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향 사 람

▲ 강신창
강   신   창  씨

마령면동촌리원동촌부락 출신

일도레너지주식회사 대표이사

송 죽 회(松 竹 會) 명예회장

마령초등학교총동문회 부회장

재경마령면향우회 명예회장

재경진안군민회 총무부회장

 

인간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도리를 우리는 의리(義理)라 한다.  성리학(性理學)에서는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등 인생에 있어 다섯 가지 대인관계를 정리하여 서로가 지켜야 할 의무를 강조 하고 있다.  사익경(思益經) 역설품(力設品)에서는 ‘그 글의 의리를 따를 것이며 장구(章句)의 언사(言辭)를 따르지 말라’ 하였고, 성실론 중법품(成實論衆法品)에 ‘불법(佛法)은 모두 의리가 있지만, 외도(外道)의 법은 의리가 없다.’ 하여 아예 의리를 불교의 교리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흔히 우리는 ‘저 사람은 의리가 있다.’거나 ‘의리상 얼굴이래도 내밀어야지’  또는 ‘그 사람 참 의리의 사내야’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이렇게 의리는 신의를 지켜야 할 교제상의 도리와 남에 대한 자신의 체면 등의 개념으로 변하여 오면서 인간의 처세에 각가지 영향을 미쳐오고 있다.

 

우리의 돌쇠, 의리의 사내로 정평처럼 알려진 그 사람. 강신창씨를 필자가 처음 만난 것은 아마 열아홉 살 때쯤으로 기억이 된다. 지금은 사라져 없어졌지만 마령의 5일장이 서던 그 시절 이였다.  전북여객 마령영업소, 마령양조장, 도의원 강준희 연락사무실, 아마 이런 벽 간판들이 붙어 있었다고 기억이 된다. 그가 맡고 있었던 일거리들이야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미소로 그냥 각자 기억하기로 하자.  염색한 군용 야전복 잠바, 군화로 무장한 그의 복장상태, 고철덩이 같은 낡은 오도바이에 막걸리 통들을 쇠 갈쿠리로 꽤어실고 평지벌판을 달려가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리고 마령출신 향우 거의 모두가 마셨을 그의 그 우정과 의리에 담긴 막걸리 맛도 우리 다시 한번 음미 해 보자. 

 

강신창. 1949년 9월 5일생.

고향 원동촌에서 아홉 남매의 꼴치로 이 세상에 고고의 성을 울리고 태어났다.  마령초등학교를 거쳐 전주남중과 전주상고를 졸업한 그는 재수에 재수를 거듭하며 대학 진학을 꾀하였으나 그즈음 막 시행되는 대학입학 예비고사 제도에 밀려 대학 진학은 자신의 몫이 아닌갑다 생각하고 포기하기에 이르지만 그는 자신에 대한 인생의 한계를 그 때 처음 느끼면서 자신의 평생에 운명적 시새움을 깨달았다고 쓸쓸하게 술회하고 있었다.

 

그 후, 한일 나이론에 사원으로 취업하였으나 원래의 약속과 어긋난다 하여 바로 그곳을 나오고 만다. 안양에서의 몇 개월은 유원지등을 방황하며 그로 하여금 인생을 수습하며 정리하는 그러한 세월 이였다.  마침 입대 통지서를 받고 입대하여 제대하는 34개월은 그가 수양의 세월로 치부하는 만큼의 의미가 있었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가 망망대해의 파도에 밀린 조각배처럼 밀리는 심정으로 상경하기까지의 고향에 머무는 동안 면 체육기관을 통합하여 회장을 보좌하는 총무의 위치에서 그것을 정상의 위치에 복귀시키고 기금을 조성하여 면에 이관하기까지의 그의 숨은 공적이나, 테니스동호회를 만들고, 마령중고등학교에 없었던 테니스장을 신설하였던 그 일들은 오늘의 강신창 그가 살아 온 일생의 고향에 관한 관심의 편편들이다. 그가 네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억도 그렇지만 십일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추억은 남달리 간절하다. 그를 원불교에 귀의케 하고 대공(大公)이라는 법명(法名)으로 그를 입적시킨 어머니의 마음은 막내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하셨던 크신 마음 이였음을 눈시울을 적시면서 그는 증언한다.

그가 이인강씨(김포.55세)와 중매로 결혼하여 강산이 몇 차례 변하는 그런 세월을 외아들에게 향하는 그 정성과, 윗 형님들 유고(遺孤)의 그 조카들에게 베푸는 그의 정성은 흡사 새끼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둥이까지를 바친다는 큰 가시고기를 닮았다. 그것들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종보험판매주식회사에서 총무과장으로의 그 5년과 마이대리점(쌍용화재)대표로서의 16년, 서울에 머무는 동안 그가 고향과 향우들에게 쏟아 부운 그 정성은 지금 우리 모두가 아는바와 같다. 그것이 애정과 희생과 봉사와 노력의 결정체였음은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바와 같다. 그리고 지금 아무 스스럼없이 후배 경영인을 도와서는 장래의 신재생 에너지의 선두주자가 되려는 부푼 꿈에 젖어 있다.

 

우리의 고향사람 강신창씨.   

그는 인생의 고뇌와 고통을 연출하는 잠재적 능력을 가지고 고향의 고뇌를 은유(隱喩)할 줄 아는 지혜를 갖고있는 집착력의 사내(남자)다. 그는 유머 있는 감각으로 분위기를 연출하며 재치와 저력으로 민중(향우)을 끌고 갈 줄 아는 저력의 지도자이다.  의리와 동지애를 즐기면서 살아가는 우리의이웃이다.(강신창H,P;011ㅡ272ㅡ5195)

/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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