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영 신 / 서울타임스 회장

시작이 그랬던가, 어느 사이 신춘(新春)이라는 언어(言語)가 무색 하리만큼 봄이 훌쩍 지나 버렸다. 춘분(春分)은 24절기의 네 번째이고, 밤과 낮의 길이가 꼭 같아서 태양이 적도 위에 직사(直射)한다는 그런 계절이다.
이월(음력)은 한봄이라 경칩 춘분 절기로다/초 엿샛 날 좀생이로 풍흉을 안다하며/스므 날 날씨보아 대강은 짐작하니/ 반갑다 봄바람이 변함없이 문을 여니/말랐던 풀뿌리는 힘차게 싹이 트고/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르도다/ 맷 비둘기 보리 나니 버들 빛 새로워라/보습 쟁기 차려놓고 봄갈이 하여보자.󰡑 이제 곧 청명 곡우 절기를 거쳐서 입하 소만 그리고 망종 하지가 오면 우리는 또 휴가다 어쩌고 하면서 산야(山野)를 섭렵(涉獵)하리라.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즐거웠든 일들이 또는 슬펐던 일들이 한 사람의 그 행위로서 그 자체를 의미 없고 부질없는 사건으로 가치 없이 처리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우정은 그것이 진정으로 느끼고 깨달았을 때 그것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붕우유신(朋友有信)이란 친구사이의 신의(信義)를 말하는 오륜의 하나다.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가지고 별 논리를 다 펴도 이것이 오늘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이야기다. 인간의 이중성을 말하면서 우리는 또 그 새삼스러움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 역시 현실적 우리의 고뇌임을 어쩌랴.

글을 써서 지면에 내 보내고 그것을 다른 이로 하여금 읽어보게 하고 또 비판하게 하고 혹은 박수치게 하고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여간 뻔뻔하지 않으면 하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겠구나 그렇게 생각이 든다.
명상(冥想)이란 고요히 눈을 감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인생(人生)이란 이 세상에서의 인간생활, 사람의 일생을 뜻한다. 그렇게 한가하지도 않는 세월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다 보면 반성 할 일들이 참으로 많았을 게다. 그렇게 생각하여 보니 참으로 이 세상일들이 만만치만은 안네 그렇게 생각이 든다.

인생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이치는 일찍 터득하고 있었지만, 사람의 일생이 참 질서 없는 오합지졸(烏合之卒)의 행군(行軍) 같은 것을 느낀다. 다툼이 그렇고 화해가 그렇고 분쟁이 그렇고 양보가 그렇다. 이것들 모두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것들은 그들끼리의 약속과 질서가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 난 이유들이다.
대차대조표는 자산과 부채를 명백하게 나타내야 한다.
대차대조표는 차변과 대변의 합계가 일치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차대조표는 차변은 왼편에 대변은 오른편에, 그렇게 기록하는 것이 부기의 질서이고 약속이다. 대차대조표의 일치된 차변합계와 대변합계의 차액은 0 이여야 한다.

이제 과연 내가 서 있어야 할 위치는 어디일가.
내가 가야 하는 길은 과연 어느 길인가.
과연 내가 소속되어 있어야 하는 그 곳은 어디인가.
만약 인생을 우리가 리콜(recall) 할 수가 있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욱 어지러운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대변과 차변, 그 합계의 차액이 0 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다.
어차피 인생(人生)은 그냥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 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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