유동마을’이라는 표지석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그 바로 옆 버스 정류장에 양인수(67)씨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사람이 혈압이 있어서 약을 타러 가는 길이에요.”
신암리에는 버스가 하루에 세 번 들어온다. 아침 7시와 오후 2시, 그리고 저녁 7시다. 그래서 백운면 소재지 방향으로 나가려면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양씨는 오후 2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버스가 올 때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양씨에게 마을에 관한 이것저것을 묻기로 했다.
“우리 마을은 6집 정도가 있는데, 사람이 안 사는 집도 있고요. 산골 마을에다 사람도 없어 농사도 많이 짓지 않아요. 농사는 마을에서 나 혼자 짓고 있어요.”
양씨는 니랏골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고추, 두릅, 사과 등의 농사를 짓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날이 좋아 산에서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기도 했단다.

“물 맑고 공기 깨끗한데다가, 이렇게 도로도 생겨서 살기는 많이 좋아졌어요. 하지만, 마을에 사람이 없으니 참 적적하죠.”
대유리에서 마을회관은 한밭에 있다. 그런데 니랏골에서 한밭까지는 걸어서 10여 분이 걸리니 노인들은 마실 가기가 쉽지 않다.
니랏골에서는 몇 안 되는 주민이지만 함께 모일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더 적적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런데 기자 양반. 너무 일찍 온 것 같아요. 이달에 두릅이 날 때 오면 사진 찍기도 좋을 것 같아요. 또 그 시기에 장뇌삼도 나고 꽃도 피니까 한 번 와요.”
주말에 내린 눈과 비 덕에 정류장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크게 들린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했던 물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가축하고 짐승을 키우는 집이 있어 마시지는 못해요. 그래도 상당히 깨끗하죠.”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양씨가 손가락으로 버스 정류장 의자 옆을 가리킨다. 자세히 보니 산새 두 마리가 죽어 있었다.
“버스 정류장 벽이 유리로 돼 있어서 새가 아무것도 없는 줄 알고 날아가다가 부딪혀 죽은 거예요.”
이런 일이 자주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유리에 무엇이라도 붙여 놓아야 할 모양이다.
마침 한밭 쪽에서 버스가 오고 있었다. 그리고 한 5분 정도가 지나고 버스가 반절얼음에서 돌아 나왔다. 양씨와 인사를 나누고 니랏골로 올라갔다.
니랏골에 오르니 마을이 꽤 훤하게 느껴진다. 마을 뒤로 봉우리가 하얗게 변한 선각산이 파란 하늘과 대비된다. 그리고 드문드문 보이는 집과 낮은 돌담이 정겹게 느껴진다.
그렇게 마을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한밭으로 향했다.

▲ 대유마을회관에서 만난 한밭 주민들. 이옥순, 박순예, 황심통, 정영자, 김금옥, 한정남, 양옥순, 우진이와 우진이 엄마(왼쪽아래에서 반시계 방향)
◆부자가 많았던 한밭
한밭으로 가는 길에 왼쪽으로 정자 하나가 눈에 띈다. 일단 자동차를 세우고 정자로 갔다. 가까이 갈수록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도 커진다.
정자는 넓이와 크기를 알기 어려운 암반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물이 흐르는데, 여름철이면 많은 사람이 찾을 법한 풍경이다. 여름에 한 번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사진기의 초점을 잡았다.
정자를 둘러보고 다시 한밭으로 향했다.
한밭 역시 마을 입구에 표지석이 있는데, 하나는 새로 만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커다란 바위에 마을 이름을 새겨 놓았다. 개인적으로는 큰 바위에 새긴 마을 표지석이 더 좋아 보인다.

그렇게 자동차를 몰고 올라가니 마을 진입로가 꽤 길었다. 그리고 길 옆으로 내가 흐르는데, 계곡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더 올라가니 꽤 큰 마을이 길게 뻗어 있다. 새로 보기 좋게 지은 집들이 많이 눈에 띈다.
일단 마을회관을 찾아 그 앞 공터에 자동차를 세웠다. 그리고 마을회관에 들어가 보았다.
추운 날씨 때문에 마을회관에 사람들이 있을 거란 예상은 적중했다. 마을 주민들 가운데 여성들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마을 역시 점심때면 마을 사람들이 마을회관에서 함께 점심밥을 지어 먹는데, 추운 날씨 때문에 오늘은 일을 쉬고 마을회관에 모인 것이란다. 다시 날이 풀리면 주민들은 들과 산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마을회관은 텅 빈다고 한다. 추운 날씨가 취재를 도와준 상황이 됐다.
주민들 사이에 어린 아이 하나가 주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는데, 올해 집 나이로 세 살이 된 우진(김우진)이란다. 크고 또렷한 눈망울이 아주 귀엽고 똑똑해 보인다.

“우리 마을 이름을 얘기하면 외지 사람들은 ‘대전광역시’를 떠올려요.”
황심통(68)씨와 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김금옥(60)씨가 이런저런 마을 얘기를 해준다.
“옛날에 우리 마을에서 장군도 나오고, 부자가 많았다고 해요. 그래서 이 마을에서 쌀을 씻으면 쌀뜨물이 흘러 흘러서 아랫마을까지 흘러갔다고 해요.”
한밭이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옛날에는 농사를 크게 짓는 집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인구가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다른 농촌 마을과 비교했을 때 젊은 주민도 꽤 많이 산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었다.
“옛날엔 마을 근처에 큰 소나무 숲이 있었대요. 그런데 마을에서 다른 걸 하려고 전부 잘랐더니 마을이 살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도 있어요.”

▲ 유동마을 인근 숲에는 벌통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주민들의 표정은 밝고 여유있어 보였다. 주민들은 서슴없이 지금도 살기 좋다고 말했다.
김금옥 부녀회장은 이 마을이 텔레비전 방송에도 몇 번 나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유리가 소개된 한 책자를 펼쳐보이며 보여준다. 잘 정비된 마을의 모습도 모습이겠거니와 주민들의 마을에 대한 애정, 푸근한 인심도 한 몫 했을 것 같다.
그렇게 주민들의 이야기꽃에 동참해 한참을 함께 웃다가, 사진을 함께 찍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주민 두 명은 커피를 대접해야 한다며 주방으로 피한다. 난처해진다.
다행히 방송 등을 통해 언론을 몇 번 접해본 김 부녀회장이 사진 찍어도 괜찮다고 설득해 일단 대형을 만들었다. 사진기를 통해 들어오는 환한 주민들의 표정이 기분까지 좋다.
사진을 찍고 다시 이야기꽃이 핀다. 마을 현안부터 개인 이야기까지 끝이 없다. 그러다 산짐승 얘기를 하니 박순예(69)씨가 큰일이라고 말했다.

“산짐승이 아주 많아요. 여기는 노루가 특히 많은 것 같아요. 농사지어 놓으면 다 먹고 그래요.”
옆에서 황심통씨도 한마디 거든다.
“고구마 지어 놓으면 멧돼지가 쑥대밭을 만들어놓으니 큰일이에요.”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한 주민이 우진이가 가지고 놀던 쟁반을 숨겼다. 우진이가 쟁반을 뺏으려 하자 주민들의 장난기가 발동한다.
“주세요.”라고 해보라며 손모양까지 잡아준다. 하지만, 우진이는 얼른 가지고 놀던 쟁반을 다시 뺏으려고만 한다. 그래도 소득이 없자 몸을 돌린다.
이번에는 한 주민이 춤을 춰 보라며 박수를 쳐준다.
“우진아. 둥글게 둥글게.”
그러자,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함께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춘다. 우진이도 신나는지 박자에 맞춰 손을 움직이며 여기저기로 뛰어다닌다. 아마도 이런 우진이의 재롱은 마을회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함께 크게 웃다가 주민들과 인사하고 마을회관을 나왔다. 한참을 웃었더니 몸까지 가벼워진 것 같다.

마을회관에서 나와 마을 뒤쪽으로 가 보니 산에서 내려오는 내가 마을 한가운데로 흐르고 있었다. 마을 입구까지 이어진 냇물이다. 그 옆에 있는 ‘한밭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나름대로 운치 있다.
또 재미있는 것은 내 건너편에도 집이 몇 채 있는데, 모두 출입문 쪽으로 작은 다리가 놓여 있다. 대신 대문이 없으니 다리가 대문인 셈이다.
마을 풍경을 사진에 담고, 마을을 내려왔다. 그런데 올라올 때는 못 봤던 돌탑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 게 보인다.
향토문화백과사전에 따르면 원래 돌탑은 한국전쟁 때 없어졌는데, 1994년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그 뒤로 탑제를 다시 올리기 시작했다는데, 돌탑을 자세히 보니 새끼줄에 명태가 매달려 있다. 지난 대보름에도 탑제를 지낸 모양이다.
돌탑도 사진에 담고 마을을 나왔다. 늦은 오후에 접어들면서 산이 많은 인근 지역에 그늘이 짙어진다. 다음 주에는 어느 마을을 취재할까를 고민하며 자동차를 신문사로 돌렸다.

▲ 한밭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는 돌탑. 한국전쟁으로 없어진 것을 1994년 주민들이 다시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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