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진 경희대 객원교수, 전북애향운동본부 이사

누구라도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는 운명을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고 살다보면 자신의 뜻대로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 마음을 권력욕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힘을 갖고 싶어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을 쓰는 대상이 군인이나 검찰 일수도 있고, 광역시·도이거나 시·군에 한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대상과 범위에 따라서 권력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한데 그러한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 중에는 내게 부여된 권력의 종류와 범위조차도 모르는 정치인들이 있다. 쉽게 말해 내가 가진 힘으로 뭘 할 수 있는지, 또는 무엇은 할 수 없는지 조차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다.

* 선거 때만 '주민의 종'
우리가 풀뿌리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지방자치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 예산과 비용에 비하면 지방자치로 얻은 결과는 안타깝기만 하다. 입으로는 모두가 '주민의 종'이라고 말하지만, 행세는 '주민의 주인' 노릇이다. 그나마 4년마다 치러지는 선거 탓에, 한 달 정도는 주인인가 착각할 만큼 실컷 인사를 받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듯이 그 인사가 진짜 인사는 아닐 것이다. 새벽부터 줄줄이 서서 보기에도 안타까울 정도로 굽혀대지만, 그저 의례적인 인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가 직접 단체장을 선출하기 시작한지도 23년이 흘렀으니, 민선군수를 뽑은 것도 벌써 여섯 차례를 넘겼다. 그리고 이제 이틀 후면 그 일곱 번째 민선군수를 뽑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지방자치가 성숙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선거 때만 되면 주민들의 입에서 나오는 깊은 탄식은 무엇 때문일까!
혹여 우리가 '풀뿌리 민주주의', '지방자치', '지방분권' 같은 여러 용어들에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 진정한 주민의 봉사자
그래서 몇 년 전에 SBS에서 방송한 '최후의 권력' 제작팀이 쓴 '권력이란 무엇인가' 편을 인용해 보고자 한다. 방송을 보면 산마리노공화국의 인상적인 사례가 나온다. 이탈리아에 둘러싸여 있는 아주 작은 국가인 산마리노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치는 봉사활동이다. 따라서 의원이나 시장은 정치인으로서 어떠한 특권도 기대하지 않는다.
심지어 의회에 출근하는 의원들이 의회 근처의 주차권마저도 거부한다. 주민들이 우선이니 자신들이 그러한 혜택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산마리노의 정치인들은 세탁소를 운영하거나 농부로서 생업에 종사하며 항상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이를 정치에 반영한다.
선거철에만 볼 수 있고, 표를 얻기 위해 허리 굽혀 인사하는 정치인이 아닌 것이다. 선거만 끝나면 4년 동안 부여되지 않은 권력까지 휘두르는 권력자가 되어, 주민 위에 군림하는 그런 정치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방자치라 해서 선거만 이기면 장땡이라는 식의 사고를 가진, 우스꽝스런 선거문화를 가진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나 부러운 모습이다. 물론 선거는 주민들의 표만 많이 받으면 이긴다. 하지만 문제는 주민들이 출마자의 모든 자질을 검증하고 비교해서 선택하기에는 정보도 부족할뿐더러, 현실적인 한계도 많다. 그래서 남 앞에 나설 때는 스스로가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최소한 남 앞에 나서려면 이런 생각들은 해보고 나와야 마땅할 것 같다. 내가 지역정치를 맡게 된다면. 첫째,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둘째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셋째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말이다. 이 이야기는 내가 학기 때마다 제자들에게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요즘 대학생들은 공부를 하면서도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하기 싫더라도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일깨워 주는 것이다. 한데, 한데 말이다...
제자들에게나 해주던 그 얘기를 왜 우리를 이끌어줄 지방정치인들에게 해야 하는지 가슴이 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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