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선진의 '올 겨울엔 도서관이나 파먹으까' (14)

▲ 지음 : 파트리크 쥐스킨트, 옮김 : 강명순, 출판 : 열린책들
모든 문학상 수상도 거부하고 인터뷰도 사절하고 숨어사는 기이한 은둔자. 그런가하면 친구들 사이에서는 소탈하게 웃고 어울리는 사람. 이만하면 인간으로서도 작가로서도 이상적인 사람이 아닌가.

한 여름 온갖 쓰레기들이 한데 범벅이 되어 썩어가는 파리의 시장 한구석 생선좌판 사이에서 한 여자가 이제 막 다섯 번 째의 산고의 진통을 끝내고 생선 다루던 칼로 탯줄을 잘라낸 참이었다. 아기는 앞의 아기들처럼 출생과 동시에 죽음을 맞이해야 옳았다. 그러나 썩은 생선쓰레기 속에서 들리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영아살해로 체포되는 여자. 그 끈질긴 생명은 이렇게 어머니의 생명을 담보로 세상에 던져졌다. 아기는 수도원에서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첫 번 유모가 아무런 아기냄새도 없고 무시무시한 식탐을 가진 이 아기는 악마가 씌운 아기라고 양육을 포기한 뒤 신부도 하루 밤사이 유모의 말에 동의하며 아기를 멀리 보내버린다.

절묘하게도 그루누이의 성장은 어릴 때 아버지에게 후각을 관장하는 부위를 맞아 후각과 감정을 잃어버린 유모에게서 계속되었다. 후각을 잃어버린 유모였으므로 지나치게 후각이 발달된 그루누이의 성장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유모도 수도원으로부터 양육비가 끊어지자 아기를 무두질장이에게 팔아버린다.

살점이 달려있는 짐승가죽을 벗기고 다루는 일을 하다 걸리면 죽기 마련인 비탈저병에 걸려서도 살아남은 그루누이는 후각으로 온 세상을 터득해 나간다. 아무리 가면을 써서 가장한다 해도 그는 냄새로 대상의 진위를 가려내고 마는 것이다. 그루누이는 살아 남기위해 어떤 것도 참고 견딘다. 그리고 자기의 길을 찾아낸다. 향수제조인이 되는 것이 그가 찾아낸 길이었다.

축제가 있던 날, 그는 우연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맡고 무작정 끌리어 간다. 향기의 원천은 다 자라지 않은 소녀였다. 그는 단지 그 소녀의향기를 필요로 했을 뿐 그 소녀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소녀를, 향기의 원천을 움직이지 않게 해놓고 그 향기를 최후의 한 방울까지 들이마시고자 했을 뿐이다. 의도되지 않은 살인이며 악의가 없는 이 살인이 그의 마음에 남긴 것도 단지 방법에 대한 후회일 뿐이었다.

마침내 향수의 도시 그라스에 도착한 그루누이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끝없이 엎드리고 숨을 죽인다. 그의 목적은 한 소녀의 죽음으로 얻은 세상에서 가장 향기롭고 사랑스러운 냄새- 그 냄새를 맡으면 그 대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향수를 만드는 것이다.

자신에게 없는 냄새, 그래서 자신의 존재감조차 잊혀져 버리는 그 냄새인 인간의 냄새를 만들어 뿌림으로써 평범한 인간 속에 섞이게 되고 발전하여 상황에 따라 필요한 인간형의 냄새를 제조하게 이른다. 그가 인간의 냄새를 만들 때 쓰이는 원료란 썩은 시체의 부패한 냄새거나 땀 냄새 따위니 인간에 대해 그가 가질 수 있는 감정이란 것이 존경이거나 사랑이거나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그 뒤 그라스에서는 잇달아 아직 처녀인 꽃봉오리 같은 아름답고 특별한 매력이 잠재된 스물 네 명의 소녀들의 죽음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불안에 떨고 들고 일어나고 공포에 사로잡혀 어리석은 무리가 되어 간다.

소설은 재미는 크고 작은 반전의 장치를 더듬는 감추어진 행간의 탐색에 있는데 그가 바로 그라스의 경감 리쉬의 등장이다.

그루누이가 이루려는 최고의 향수의 완성의 정점에는 리쉬경감의 딸 로르가 있고 경감은 이를 알아채고 서둘러 피하려 한다. 그러나 냄새로 알아채고 냄새로 잠입하고 냄새를 무기로 삼는 그 앞에 결국 로르도 다른 희생자들처럼 알몸과 머리카락이 잘려 나간 시체로 발견되고 만다.

그루누이 또한 갑작스런 도피에 나선 경감을 좇느라 행적을 노출시켜 결국 체포되고 사형을 기다린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처형할 수없었다. 사형 집행일 그루누이는 자신의 최고의 향수를 단지 몇 방울 뿌리는 것으로 군중들을 조종하고 농락해 버린 것이다.

여인네가 치마를 걷어 올리고, 아버지가 딸을 안아 눕히고, 하인이 귀부인을 향해 바지춤을 내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타락의 하루가 그라스를 지배한다. 어느 누구도, 그루누이를 사형대에 오르게 한 리쉬경감도 그를 자신의 아들이라 부르며 열광했다. 그라스가 그 이상한 열병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할 때 그루누이는 그곳을 떠난다. 그리고 주저없이 그가 태어난 파리로 향한다.

스물다섯의 소녀를 죽여 뽑아낸 향기로 만든 최고의 향수를 시체매립장의 부랑자들에게 뿌리는 것으로 그는 자신의 죽음을 선택한다. 향기를 맡은 부랑자들은 그를 너무너무 사랑하게 되어 만져보고 느껴보고 싶어 갈기갈기 찢어 먹어 버리고서야 만족과 행복을 느낀다. 그렇게 그루누이는 흔적 없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실은 아무리 좋은 목적을 이루었다 해도 자신이 그 목적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리라. 남들은 그렇게 열광하는 그 냄새를 정작 자신은 사랑할 수 없었던 게 그를 불행한 천재로 사라지게 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 그것이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향기, 그것은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영원히 향수에 집착한다. 머무르지 않는 것을 붙잡으려 하는 인간의 덧없는 욕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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