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람

▲ 김동권씨
김 동 권 씨
정천면 봉학리 신촌마을 출신
정천초등학교제36회동창회총무/회장역임
서울시시설관리공단 동대문지하상가 근무
재경정천면향우회 총무
재경진안군민회 산악담당이사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새벽 쓰린 가슴 위로/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서/이러다간 끝내 못 가서/……
늘어 쳐진 육신에/또 다시 다가 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새벽 쓰린 가슴 위로/차가운 소주를 붓는다./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기어코 깨뜨려 솟구칠/거칠은 땀방울, 피눈물 속에/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새벽 쓰린 가슴 위로/차가운 소주잔을/돌리며 돌리며 붓는다/노동자의 햇 새벽이/솟아오를 때까지/

생활이란 우리 인간이 일정한 환경에서 생계나 살림을 꾸려 나가는 한 조직체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활동의 전반을 말하는 것이다. 일찍이 어느 선현은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은 꽃의 향기를 간직하는 것과 같다.] 하여 우리 인간의 생활을 꽃에 비유하여 예찬하였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때때로 자신이 처해진 운명의 한때의 고독과 방랑과 자학과 저주의 늪 속에서 절망을 배우며 그렇게 살아간다. 삶이 어쩌면 인간 모두에게 주는 천형의 절망이라고 그렇게 포기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뒤안길에 그것은 아니라고, 인생이란 그렇게 절망만은 아니라고, 강력하게 부인하며 뛰어가는 우리의 고향사람 김동권씨의 아름답고 용기있는 그 삶의 뒤를 쫓아가 보자.

내노라 하고 내 놓을 만큼의 부자도 아니였다.
적지 않은 아홉 남매의 장남이다. 거기에 숙부내외가 일찍 돌아가시고 작은집 사촌형제 삼남매를 더한 열 두형제가 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장면은 가히 흥부네 집, 바로 그 장면을 연상하면 짐작이 된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저희 형제들 모두는 지금 농협, 고등학교 선생님, 또는 전화국의 직원으로, 세무서, 노동청의 공무원으로 모두 제 갈들을 찾아 갔습니다.」 찾아간 필자에게 해장 소주잔을 내밀며 의기양양 왼팔에 찬 완장(腕章;팔에 두르는 표장)을 들이댄다. 완장은 그의 존재가치이고 그의 표시이며 그의 일터이다.

김동권씨는 1947년 3월생으로 금년이 그의 한 회갑의 해이다. 그는 한창 28일의 회갑연 준비에도 들떠 있었고 필자에게 청첩장을 건네는 친절도 잊지 않았다. 회갑연 준비를 맡아주는 슬하 두 남매의 자랑도 물론 잊지 않고 들려주었다.

우리의 고향사람 김동권씨. 필자가 두 시간동안 만나 본 그는 정말로는 씩씩한 자유인(自由人)이라고 표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정천초등학교를 거쳐 정천고등공민학교를 마친 후 고향에 머무는 동안 그의 행적은 가히 자유인, 정천면의 팔방미인 그것 이였다. 시골 4ㅡH구락부의 지도자, 마을의 반장을 거쳐 이장으로 또 몇 년, 그리고 새마을 지도자에 이르기 까지, 고향의 대소사에 그의 흔적은 어디에나 남겨져 있었다. 그의 부친께서 그의 나이 17세에 고혈압으로 쓰러지시고 23년간의 병석은 그의 가세가 흐트러져 가는 과정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였다. 어머니의 재촉과 성화에 쫓겨서 이순이(정천면,55세)씨와의 중매결혼, 3년 동안 고향에 신접살림을 차렸으나 그의 자유인 기질은 농한기 노름빚에 그의 어머니가 애지중지 기르신 황소 한 마리를 팔아 갚고, 그 해 겨울에 쫓기다 시피 앞날이 막막한 상경 길에 오른다.

그 후, 삼성전자 노무직3개월을 시작으로 같은 회사 제품과 직원 9개월, 오류동에서의 쌀 가공 정미소 10개월에 실패, 노동판 잡부로 1년을 허송하고, 두산곡산(두산사료)에서 3년, 다시 오류동에서 골목가게 3년에서 실패, 해태음료 오도바이 중상으로 3년, 백광세제에서 근무 중 병상(늑막염)의 1년을, 다시 일진알미늄주식회사에서3년, 그리고 수많이 많은 수위와 경비의 갈아 찬 완장들. 숨차고 파란만장하다고 밖에 표현 할 수 없는 한 평생을 그는 그렇게 보낸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세월을 패배의 세월 이였다고 절망하지 않는다. 그는 항상 생각한다. 해는 내일도 다시 뜬다고 마음속에 그렇게 다짐한다. 절망하지 않는 그 시간 그는 수몰 되어 간 옛 고향의 산새들과 울타리 밑에 피어나던 앵두꽃을 벗 삼아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슬플 때면 위로받고 기쁠 때면 즐거워하는 그런 세월을 보낸다. 그리고 혼자 걸어간다. 그냥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갈 뿐이다. 인생의 아름다움이란 꽃과 같이 화려한 것만은 아니요, 때로는 그것은 강물에 흘러내리는 낙엽과 같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가 터득한 것이다.

그는 그에게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고 시집 온 후, 이성이 무엇인지 그것조차 몰라서 신혼 초 하마터면 자신에게 이혼조차 당 할 번 하였던 아내의 지난날 그 세월에 대하여 많이 죄 짐 진 연민을 갖고 있다. 생활력 강한 아내의 맞벌이에 힘입어 슬하의 두 남매도 남부럽지 않게 길러냈다. 노후 설계도 세워 놓았다. 이제 그만 쉬자고 권해도 아내는 막무가내다. 가끔씩 아내의 퇴근길을 도와 오도바이 뒷자리에 태우고 정릉 길, 그 언덕길을 오르면서 ‘언제 까지나 언제 까지나 헤어지지 말자고’ 어쩌고 하면서 흥얼거리다가 곧 쏟아지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말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있어도 없었던 것 같았던 존재. 허구 속의 역설적인 그 인생. 그것은 어쩌면 농사꾼 처녀를 또보소의 둘시네아로 명명하고 그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이 세상 모든 불의와 싸우는 돈끼호테를 닮은 것이다.
여인숙을 성으로 착각하고 그 곳의 농사꾼 처녀들을 아름다운 공주로 착각하며, 풍차를 악의 화신인 거인으로 착각하고 사생결단 결투를 벌이는 돈끼호테를 사람들은 미친사람 취급을 하지만 그는 로시안떼(농사용 말)를 타고 자유인이 되어 스페인 전역을 유랑한다.
둘시네아는 그녀의 미모와 덕성으로 돈끼호테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지만 실제 그녀의 등장은 한군데도 없다는 역설적인 존재다.

우리의 고향사람 자유인 김동권씨.
그 에게 목표가 확실한, 나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을 때의 전율을 그는 지금 찾아 나선 것이다. 그는 초라한 영웅이 아닌 현실적 판단력과 뚜렷한 주관을 찾아서 그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청평에 사놓은 몇 두락의 그 땅도, 고향을 지키는 그의 소중한 그 땅들도 현실과 이상이 공존하는 그 영역을 발견하는 그 여정의 끝에서 그의 미소로 다가 올 것이다. (김동권H.P;011ㅡ9868ㅡ8788/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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