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 새내재

진안-무주선 30번 국도, 진안에서 10km, 수동터널에서 300m 지점, 초록의 상큼한 빛깔의 병풍이 둘러쌓인 곳, 그곳에 오랜시간 사람의 발걸음이 잊혀진 고개, 새내재가 있다. 새내재는 옛날 상전면(탄전면) 수동리 대일마을 큰터골에서 상전면(상도면, 현 정천면) 월평리 하초마을로 넘어가는 463m 높이의 고개다.

두발로 선 진안 산행을 하기로 한 지난 19일, 전날의 흐른 날씨와 비가 언제 왔나 싶게 아침부터 맑은 날씨가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함께 산을 오르기로 한 일행들을 만나러 가는 길, 차창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과 공기가 상쾌하기만 하다. 그렇게 매달 가는 산행이지만 지난 번 우중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다짐했던 좋은 날씨 속 산행의 약속이 이루어져서 인지 왠지 이날의 산행은 다른 날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 시멘트길 끝자락에 있는 정자나무 앞에서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찍은 단체사진
◆한번 가보는 거다
산을 오르기도 전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1974년 폐쇄된 뒤로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고갯길이라는 김재환씨(용담농협 지소장)의 설명에 참 어려운 산행이 되겠구나 싶다.
“갈 수 있겠어?”
“몇 십년동안 다니지 않던 길인데... 위험하지 않을까?”
“그래도 이왕 오르기로 한 거 올라가봅시다”
일행들 사이로 쉽지 않은 길이 되겠지만 그래도 한번 올라가 보자는 이야기가 흐른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은 새내재를 찾아서 걷고 있다.

◆옛 흔적을 마음에 새기며
새내재 가는 초입은 잘 닦인 시멘트 길이다. 그 길을 가장자리에 두고 잘 개간되어 있는 땅에는 고추 등 농작물도 심어져 있고, 산 아래엔 벌통 두 개도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고 그 흔적도 찾을 수 없지만 이곳은 옛날, 5~600명의 사람들이 살던 마을, 상전면 수동리 대일마을이었단다. 현재는 밭으로 누군가가 농사를 짓고 있지만, 예로부터 집터로서 가장 좋은 자리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고 김재환씨는 말한다.
1924년, 신작로가 개설되기 전까지만 해도 새내재는 상전, 안천, 동향, 무주 안성면에서 사람들이 전주로 오가는 큰 길이었다.(새내재를 넘은 사람들은 정천 월평리 하초마을에서 원월평, 부귀면 두남리, 거석리, 봉암리, 완주 소양, 완산을 지나 전주로 들어갔다.)

“전주로 장을 보러 나가는 거죠. 수삼이나 참숯을 지고 나가 전주 남문시장에 가서 소금하고 해산물로 바꿔오고 했습니다.”
10분을 걸었을까, 시멘트 길의 끝이 보이고 초록의 빛으로 반짝이는 아름드리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150년 정도로 추정되는 정기나무라 한다. 새내재를 지나는 사람들과 연탄이 나오기 전 나무하러 다니던 나무꾼들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어가던 자리다.

“용담댐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정기나무 옆에 커다란 팽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누가 캐 갔는지 없어졌어요.” 김재환씨의 설명에 정기나무 옆에 봄 햇살 가득 담은 팽나무 한 그루를 그려넣어 보았다.
전주까지 200리, 80km를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걷다가 나무그늘 아래서 한 숨 쉬다가 또 걸었을 터였다.
(큰터골 옆으로는 탑을 싼 골짜기란 뜻으로 이름 붙여진 탑성골로 탑성골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다. 봉수대는 현재 많이 무너져 3분의 1정도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김재환씨는 설명했다. 이날 산행에서는 울창한 숲으로 탑성골엔 오르지 못했다.)

◆짙어가는 녹음, 사이엔 들꽃 하나
어른 키만큼 높은 갈대와 주인의 손길을 잃어버린 매실나무 밭 끝에 일행들이 잠시 멈춰 섰다. 이제부터 길을 만들면서 가야 할 터였다.
파릇파릇 새싹들이 오를수록 짙어만 가는 녹음으로 초록의 향기를 내뿜는다. 떨어진 일행의 모습도 쉬이 찾을 수 없게 우거진 나무 사이론 수줍게 핀 이름 모를 들꽃들이 시선을 잡아끈다.

▲ 삼십여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길이라서 인지 우거진 나뭇가지가 산을 오르는 일행들의 발걸음을 잡는다. 그래도 맑은 날씨 속에 진행된 이날 산행은 초록의 빛깔을 머금은 자연의 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었다. 사진은 힘겹게 산을 오르는 일행들의 모습
◆고사리, 취나물 와 많다
가파른 경사가 쉬운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산행에 함께 한 주부들은 고사리 등 산나물 꺾는 재미에 힘든 것도 즐겁기만 하다.
위장에 좋다는 창출(삽주), 어린시절 꿀 묻혀 구워먹었던 생강나무(김재환씨의 추억), 김밥에 싸 먹어도 맛있고, 삼겹살에 쌈 싸 먹어도 맛있는 취나물을 산행길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푸른 나뭇잎 사이로
이제 좀 평탄한 길이다. 가파른 길을 많이 올라오지 않았지만 흐르는 땀도 닦고 한 숨 돌리는 여유도 생기는 걸 보니 내심 기다렸나보다.
산에 오른지 한 시간이 채 못 되었을까. 숯가마 터가 나왔다. 제법 넓은 공간에 지금은 듬성듬성 나무가 자라있어 숯가마 터라고 생각할 수 없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자리의 흔적만으로도 반갑고 고맙기만 하다.
“정상이 멀지 않았습니다. 힘들 내십시오.”
귀가 솔깃하다. 어느새 정상이란 말인가.
‘반짝 반짝’ 푸른 나뭇잎 사이사이로 햇살이 빛을 내 보인다.
‘쏴아 쏴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어느 음악소리보다 아름답게 들린다.
‘종알 종알’ 숲이 깊어질수록 들려오는 산 새소리는 정겹다.

◆굴참나무 이정표
“와~ 멋지다”
“보호수로 키워줘야겠는 걸?”
일행들에게서 감탄이 절로 나온다.
200여년은 지났을 법한 굴참나무가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게 보인다. 그 나무 위로 마침 청설모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상전 수동, 갈현, 정천 월평, 그리고 진안읍 운산리, 네 개의 갈림길 중간에 자리한 나무, 굴참나무는 이른바 새내재의 이정표였던 모양이다.

◆쉽지 않은 하산 길
제대로 나 있는 산길을 내려오기도 어려운데 오랜 기간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산에서 길을 찾아 내려오기란 오를 때만큼이나 역시 만만치 않다.
가파른 경사에서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 길을 가로막는 나뭇가지가 하산하는 일행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새내재에 오른 지 2시간 남짓, 우거진 숲 터널을 빠져나왔다. 시야에 들어오는 탁 트인 공간이 하초마을에 다 왔음을 알린다.
청명한 날씨가 주는 축복 속에 시작된 산행, 여름으로 넘어가는 봄의 끝에서 초록의 싱그러움을 만끽하며 5월의 산행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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