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선진의 "올 봄, 진안고을 사람들 책바람이나 나볼까?"(17)

▲ 권오분 글, 오병훈 그림
지난겨울 평생학습 동아리 ‘마이숲사랑’에서 순천만을 다녀왔다. 핏발 선 해가 저녁 늪지를 녹쓴 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갈대숲 사이로 바다를 향해 스르르 기어나가는 검은 뱀같은 물길. 하늘은 검은 그물을 던져 사람들의 하루를 가두고 겨울새들 몇은 스스로 어둠에 갇혔다.


머무름은 봄까지만. 봄이 오면 녹쓴 핏빛 갈대숲도 겉치마 걷어 올려 연두빛 속살 보여주겠지. 봄비 온 뒤 늪지 가득 안개를 피워 올리는 날, 다시 널 찾고 싶어. 그렇게 작별하고 온 늪지에도 지금 봄이 오겠지. 연두 빛 속살 아른대겠지.


꽃이 그 생김만으로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지만 사연이 끼어들 때 특별한 꽃이 된다. 그래서 꽃글쓴이의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이며 그네가 흘린 눈물은 나의 눈물이 된다. 같은 사람이기에 같은 땅의 살붙이기에 그의 회한은 나의 회한이며 그리움이며 사랑이 된다.


병원의 영안실과 담도 없이 한마당으로 살다보니 삶보다는 죽음과 더 친근해 졌다는 꽃글쓴이의 변명은 벽돌담 틈새에 옹색하게 피어있는 달개비꽃에 ‘나를 뽑지 마세요’ 라는 안전판을 달아주는 대목에서 들켜버린 거짓말로 얼굴 붉어진다. 그렇게라도 살아있는 게 좋아, 그네는 안전핀을 달면서 그렇게 속말을 했을 것이니까


모시던 시어머니가 마지막 순간에 물을 원했을 때 딸기화채 만들어 드린다고 제 욕심 내세운 사랑으로 지체한 죄도 꽃 뒤에 숨어서야 가능한 고해성사.


그네는 사시사철 꽃다발을 만들고 종이컵 화분에 꽃을 담아 선물을 한다. 그런 시답잖은 선물을 귀하게 받아줄 줄 아는 많은 다른 그네들이 곁에 있다. 집안에 주체하지 못하게 자라버린 은행나무를 베어내고서야 달빛을 한아름 받아드릴 수 있게 되었다며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이라는 말은 그네의 마음이 열려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들이다. 은행나무는 끝까지 의자로 탁자로 그네에게 헌신했다. 우리의 생명은 다른 생명들의 희생위에 피는 꽃들.


남들은 다 마다하고 봇짐 싸 떠나는 시골이 무에 좋다고 내려와 사는 어설픈 촌사람들이 가끔 모이는 시간이 있었다. 그 땐 나도 어설픈 촌사람도 못되고 가족들 눈에 도망자로 비쳐지던 때였는데 그 때 모여서 나누던 이야기를 다시 그네를 통해 듣는다.


  “ 쑥을 찧다보니 그물이 고와요. 버리기 아까워서 입던 바지 거기다가 넣고 밟았어요. 그랬더니 얼마나 고운쑥물이 들든지. . .”


  “ 그런데 그 다음 답은 내가 알지. 물에 헹궜더니 다 빠져버리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되었다고? 우리도 다 해본 시행착오당게”


  “ 그래요? 형님들은 진작에 해보신 일이구만. 그래도 다 빠지지는 않아서


  또 들여볼라 그랬는데 방법이 있어요?“


  “ 쑥한테 물어 봐. 호호”


우리는 그렇게 돈 하나 되지 않는 이야기에 헤프게도 웃고 저 꽃글쓴이는 돈하나 안 드리고 꽃다발 선물 하고 인사 받았다고 흐믓해 한다.


이쯤해서 생각나는 사람. 그이 처음 알고 내 마음 참 기뻣다. 나와 같은 감성과 트인 사고, 양념인 내숭, 그래서 말 섞는 재미, 눈 맞추는 즐거움 많았다. 우리 동네 군내버스 정류장 유리칸막이뒤로 노란 산국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가을마다 욕심것 꺽어다 항아리며 빈바구니에 꽂고 향을 즐기다가 마르면 꽃만 따서 손바닥만한 가제보자기에 싸서 벼개 혹은 이불속에 넣고 한겨울을 지내는 나의 사치품이었다.


겨울손님들 이부자리 펴기가 무섭게 ‘흠, 이거 무슨 향기?’ 하던 빠른 반응이나 아침인사로 자다가 ‘혹’ 숨을 쉬었다고 하는 굼뜬 반응에 웃게 하던 산국이었다. 그이가 떠올랐다. 급하게 꺽어 꽃다발 만들었다. 읍에 도착하자마자 그이에게 주었다. 그랬는데-


그이는 거기서 벌레 나왔다고 다른 곳에 주었단다. 받은 곳에선 너무 길고 거추장스러워서 . . .했다. 그때의 서운함이 되살아 나왔다. 아직 여린 그이의 감성을 내식으로 판단하여 들이민 내가 잘못이지, 올핸 그이에게 그렇게 원초적인 꽃다발 들이대지 말고 저이처럼 꼼꼼이 손길 간 꽃다발 선물해야지.


올 들어 두 번째 읽는 꽃이야기다. 세 번째는 ‘쇠뜨기 꽃편지’를 써야지.


어머니 안 계신자리에 찔레꽃 핑계삼아 어머니 친구들 초대해 하루를 보낸다고 해서 가슴에 남은 회한이 지워지지 않겠지만 그렇게라도 산사람 뒤에 남은 사람들 위안 삼으며 살아간다. 무릇 장례절차가 가신 이를 위함보다는 살아있는 이를 위한 제 삼자들의 간섭이라는 깊은 속내가 새삼 자근자근 들려오는 이야기.


그네가 ‘찔레꽃 보러오세요’ 초대장을 보내올 때 나는 ‘눈꽃 보러오세요’ 초대할까 싶어지는 글쓴이의 이름 찾아서 읽은 책이다. 읽고 나니 바구니 끼고 들판으로 나물 캐러 가고 싶다. 꽃샘바람에 치마 펄럭이면서. .이런 나를 어쩔그나, 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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