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람

▲ 전귀남씨
전 귀 남 씨
좋은아침에꽃방 서초역 점 대표
밝은사회국제클럽한국지부/UN NGO 예지문화연합회/호산나풀라워클럽 송파지부 지부장 역임
재경진안읍향우회회원
재경진안군민회 난진아여성동우회 운영위원

미국 켈리포니아의 한 신문에 한 가정주부가 낸 광고의 내용. [남편을 염가로 양도 함. 골프채와 사냥도구, 그리고 개 한 마리를 덤으로 줌.] 이유인 즉 남편이 아내를 돌보지 않고 주말마다 사냥이나 골프를 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광고를 보고 꽤 많은 전화가 왔것다. 그러나 그 중 남편을 구입 하겠다는 내용은 한건도 없었다. [남편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라, 남편이 바람피우지 않는 것만으로 감사하라, 남편이 죽거나 헤어진 다음에 오는 고통이 얼마나 힘 드는지 아느냐?]등의 충고가 전부였다.

행복은 쾌락이 아니다. 행복은 복된 운수를 이름이며,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찾아가는 것이다. 어느 병원인가는 원망하며 살아가는 환자의 사망 율이 감사하며 살아가는 환자의 사망률 보다 훨씬 많았다는 통계를 내 놓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의 행복지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든다.

오늘 감사와 행복을 이야기의 말머리로 삼는 것은 필자를 만난 전귀남씨의 제일성이 그랬기 때문이다. 넘칠 만큼 넉넉한, 그런 것도 아니였고, 화려한 인생의 신데렐라 닮은 그러 것도 아닌 그녀의 일성은 그랬다.
"매사에 감사하는 그 속에서 남편과 선혜,선일 두 아이와 함께 흡족하고 행복한, 그렇게 살아갑니다."

전귀남 여사. 1947년 11월 21일생. 금년 한 회갑의 그 해이다. 그녀가 회고하듯이 집안이 그리 큰 부자는 아니였다 하드래도 비교적 남부럽지 않는 생활과 가정환경 속에서 일곱 남매 중 맏딸로서의 기득권을 누리면서 양 부모님의 사랑도 받고 자랐다. 진안초등학교와 진안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안살림을 돕는다. 그녀가 상급학교를 마치지 못한 것은 순전히 그의 공부 기피증 때문 이였다고 그는 주장하고 또 그렇게 기억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당시 전주 도립병원(현 대학병원)의 간호보조원이 되어 치과병동에서 몇 년, 또 전주의 몇몇 치과병원에서 몇 년을 그렇게 어쩌면 지금 그에게는 너무나도 의미 없었던 그 세월을 그렇게 보내고 스물아홉 살에 지금의 김이중(41년생.군산)씨와 중매하여 결혼 하면서 이번에는 정말로 고향을 떠난다. 그리고 모태신앙 이였던 남편은 그녀의 세상살이에 너무나 큰 변화의 파도를 던져주었다. 그렇게 그가 고향을 떠나던 그 계절은 노랗게 민들레 꽃이 들녘에 만발하는 그 해 봄이였다고 그녀는 기억한다.

까닭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노오란 민들레 꽃 한 송이도/애처롭게 그리워 지는데/아, 얼마나 한 위로이냐/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느니/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 남을 것/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되어도/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냐./

남편의 사업을 도와 「대명자수(刺繡)」의 한평생은 그녀의 종교적 의미와 함께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향하는 애정의 발판이 된다. 마흔여섯의 이 아주머니 전귀남 여사가 방송통신고등학교(창덕여고)에 입학하여 특별활동으로 시작한 꽃꽂이가 오늘 그녀의 인생관, 생활관을 송두리 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예배실의 꽃꽂이봉사, 교회의 꽃꽂이봉사 등 이는 곧 봉사의 의미로 이어졌고, 95학번 방송통신대 교육학과에 등록한 그는 밝은사회국제본부/예지문화협회 호산나 풀라워회에서 특급사범 자격증을 획득하기에 이른다. 송파구의 호산나풀라워, 미광풀라워, GM풀라워등에서 주임으로 매장책임자로 혹은 실장으로, 지부장으로 10여년을, 이제 어엿한 한 매장의 대표로서 자리매김 하고 나선 것이다.

꽃에 대한 감사의 사랑과 창조주에 대한 예찬과 멀리서도 찾아오는 고객에 대한 고마움과 그녀가 특별히 페미니스트(여권신장 또는 남녀평등주창자) 로 규정하고 그래서 존경한다는 남편에 대한 사랑과 모든 것이 고맙고 감사 할 따름이란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행복하단다.
전귀남 여사. 그는 꽃을 통한 삶의 무대에서 인생의 열정으로 사물의 이치를 놓고서는 긍정의 자세로, 인간의 정신적 반열에서의 가치 판단의 순간에는 소망의 자세로, 가끔씩 인생의 행로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기는 난감한 사건들에 당하여서는 사랑의 자세로 그렇게 임한다.

그가 필자와 헤어지면서 선물로 남긴 것은 꽃을 가지고 선물할 때에 거기 담긴 의미를 적은 메모였다. 혹시 독자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가 여기 간추려 적어본다.

네잎클로버(나 만의 당신). 노란 장미(사랑이 식어가고 있어요). 담쟁이(결혼하고 싶어요). 동백꽃(너무 사랑스러워요). 민들레(나의 사랑을 드려요). 배꽃(애정울 느끼고 있어요). 백일초(그립습니다). 보랏빛 라일락(사랑을 처음 느껴요). 복숭아 꽃(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분홍 카네이션(여인의 사랑). 빨간 장미(사랑,소망). 빨간 국화(사랑합니다).수선화(존경합니다, 나를 잊지 말아요). 아네모네(당신을 기다릴게요).아카시아(당신은 나의 비밀스런 사랑입니다).연꽃(당신과 조금 소원해진 것 같아요). 오랜지 꽃(당신은 순수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자주빛 라일락(당신을 사랑하게 됐어요). 작약(부끄러워요).카네이션(당신은 아름다워요). 튤립(당신은 나만의 사랑입니다).하얀 카네이션(순수하고 열열한 사랑). 하얀 장미(매력,순진).하얀 국화(진실).

우리의 고향사람 전귀남 씨.
인간의 논리의 부정적 견해는 자신의 불행으로 직결된다고 주장하며 믿고 있는 그는 꽃의 생동감 있는 인조의 작은 정원에서 욕심을 잊어버린 천사의 모습으로 또는 행복의 전도사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전귀남H.P: 011ㅡ9917ㅡ0760) /서울취재본부

저작권자 © 진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