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철수씨

▲ 이철수씨
1987년부터 공사를 시작한 용담다목적댐은 2001년 10월 13일, 15년이란 오랜 세월에 걸쳐 완공됐다.
용담댐 건설은 70개 행정마을 2천864세대 1만2천616명의 실향민을 만들어낸 아주 고약한 괴물이다. 수몰지역 주민들은 괴물과 끊임없는 투쟁 결과 보상의 원칙으로 삶의 터전을 등져야만 했다.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하는 주민들은 살림살이는 물론 조상 대대로 내려온 터전을 물속에 잠기는 모습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이 운명적인 자리에 이철수(57) 사진작가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1995년 12월부터 2001년 10월까지 5년 10개월에 걸쳐 용담댐 건설로 고향을 떠나야 하는 실향민을 현장에서 카메라로 담았다.
이철수 사진작가는 대형카메라 2대와 중·소형 카메라 각 1대로 수몰되어가는 현실 앞에 나 앉은 실향민의 모습을 한 컷 한 컷 담아낸 것이 무려 2만4천여 컷이다.

이 자료는 지난 2002년 9월 ‘용담다목적댐 건설 다큐멘터리 자료 설명집’으로 작업에 대한 성과물로 만들어졌다.
이철수 사진작가가 만들어낸 자료 설명집은 무려 1년여의 기간 동안 자료를 정리해 사진 한 컷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되어있다. 무려 7년의 세월동안 작업한 결과물이다.

정든 수몰지역 주민들
이철수 사진작가의 사진에는 당시 상황을 투쟁, 갈등, 이별, 철거, 담수, 향수 등 6가지 테마로 생생하게 정리해 놓았다. 이 사진들은 찍을 당시에는 마을주민들이 이철수 사진작가에 대한 반감이 강했다.
“처음 현장 사진을 찍을 때 주민들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었죠. 그런데 마을 주민들이 정부에서 염탐하라고 보낸 스파이 인줄 알고 얼굴을 때리고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등 감정이 격해 있었죠. 제가 찍은 사진에도 그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있어요.”

당시 마을주민들의 감정이 얼마나 격해 있었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터전을 잃은 슬픔에 누구나 그러했으려니 이 작가도 생각을 했단다.
“그 후로는 마을 주민들과 동고동락을 하며 사진을 찍었어요. 마을 주민들이 떠나고 없는 마을회관에서 남아있는 마을 주민들과 플라스틱 바가지에 밥과 국을 먹으며 5년 동안 함께 생활을 했으니까요.”

마을 주민들과 생활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써는 힘든 상황이었다.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사진작가로써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활동하기는 더더욱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정이 뭔지 마을 주민들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투쟁에 동참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을 주민들이 떠나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었고, 살림살이는 마당 한쪽에 싸여 불에 탈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를 본 이철수 사진작가는 마을 주민들을 말류하며 하나하나 모은 유물이 2천5백여 점이 된다.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을 주민들은 씁쓸한 마음으로 살림살이를 모두 태우곤 했어요. 손때 묻은 살림살이를 태우는 심정이야 오죽하겠습니까. 태우지 못하게 모아둔 유물만 2천5백점이 됩니다.”

사진에서 유물까지
그 중에는 이름과 주소가 적혀있는 나무 문패를 비롯해 가훈, 가족사진, 각종 졸업장과 상장, 가정 통신문, 박정희·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휘호, 농사도구류, 일기장, 토지문서 등 당시에는 하찮은 물건이지만 이제는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당시에는 하찮은 물건으로 취급해, 모두 버리고 태워버렸죠. 하지만 정부나 군에서는 이모든 역사적 자료를 방치했던 것 같아요. 저는 차마 보고 있을 수 없어 그 물건들을 모아 두었죠. 지금 제 창고에는 그 유물들이 주인을 잃은 채 보관되어있어요. 그 작업도 어느 집에서 가져왔는지 상세하게 기록을 해놓고 있습니다.”
이쯤 되자 철거되는 가옥과 조상의 묘지까지 고물상과 골동품 수집가들이 몰려들어 이주민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철수 사진작가 역시 분을 삼키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간간이 도난사건이 발생해 경찰과 주민의 사이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차마 지켜보고 있기 민망할 정도 이었었죠. 생각해보세요. 고향을 잃는 것도 아픈데 타지에서 온 고물상과 골동품 수집가들이 지역에서 설치고 다녔으니….”
이철수 사진작가는 말로 표현하는 것 보다 자신이 찍은 사진을 토대로 모든 것을 표현했다. 그는 사진작가이기 때문이다. 그가 찍은 사진은 이제는 실향민이 된 사람들의 애환과 고통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그 가운데는 생존해 있는 사람과 타향살이를 속에서 세상을 또다시 등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의 권유가 아닌 스스로 작업하면서 지역주민들을 카메라에 담아냈고 보관하고 있었다.
이제 그는 모든 것을 사진으로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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