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선진의 "올 봄, 진안고을 사람들 책바람이나 나볼까?"(18)

▲ 지은이: 타샤 튜더, 옮긴이: 천양희, 사진: 리차드 W 브라운
말을 많이 한다고 글을 길게 쓴다고 해서 뜻이 잘 전달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도 언제나 긴 글을 쓰는 자신의 우둔함을 또 한 번 얻어맞게 한 책이예요. 그래서 오늘만이라도 나는 타샤처럼 말하고 쓰려고 해요

무릉리로 둥지 튼 지 6년이 되어 가는데 작년부터 근원 모르는 치통을 앓고 있었어요. 가파른 깔쿠막을 올라서야만 지붕이 보이는 집, 맘만 먹으면 고립무원인 산중턱의 생활이 슬그머니 두려워졌던 거예요.

 “더 나이 들어 옴짝도 못 헐 지경에 아프기라도 허면 어쪄, 누가 디다보지 않으면 우리 둘 겨울 동안 소리 없이 죽어도 봄 돼서야 발견될지도 모르겠잖어. 한 십년만 살다가 낮은 데로 나가자. 여보”

집살림은 여자위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편은 그저 고개 주억거리는 것으로 답을 했어요. 그런 나에게 타샤할머니는 이 말을 전해주러 왔나 봐요

 “죽음도 두렵지 않아요. 내 인생엔 후회가 없으니까요”

그러면서 90이 넘은 나이에도 어깨에 물지게를 진 모습을 보여주며 웃는군요.

미국 버몬트 주의 산속에서 자급자족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정원을 가꾸고 그림을 그리는 그림 동화작가 타샤 튜더.

아침을 맞는 해바라기는 눈부심에 고개가 힘겹지만 저녁 해를 보내는 해바라기는 큰 눈 가득 그리움 담아 해의 등을 응시해요. 석양이 부드러운 것은 하루 동안 만물의 희노애락을 어루만지느라 날이 무디어진 칼의 자비로운 가르침 때문일거예요. 칼은 칼이되 날이 무딘 칼. 그대에게 지혜가 있다면 칼이라는 인지만으로도 옷깃 여밀 줄 알 것이매-내가 인지한 타샤의 한 마디지요.

닭을 기르고 그 닭이 낳은 달걀로 요리를 하며, 양을 기르고 그 양의 젖을 짜서 버터와 치즈를 만든다. 키 작은 푸성귀를 부치고, 잘 익은 열매를 따며 진귀한 허브를 캔다 ( 타샤의 생활)

콩을 심고 거두어 그 콩으로 메주와 간장을 담고, 그 간장 된장으로 요리를 하며, 몸집이 작은 종을 위주로 개도 여러마리 길렀다. 그 중에 흰눈이란 녀석은 두 차례나 새끼를 낳아 이미 닫힌 내 아기문을 대신해 생명이 열리는 기쁨을 열어주었고 우리앞에서 자연사하는 거룩한 시간을 주기도 했다. 열 가지 넘는 쌈채소를 부치고 야생열매를 따다 술을 담아 잘 익혀두기도 했다 ( 나의 생활)

가느다란 실을 내어 천을 짜고 그 천으로 오빠에게 입힐 옷을 만든다. 그런 일상속에서 타샤투터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그림을 그린다(타샤)

비싸지 않은 광목천을 끊어다가 냇가에서 황토며 잿물을 들여 남편 옷을 지어 입힌다. 그런 일상 속에서 종종 나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글을 쓰기도 한다 (나)

타샤가 나보다 바다속으로 좀 더 다리를 깊이 묻은 저녁 해라면 나는 발치쯤 담그고 있는 나이. 감히 그녀에게 있는 저 가득참과 행복을 나는 얻어내야 겠다. 이런 욕심이라면 신께서도 용서하실 것이니.

아홉살 때 아빠와 엄마가 이혼했고, 난 아버지 친구 마이클 아저씨 집에서 살게 되었어요. 아저씨에겐 아내 그웨인, 딸 로즈가 있었어요. 엄격하고 예의바르게 자란 내가 갑자기 틀에 얽매이지 않고 아주 자유로운 가정에서 살게 된 거죠. 이것은 내게 있어 정말 멋진 경험이었어요.

초등학교를 일곱 살이 지나서 들어간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중단했지요.

수업시간에 공부는 하지 않고, 글씨 연습을 하는 노트에 그림만 그렸지요

누가 내게 직업을 물으면 서슴치 않고 ‘주부’라고 대답해요. 주부라는 직업은 정말 훌륭한 거예요. 주부라고해서 학문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요. 딸기잼을 만들면서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을 수도 있잖아요.(타샤)

학교를 중단하면 정말 잘못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는 말하지 못해요. 공부는 하지 않고 늘 책 속에 연애소설을 끼어놓고 읽거나 가방을 교실에 둔 채 몰래 나가 영화를 보거나 했지요. 그렇지만 저도 주부라는 직업을 자랑스러워해요. 딸기잼을 만들면서 세익스피어를 읽은 적도 있어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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