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선진의 "올 봄 진안고을 사람들 책바람이나 나볼까?"(20)

▲ 지음 : 리처드 p 파인만, 옮김 : 김희봉, 출판 : 사이언스북스
과학자란 감정보다는 이성적 추리와 끈질긴 해결력이 의식의 지표를 점하고 있는 사람들로 당연히 돌과 얼음의 심장을 가진 사람들. 나의 이런 편견은 문학작품에 그려진 인물묘사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나는 아직 위대한 과학자를 만난 적이 없으니까. 더구나 파인만이라니,
1918년 뉴욕에서 태어난 ‘리차드 p 파인만’은 2차대전 중 원자폭탄 제조에 참여한 물리학자로 양자전기역학 이론을 정립하여 1965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학자이다.

원폭제조에 참여한 과학자라면 냉철한 과학적 현상에만 관심을 가진 인간일 텐데 자신들의 성공이 가져온 후유증에 대한 한 가닥의 회의나 죄책감 같은 것을 그 후나마 갖게 되지 않았을까?
미세한 오차도 허용되지 않을 원자폭탄 제조자에게 농담은 가당키나 한 것인가. 이 때의 농담은 실없는 말이나 실수를 가리킨다

재미가 없다면 배움은 깊게도 길게도 이어지기 어렵다. 그런 배움은 단지 고통일 뿐이다. 언뜻 떠올리면 지극히 재미없이 먹물을 적셨을법한 조선의 유학자들도 해학이라는 수준 높은 재미를 쥐고 놀았듯 파인만 자신이 만들어 내는 농담은(이책에서는 당신은 지금 예의에 벗어난 행동을 한 거예요 라는 의미) 파인만의 일생에 그치지 않는 활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열두 살에 집에 실험실을 차려놓고 고물라디오로 원시적인 방송시스템을 만들어 놀이로 즐기던 그 상상력과 그것을 허용하는 가정의 분위기는 참으로 부러운 그들의 교육환경이다.
우리처럼 아이의 일과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손전화로 수시로 체크 관리하는 환경에서는 아이들의 상상력과 도전이 싹을 펴겠는가 .
완두콩을 쉽게 자르기 위한 도구를 만들어 보고, 자기만의 계산법을 궁리하는가 하면, 당연히 페인트공의 몫이라고 치는 페인트의 색깔 섞기에 빛과 색의 원리로 페인트공을 난처하게 만드는 파인만의 생각은 이렇다

“나는 물리학에서 이론이 실제보다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자주 저지르는데, 이것은 이론이 성립하기에는 복잡한 요소들이 너무 많아서 잘못되기 쉽다고 생각하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뻔히 알면서도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 때문이다.”
이런 그가 ‘맨해튼 프로젝트’(2차대전 중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계획의 암호명)에 참여하게 되는 대목에 이르러서 나는 벌린 입을 다물 수 없다.

고도의 복잡한 계산을 정확하게 하는 데 당시 쓰이던 계산기라는 것이 그렇다. 이 기계식 계산기는 여직원을 나누어서 한 사람은 곱셈기, 한 사람은 가산기, 한 사람은 세제곱기의 역할을 맡기어 삼교대를 하는데 무엇보다도 고장이 잘나 기계수리공이 붙어있어야 했다는 점이다. 지금 컴퓨터와 전자계산기가 일상화 된 우리들이 상상이 되기나 하는가 말이다

또한 체르노빌이란 말만 들어도 온몸이 써늘해지는 가공할 원자폭턴을 만드는 공장에 안전관리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놀라운 사실. 오로지 비밀유지를 최우선으로 하던 군대조직하에, 분리된 질화우라늄용액(녹색물)이 아무런 조치도 없이 다뤄지고 당장이라도 폭발의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 물속에서 중성자는 보통의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로도 방사능을 반출하고 주위의 사람들을 죽인다는 사실을 과학자들 외에는 알지 못한 채 진행되던 상황이 파인만의 충고로 공개되는데 그 결정을 내리는 군 수뇌부의 신속한 결단은 원폭의 역사적 시점이 된다.

원폭이 만들어지고 첫 실험에 폭발을 지켜볼 수 있도록 색유리를 지급받았다!! (유리라니, 저 가공할 방사능을 막아줄 거라고 생각한 게 색유리라니)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색유리로는 볼 수 없다는 사실과 정말 눈을 상하게 하는 것은 자외선이지 밝은 빛이 아니라는 것을 안 파인만만이 최초의 핵실험을 맨눈으로 본 사람이 되었다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축제분위기에 싸여 있을 때 한 사람 울상을 짓고 있었던 과학자의 이름은 밥 윌슨이었다.

“ 우리가 만든 것은 흉악한 거야”
“ 그렇지만 우리를 끌어드린 것은 당신이야”
이렇게 대답한 파인만은 어떤 신조로 원폭제조에 참여했던 것일까.

“그리고 폰 노이만은 나에게 흥미로운 사상을 제공했다. 그것은 내가 몸담고 있는 세계에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폰 노이만의 충고로 아주 강한 사회적 무책임감을 가졌다. 이런 자세를 가지니 전보다 훨씬 행복했다.” 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이런 빌어먹을! 무책임감을 가졌다니. 2권에서 그의 참회를 기대하는 나의 바람은 이루어질 것인가.

어떤 일이 뻔히 일어날 줄 알면서도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그 열린 생각은 이렇게 무책임감을 드러낼 때도 좋은 도구다. 물리학에 대해서는 눈곱만치의 상식도 없으면서 책장을 넘긴다. 그래도 재미있다. 사람에 가려 감히 지적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문제를 발견하는 순간 그 앞에 있는 사람 따위 보지 못하는 순수한 몰입의 인간 파인만의 천진한 행동은 나를 끌어 당긴다. 그러나 끝내 나는 그에게서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그는 히로시마앞에서 정녕 도덕적으로 무죄인가? 2권으로 가보자. 아직은 파인만은 원폭의 후유증보다는 물리학에 빠진 익살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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